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본지 논설위원·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지난 해 12월 대선 직전에 시작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정국을 경색시키고 우리 사회를 균열로 빠트리고 있다. 사건의 핵심은 매우 간단하다.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가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깊이 개입하였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경찰 및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 직원들이 한 일은 상당히 많이 밝혀졌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그들이 한 일에 대해 합당한 처벌을 가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향후 가능성을 제거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매우 단순한 이 일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확대되고 복잡하게 되어 버렸을까?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는 필자에게 이 사건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복잡하게 얽혀버린 실타래의 본질은 지난 정권 하에서 일어난 문제이지만 현정권과 관련이 있는 문제라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아니 관련되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 현정권이 스스로 깊이 관련되어 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정치적으로 해결할 필요도 없고 해결해서도 안 될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이제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져 극도의 정치적 대립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사건을 되돌아 보건대, 대선을 사흘 앞둔 12월 16일 수사도 제대로 안된 사건의 수사결과를 경찰이 그렇게 이례적으로 늦은 밤에 서둘러 발표하지 않았더라면, 현정권의 법무장관이 지난 정권의 실정에 대한 수사에 개입하여 전 국정원장과 경찰청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을 적용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지 않았더라면, 수사과정의 가장 민감한 시기에 검찰총장 사퇴를 현정부가 유도하지 않았더라면, 검찰 내 국정원 사건 담당 팀장을 석연찮게 수사에서 배제시키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부가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객관적이고 자율적인 수사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면, 그것이 현정부에게 그렇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일이었을까? 아무리 되새겨 보아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나온다. 궁극적인 책임이 지난 정부에 있는 사건에 대해 현정부가 집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오히려 국민들의 의혹을 배가시키게 된 건 아닐까?

대선이 끝나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야의 대치상황은 끝없이 계속되고 이 과정에서 더해진 NLL 문제는 이제 우리사회를 극단의 이념대립으로까지 내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언론은 우리 국회가 정쟁을 끝내고 민생문제로 돌아오라고 종용하고 있다. 1년을 끌어오면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그 본질은 사라지고 여야의 정쟁거리로 폄하되어 버렸다. 사실 지난 1년간의 여야 대치상황은 원활한 정책집행과 민생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정치권은 대치정국을 청산하고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여당도 야당도 이제는 첩첩이 쌓인 민생법안에 주목해야 할 때다. 그러나 제자리를 찾는 일이 ‘국정원 문제는 이쯤에서 끝내자’는 식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정원 문제는 본질적으로 정쟁의 요소가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보의 수집이 가장 용이한 국가정보기관이 정치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크다. 그 때문에 합리적이고 공정한 정치과정을 위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을 깊이 감시하고 경계한다. 그리고 국가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이 확인되었을 때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처벌의 수위 또한 매우 높다. 이제는 우리도 이런 민주주의를 실현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여당 의원들이 “대선불복입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100만표 이상 차이로 승리한 정권이 자신들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 이토록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국민의 일부가 아니라 대부분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국정원의 개혁을 주도하는 자신감 있는 우리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렇게 될 때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자신감도 함께 커지지 않을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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