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측 "비인기학과 유지는 사치, 생존이 문제"

구성원 · 동문 "소통 부재·절차 무시" 반발 계속
정부 구조조정 평가지표 따라 학과 평가하기도

▲ 학과 구조조정으로 지난 6월 총장실 로비를 점거한 중앙대 학생들. 중앙대가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라 사회복지학부 아동복지전공 등 4개 학과의 폐지를 추진하는 것에 반발해 해당 학과를 졸업한 동문들까지 집회에 참석해 학과 폐지를 반대했다. <한국대학신문 자료사진>

[한국대학신문 신나리·이연희 기자] 2013년이 한 달 남짓 남은 11월, 대학가가 막판 학사구조조정으로 들썩이고 있다. 급하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대학들은 본부와 구성원간 갈등이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15일 대학가에 따르면 이미 고려대, 중앙대, 동아대, 배재대, 삼육대 등 많은 대학들이 2015학년도 학사구조조정 확정안을 발표했다. 주로 △취업률이 낮거나 학생 충원이 어려운 비인기학과 통폐합 △정원 감축 △실용학문 위주 학과 신설 △학과평가제도 도입 등이 주요 내용이다.

교육부가 추진 중인 대학구조개혁안에 따라 대학 퇴출 및 정원 감축 드라이브가 더 강해지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대학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입전형 사전예고제에 따라 2015년도 입학전형과 모집단위, 모집정원 등을 확정해 15일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러나 각 대학이 학사구조조정을 서둘러 추진하다보니 부작용은 속속 나타나고 있다. 해당 학과 구성원과의 소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거나 절차를 무시하는 경우가 발생하다보니 법적 소송으로 번지거나 학내외 여론이 악화되는 등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올해 폐과가 결정된 중앙대 비교민속학과 학생들은 지난 7월 대학평의원회 심의 없이 구조조정안을 확정한 대학본부의 결정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가 기각당했다.

지난 10월에는 학사구조조정으로 갈등이 심화된 대학 학생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중앙대와 동아대, 경기대 등 교수·학생들은 직접 대학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4300명의 대학생의 반대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는 한편 교육부에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전체 구성원이 참여하는 학사구조조정 협의체를 구성토록 해 학습권과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동의대는 지금도 구조조정으로 인한 진통이 진행 중이다. 불어불문학과와 물리학과를 폐지하고 정원을 대폭 감축하는 내용의 구조조정안이 대학평의원회와 교무위원회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학 교수들은 14일 투표를 통해 교학부총장 해임 권고안을 통과시키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박순준 동의대 교수협의회장은 “입학정원을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학사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렁뚱땅 앞뒤 재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할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며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조정 파동의 책임을 물어 교학부총장 해임을 권고하는 시위를 여는 한편 공개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뤄지는 학사구조조정은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방침을 따라가는 추세다. 기존에는 3~5년간 학생충원이 어렵거나 전공선택 비중이 낮은 학과부터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했다면, 이제는 학교의 존폐가 정부 평가에 달린 만큼 각 학과도 재학생 충원율을 비롯해 취업률, 교원확보율 등을 근거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원대와 강릉원주대는 올해 초 각 학과별 교육성과를 평가해 하위 학과를 분류하고, 재정지원 제외나 입학 정원 감축의 페널티를 부여하기로 했다.

삼육대 역시 최근 2015년부터 학과 평가를 통해 하위 학과는 모집정원을 줄여 상위 학과에 주는 정원연동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방식대로 평가를 통해 상위 그룹은 지원하고 하위 그룹은 페널티를 주는 방식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의약계열과 사범계열을 제외하고는 전과를 전면적으로 허용해 경쟁력 떨어지는 학과를 고사시키는 정책도 도입키로 했다.

이 대학의 한 보직교수는 “현재 수도권 사립대에서 비인기학과를 유지하기란 사치스러울 정도로 생존위기를 직면하고 있다”며 “현재 5등급제를 골자로 한 새 대학구조개혁안 지표에 준해 자체적인 학과 평가지표를 만들어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가에 도움 안 되는 기초학문이 사라진다?
- 구조개혁 진행될수록 냉대 ‥ 부실 우려

대학구조개혁이 진행될수록 기초학문의 부실이 더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주까지 대학구조개혁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전국 단위의 공청회를 진행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기초학문을 전공하는 과들이 지금보다 더 줄어들지 않겠냐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부가 대학평가의 지표로 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실용학문위주로 학과 구조조정이 이루어 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지난 7월 교육부는 대학평가에서 인문·예체능 계열의 취업률을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힌바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취업률이 높고 기업채용시장에서도 선호하는 실용학문 위주로 과를 개편하는 것이 총체적인 대학 평가를 잘 받는데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취업률에도 학생 충원율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기초학문분야가 축소되지 않겠냐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대학교육연구소가 분석한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서비스 대학통계(2012)'를 보면 기초학문의 감소는 두드러진다. 1999년과 2011년의 학과 개설 현황을 비교하면 기초학문을 비롯한 취업이 어려운 학과들인 철학·윤리학, 프랑스어·문학, 수산학의 과목이 각각 25개, 16개, 9개가 줄었다.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은 "이미 철학·문학·독문학 할 것 없이 기초학문은 죽어가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외국에 기대는 학문종속성이 심각해 질 것"이라고 경고 했다.

그는 또 "기초학문은 길게 봐야 성과가 나오는 학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학문을 융합하려는 노력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의 바탕에 기초학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충분한 거름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학문을 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대 김시욱 기획조정실장은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들이 정원을 줄이는 것이 당면과제인데,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학과 평가 지표가 좋지 않은 인문대·사회대·자연대 등의 기초학문 관련 과들을 줄이게 된다”며 “강제적으로라도 국립대학이 기초학문을 보호해야 한다”고 답했다.

학교가 나서서 기초학문분야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총장 오연천)는 지난 7월 기초학문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이끌 학문후속세대 36명을 선정해 등록금과 생활비, 자료구입비 등을 지원했다.

홍기현 서울대 교무처장은 “국공립대학은 학문을 이끌고 가는 책무가 있다”며 “학문 중에서도 특히 기초학문을 직업적으로 하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서 기초학문 분야를 공부 하려는 사람이 있을 때 까지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교육부는 새로운 대학구조개혁안이 발표되지 않았기에 기초학문 분야가 사라진다는 의견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엄진섭 대학정책과 사무관은 “현재 대학구조개혁에 대해 공청회를 열며 여러 주장을 들어보는 등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며 “교육부는 기초학문·인문학을 정책적으로 살피는 학술진흥과를 두고 있는데, 이것만 봐도 정부에 기초학문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냐”고 말했다.

결국 기초학문분야에 대한 대학과 사회의 합리적인 논의와 잣대가 필요하다. 김세영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은 “대학 구조조정의 문제를 고려하면서도 기초학문에 대해서는 잣대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기초학문을 비롯한 인문학은 사회 경쟁력을 제고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공동 전공을 많이 하며 학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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