장수명 논설위원·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민주주의가 박근혜 정부 이후 더 후퇴하고 있다. 법의 지배, 공정한 선거, 독립적이고 활동적인 언론, 삼권의 분립, 내부고발자의 보호, 노동조합 등 자발적 시민조직의 활동, 불편부당한 행정과 통치행위, 정당 활동의 자유, 그리고 인권보호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구성하는 어떤 요소를 살펴보아도 대의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대의제 민주주의에 충실함으로 지난 대선에서 표출된 경제민주화, 복지, 사회통합의 과제를 해결하면서 좀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시점이다. 그러나 그 기초인 대의제 민주주의마저 위협받는 것은 모든 지속 가능한 발전의 근간인 사회적 신뢰를 ‘획기적’으로 붕괴시키는 것이고 더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로의 퇴보를 의미한다. 거리의 선 시민들의 저항은 정당하다.

이제 어떤 사회 발전도 민주주의를 우회하는 경로는 없다. 싱가포르와 같이 민주주의 없이 ‘투명하고 효과적인’ 정부를 통해 한 동안 발전 해온 국가들도 모두 민주주의의 거센 도전을 받았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가 경제발전에 일부 기여했다고 해도 그것은 철지난 과거의 일일 뿐이다. 인류 진보의 역사는 험난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 평등과 참여의 공화정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임이 확인되었다. 파시즘이 한때 성행했지만, 이 끈질긴 희망을 이길 수 없었던 것처럼 민주주의 없는 발전은 없다.

한편 민주주의는 실천적으로 공동 자원의 유지와 확대를 위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때문에 소통을 요구한다. 의사결정 참여는 단순히 투표를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만 아니고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지속적인 만남과 논의를 공적 영역에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통은 상호작용을 통하여 서로의 오해를 불식시키며, 보다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고 확산함으로 공동의 상황과 문제를 좀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이는 참여자들이 여러 가지 대안을 놓고 고민하면서 공동체가 당면하는 문제에 대해 최선 또는 좋은 대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 소통은 참여자 모두를 주권자이자 학습자로 만들고 책임감을 갖도록 만든다. 이 과정은 불합리한 자기 확신을 걷어내고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돕고 신뢰를 확산함으로 이후 문제해결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당면한 민주주의 위기는 분명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이 그 권력을 절제하지 않았고 시민들이 권력자들의 무절제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형식마저 무시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언론통제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점에서 민주화 이후 다양한 시민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조직과 지도자들도 소통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반성해할 것이 많다. 스스로 민주적 소통을 확산해 왔는가? 정당의 지도자들은 당원과 시민들과 충분히 소통하여 왔는가? 노동조합 협동조합 지도자들은 회원들과 시민들과 얼마나 깊은 교류를 해 왔는가? 소통을 통하여 시민과 구성원들과 함께 정확한 정보를 만들어 내고 공동의 문제와 상황을 인식을 확대하고 공유해 왔는가? 절차적 민주주의가 시작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노력과 투쟁 또한 소통에 기초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민주화 세력을 포함하는 소통의 부재가 키워온 민주주의 위기다. 시민 속에 뿌리 내리는 소통으로부터 정당과 조직들이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가야 하는 이유다.

이 사회의 지적 문화적 자원을 창출하는 대학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와 대학, 대학의 지도자와 대학의 구성원, 교수와 대학원생, 교수와 교수, 학생 대표자와 학생, 그리고 교수와 학생들의 지속적이고 개방적 소통의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고 소통의 실천적 관행도 없다. 민주적 소통을 위한 대학개혁이 학문 자유와 사회발전에 대한 대학의 생산적 기여를 위해서 절실한 시기이다. ‘어떻게 소통을 통한 민주주의 역량 강화할 것인가?’ 구체적이고도 차분한 노력이 거리의 저항과 함께 요구되는 국면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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