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 본지 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독일 형법학계에서 적대형법(敵對刑法)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시민형법에 대칭되는 용어라는데, 테러범이나 조직범죄자, 마약범이나 성범죄자 같은 특정 범죄자를 시민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적으로 간주하여 중한 형으로 엄벌하자는 주장에서 나온 개념이다. 법치국가에서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시민사회의 한 구성원인데, 이를 위험원이자 비인격체로서 사회로부터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은 형법이론이다. 인간의 존엄성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범죄자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범죄와의 전쟁’은 이상에 불과할 뿐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비판받는 이론이다.

우리 사회도 가히 적대사회라 부를만하다. 내 편이 아니면 비난하고 무시하며 찍어 눌러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인종도 다르지 않고 얼굴색도 다르지 않은데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헐뜯고 짓밟으려 한다. 증오와 반목의 골이 날로 깊이 파여 간다. 그곳에 장벽이 쌓여 더 이상 화합과 소통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여야의 대치는 극한으로 치닫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51.6%와 48% 사이의 틈이 더 벌어져 서로를 앙숙처럼 대한다. 지금의 우리 상황은 얼마 전 서거한 만델라 전 대통령 이전의 남아공화국을 연상케 한다.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 속에서 생겨난 여러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더 커져 지역갈등, 이념갈등, 빈부격차와 계층갈등은 깊어만 간다.  

헌데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자기편만 보듬고 있다. 내편이 아니면 무시하고 내치는 ‘빼기’ 정치뿐이다. 대통령과 청와대, 집권여당은 보수와 진보를 편 갈라 자기편만 포용하고 상대방은 찍어 눌러 진정한 의미의 정치는 사라지고 있다. 자기편은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한다. 그 누구만의 대통령이 아니고, 자신을 지지한 51.6%만의 대통령이 아닌데 48%를 국민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비판세력을 종북으로 몰아 마치 전쟁을 해서라도 제거해야할 적으로 여긴다. 시민과 적을 구분하여 대응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적대형법을 보는 듯하다. 생각이 다름을 관용하거나 포용하지 못하고 못견뎌한다. 다른 생각을 표출하면 국익과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려 한다. 민주주의의 특징은 다양성임에도 지도자의 생각에 따라 일사분란, 일사천리로 움직이길 바란다.   
 
메르켈 총리가 보인 '무티'(Mutti) 리더십은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와 이념에 얽매이기 보다는 통합과 포용을 중요시하고 원칙을 지키지만 유연성도 있는 리더십이다.‘인종화합의 상징’,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보여준 용서와 화합의 리더십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반대파에게 다가가 손도 내밀고 그들이 주장하는 정책도 받아들여 내 편으로 끌어안는 ‘더하기’ 정치가 요구된다. 대통령은 국민 절반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의, 우리 국민의 대통령이다. 우리 국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금과 균열, 날로 공고화 되가는 대립과 갈등, 방치했다가는 민주주의의 둑이 무너지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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