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대학 진학 감소 현상, 왜?

▲ 고교생들이 해외대학을 외면하고 국내대학을 두드리고 있다. 외고나 자사고 내에서도 해외대학 진학준비반을 줄이고 있는 추세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경기침체와 해외대학 출신자들에 대한 역차별 등이 맞물려 있다. 입시전문가들은 “향후 10여년간 해외유학 열기가 되살아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외대학 학부 진학을 알선하는 한 유학원의 배너광고가 눈길을 끈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의 유학원 거리. ©최성욱

연평균 6000만원 달하는 학비, 국내 사립대 5~6배
세계 유수大 나와도 취업 어려워 학원강사 ‘전전’

[한국대학신문 이우희·이재 기자] “우리나라에서 아이비리그 출신이 가장 많은 곳은 영어학원이다.”

학원가에서 민족사관고와 유명 외국어고 출신 유학 1세대들이 국내 대기업 취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빗댄 말이다. 최근 맹목적인 아이비리그 추종 열기가 급속히 식고, 이른바 ‘SKY대학’으로 눈을 돌리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입시전문가들은 △경제불황 △학벌주의 △수시모집 확대 △국내대학 경쟁력 향상 등으로 영미권에 치중돼 온 해외유학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분석한다. 고교생들의 해외대학 진학 기피현상의 실태와 배경을 진단한다.

■해외大 학부유학생 수, 매년 20% 줄어= 국내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해외유학을 가는 학생들은 해마다 큰 폭으로 줄고 있다. 해외대학 학부유학생 수는 2000년대 말 이후 완전히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입시업체 하늘교육이 제공한 ‘최근 3년간 고교 유형별 해외대학 진학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2011년 해외유학자 수는 1558명에서 지난해 1224명, 올해 1048명으로 감소했다. 해마다 전체 유학생의 20%가 줄고 있는 셈이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대략 5년전부터 해외유학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 “해외유학을 가더라도 학부는 국내에서 나오고 나중에 유학을 가야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어고는 해외유학 기피현상의 전면에 있다. 외고 출신 해외진학자 수는 지난 2011년 303명에서  지난해 248명, 올해 234명으로 줄었다. 임 대표는 “최근 몇 년 사이 외고들은 기존 해외진학반을 줄이거나 없애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민족사관고와 용인외고, 북일고 등 전국 단위 자사고 출신 해외진학자 수도 줄었다. 하버드대·옥스퍼스대 등 해외 명문대 진학의 ‘산실’을 자처하던 민족사관고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는 지난 2010년 졸업생 150명 중 절반이 넘는 86명이 해외대학에 진학했지만 올해는 56명에 그쳤다. 

전체 자사고로 보면 지난 2011년 247명, 지난해 205명, 올해 197명으로 200여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까지 해외대학 진학자 수 5명을 유지했던 영재학교는 올해 단 한명도 해외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올해 해외진학반 1개 반을 없앤 용인외고의 경우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박인호 용인외고 3학년 부장교사는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는 해외진학반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자연계열을 한 반 늘리는 대신 해외진학반을 축소하는 걸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임 대표는 “최소 10년은 해외유학 열기가 되살아나지 못할 것으로 본다”며 “외고나 자사고에서 이미 국제반을 없애는 등 선행지표가 나오고 있다. 사실 해외진학반 1개 반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데, 한번 없어지면 다시 재건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민사고도 최근 해외진학반을 줄이고 국내대학 진학을 겨냥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민사고 출신 서울대 진학자가 대폭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침체·해외大 출신자 역차별 ‘이중고’= 해외유학 기피의 가장 큰 이유로 경제불황이 꼽힌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경기침체가 본격화 되면서 비싼 해외유학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진 탓이다.

해외유학 비용은 대학이나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등록금에 숙식비·생활비·교통비를 더하면 연평균 6000만원에 달한다. 국내 사립대의 5~6배나 비싼 셈이다.

비싼 돈을 들여 다녀와도 문제다. 국내 취업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학원가 관계자는 “지인의 자녀가 아이비리그를 나왔는데도 국내은행 취업이 되지 않자 인맥을 동원해 겨우 외국계 은행에 입사했다”고 털어놨다.

임 대표는 “학부를 한국에서 나오지 않은 해외유학생들은 ‘주변인’ 취급을 받는다”면서 “현지의 외국기업에 들어가도 이방인이고, 한국에 돌아와도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 데다 인맥이 없어 취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해외진학 명문고 관계자는 "국내 외고·자사고는 10년 넘게 해외대학에 학생들을 보내고 있는데 아이비리그를 나온 1세대 학생들의 컴백 실적이 참담했다”면서 “하버드대 나와서 SAT강사를 하거나 영어학원 강사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학벌사회의 그늘이 학부 유학생들의 설자리를 좁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자사고 교사는 “아무리 좋은 해외대학을 나와도 국내에서는 SKY의 벽을 넘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어렵사리 취직에 성공해도 해외유학생들에겐 한국 특유의 학벌사회라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최상위권 대학의 수시모집 확대는 해외유학 준비생들을 국내대학에 진학토록 유도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외유학 준비생들은 수능과 내신성적과 같은 정량평가로는 국내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기 어렵지만 입학사정관제와 특기자전형 등 수시가 확대되면서 국내로 눈길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 아이비리그 맹신은 옛말 … 미국 접고 유럽·중국行 = 최근 맹목적인 아이비리그 유학열풍은 주춤한 대신 실리를 쫓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국내진학이 일반화되거나, 유학을 가더라고 영미권 보다는 싼 비용으로 유학이 가능한 유럽권이나, 중국 등이 뜨고 있다는 것이다.

박희영 유럽유학센터 원장은 “영미권 유학은 이제 거품이 빠지는 것 같다”면서 “과거에는 영어를 못하니까 돈만 있으면 어학연수 겸 유학가는 학생들 많았는데, 이제는 영어를 잘한다고 크게 경쟁력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영미권은 학교를 상품화해서 자국 학생들에 비해 2~3배 많은 등록금을 유학생에게 부과하는 것도 유학생들에겐 단점”이라면서 “대신 학비가 저렴한 유럽을 선택하는 수요는 꾸준하다”고 말했다. 실제 프랑스의 경우 연간 학비는 학교시설사용료 25만원 가량이 전부다.

중국의 부상으로 중국유학을 택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중국내 한국 유학생수는 2001년 1만6372명에서 2012년 4만6483명으로 4배나 늘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영미권 학부유학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 학원업계 한 관계자는 “대입재수반에는 해외대학 출신이 꽤 있는데,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니고서는 아이들이 ‘국내대학 못 가는데 돈만 많아서 해외대학 갔다가 적응못해 돌아왔다’고 무시하는 경향마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내 대학들의 실력향상도 학부유학의 인기하락을 이끄는 요인중 하나로 지목된다. 김영환 포스텍 교수는 “국내에서 학위를 받더라도 모든 면에서 해외유학파에 비해 나쁘게 평가받지 않는 시대가 왔다”면서 “정부에서 국내대학 교육에 대단히 큰 투자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재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연구수준으로 따지면 서울대 물리학부와 화학부는 전세계 30위 안에 들어간다”면서 최근 20년동안 한국 대학의 연구·교육 수준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해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 출신 가운데 해외 학부유학을 선택한 학생은 단 1명에 불과했다. 하늘교육 자료에 따르면 과학고, 과학영재학교 출신 해외진학자 수는 지난 2011년 11명에서 지난해 7명, 올해 1명으로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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