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묶인 대학들, 내년 1학기 학사일정 준비에 차질

“법 발의한 교육부는 '강 건너 불구경'" 불만 높아
대학가 "유예안 통과되면 대체입법에 적극 나서야"

▲ 강사법 유예안이 발의된 가운데 대학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움을 토로하고 있다. 유예안이 발의된 지난 20일 교육부 앞에서 권정택 비정규교수노조 부위원장이 강사법 시행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한명섭 기자 news@unn.net
[한국대학신문 특별취재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0일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 2년 유예안을 발의하자 대학들은 안도하면서도 여전히 극심한 혼란을 토로하고 있다. 당장 내년 1학기 학사일정을 짜야하는데 강사법 시행과 유예 중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학들은 “강사법은 탁상공론이 만들어 낸 악법으로 대학 현실과 차이가 크다. 교육부는 강사법을 발의해놓고도 이에 대한 대학들의 고민과 우려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유예안이 발의된 만큼 교육부도 보다 책임 있는 태도로 대학들의 혼란과 고통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1일 대학가에 따르면 유예안 발의로 대학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이번에 발의된 유예안은 내년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강사법을 2년 유예해 2016년 1월 1일부터 시행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 의원들이 발의했지만 여당 의원들도 2년 유예안 발의를 준비해왔기 때문에 무난한 통과가 예상되고 있다. 결정은 다음 달 예정된 정기국회에서 내려진다.

하지만 많은 대학들은 강사법 시행과 유예안 통과 사이에서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내년 1학기 학사일정 준비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전남 모 대학 교무처장은 “유예안 통과를 기다리면서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강사법 시행도 계속해서 대비하고 있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라며 “무엇보다 당장 며칠 내로 내년 1학기 강의시간표, 강의계획서 준비를 마쳐야 하는데 손을 못 대고 있다. 수강신청 기간도 원래 1월 초인데 2월로 미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한 대학 보직교수 역시 “현재 대학들은 강사법 시행과 유예안 통과 사이에 발이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대학들의 학사일정 준비를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조속히 결론이 나야 한다”며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년 1학기 학사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아예 손을 놓았다는 대학도 있다. 호남 모 대학 교무처장은 “고민 끝에 강사법 시행 대비에는 손을 놨다. 유예안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시행이 될지, 안 될지 확신할 수 없는 법에 미리 대비해 준비한다는 게 대학으로서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낭비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꾸준히 강사법 시행을 준비해온 대학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교육부 대학정책과는 이달 중순쯤 전국 대학에 강사법 시행에 관한 안내 공문을 배포했는데 이후 고작 일주일만에 유예안이 발의되자 대학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한국외대 최효영 교원인사팀장은 “새로 마련한 ‘온라인 강사공개임용시스템’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시행을 코앞에 두고 유예안이 나오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수도권 모 대학 총장도 “얼마 전에도 교육부에서 공문을 보냈기에 강사법이 당연히 시행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예안이 발의되다니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대학들의 혼란에 대해 교육부는 선긋기로 일관하고 있다. 대학에 배포한 공문에 대해서도 교육부 담당자는 “강사법 시행 시점을 앞두고 대학들로부터 문의가 쏟아져서 안내 차원에서 배포한 공문이었을 뿐”이라며 “교육부는 행정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국회에서 유예안이 통과되면 그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강사법을 두고 교육부와 국회가 연이어 엇박자를 내자 대학가에서는 교육부의 태도가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행이 한 차례 유예된 지난 1년간 교문위 소속 의원들이 대체법안 작성과 유예 여부를 대학 관계자들과 꾸준히 논의해 온 데 반해 정작 강사법을 발의한 교육부는 팔짱을 낀 채 ‘강 건너 불 구경’하는 태도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심재엽 호원대 교무처장은 “교육부가 대학의 교육행정을 총괄하는 만큼 강사법 개정에 따른 대학가의 혼란을 수습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고, 서울 한 대학 보직교수도 “국회만 바라보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교육부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현재 대학들은 교육부의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 한 전문대학 보직교수는 “교육부는 강사법에 관한 대학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우선 강사법 유예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교육부가 힘을 보태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강사법 당사자인 강사들도 교육부에 책임 있는 태도를 주문했다. 정재호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교육부는 강사들의 처우 개선이라는 입법취지에 맞지 않는 법안을 내놓고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유예안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교육부는 이제라도 대체입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사법은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와 생활고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지난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의해 통과된 법이다. 일주일에 9시간 이상 강의를 전담하는 강사에 한해 △공개채용 △재임용 기회 제공 △4대 보험 보장 등 채용요건과 처우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간강사 대량 해고 우려, 실효성 논란 등으로 올해 초 이미 한 차례 유예돼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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