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을보라③]'목적에 충실한 삶'이 틔운 '새로우면서도 유일한'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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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의사 명곡 김희수의 삶과 육영사업<4> 세계적인 서비스 실현 '건양대병원'

*** 국내 안과전문병원의 기틀을 마련한 ‘김안과’의 설립자 명곡(明谷) 김희수 박사(85세). 폐교 위기에 놓인 한 중학교를 인수하면서 건양대를 설립하기까지 그의 삶은 세상과의 소통과 함께해왔다. 건양대 총장을 지내고 있는 요즘 그는 새벽부터 대학병원과 캠퍼스를 돌며 환자와 학생, 시설을 점검한다. 길가에 떨어진 담배 꽁초 하나도 손수 줍는 그는 안팎에서 ‘소통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는 의사 출신으로 육영사업에 뛰어든 그의 삶을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인성' 바탕의 최고 의료진·서비스 ···  환자들에게 희망의 불꽃
4세대 암 치료용 로봇 '사이버 나이프' 연구 쏟아내 '옳은 선택'

우리 몸 구석구석을 진단해 살과 뼈를 찢고 붙이기에 병원만큼 전통과 명성을 중요시하는 곳은 없다. 가벼운 감기에 걸리거나 발목을 삐끗해도 ‘최고 권위자’를 수소문해서 한두 시간씩 차를 몰고 찾아가는 곳이 병원이다. 그런데 개원 14년차에 불과한 신생 대학병원에 대전지역 주민들의 발걸음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설립자 김희수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건양대병원 입구에는 ‘OUR서비스’라는 글이 적힌 독특한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에는 건양대병원이 추구하는 세 가지 서비스 정신이 아로새겨져 있다.

첫째 고객의 시간을 내 시간처럼 아낀다는 ‘One stop’ 서비스
둘째 어제보다 향상된 서비스를 추구하는 ‘Upgrade’ 서비스
셋째 항상 쾌적한 환경과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Refreshment’ 서비스

병원 의료진과 직원들은 매일같이 이 글귀를 보면서 출퇴근한다. 서비스 정신이 바탕이 돼야 환자를 위한 병원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내 오랜 경험에서 나온 고집이다.

안과 전문의 출신인 나는 1991년 건양대를 설립하고 비교적 늦은 1994년에 의과대학을 신설했다. 의학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비약이겠지만 그만큼 나름대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의대 학생들에겐 수준 높은 교육을 하고 싶었다. 서울에 ‘김안과’를 운영하면서 고향땅에서 육영사업을 병행했지만 의대는 또 다른 세심함이 필요했다. 고향의 많은 환자들에게 정확한 진료, 문턱이 높지 않은 병원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사실 머릿속에는 이미 병원의 모습이 그려졌다. 학교와 안과병원에서 강조해온 ‘인성’은 종합병원이라고 예외일 리 없었다. 그 토대 위에서 최고 권위자들로 진용을 구축한 의료진과 이들이 사용할 최첨단 의료장비로 뼈대를 세웠다. 나는 뭔가 ‘새로우면서도 유일한’ 병원을 기대했다.

" 어딘가 다치고 깨져 아파서 오는 병원
환자와 가족이 모여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고
병도 낫게 하는 충전소,  희망의 공간으로"

■논산 인구 줄어 대전서 둥지= 내 고향 논산에, 이왕이면 건양대 안에 병원을 짓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고민에 부딪혔다. 일단 논산은 인구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그땐 감소하고 있었다. 게다가 논산엔 이미 종합병원이 있었다.

다른 부지를 알아봐야 했다. 인복을 타고 난 건지, 어느 날 대전시청의 보건의료 관계자가 나를 찾아왔다.

“대전은 인구에 비해 의료시설이 부족합니다. 그 병원, 대전에 지으시지요.”

건양대 건축학과와 경영학과 교수들로 구성된 설립준비위원회에서는 “의료 혜택은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게 맞다”는 답을 내놨다. 대전에 세우자는 것이었다. 나도 동의했지만 대학병원이 들어설 기대에 찬 논산 시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다음날로 그들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 아닌 양해를 구했다.

건양대(논산)에서 왕래하기 편하도록 대전 서남부권을 물색했다. 때마침 도로 확장공사가 막 시작되고 있었던 터라 공사가 끝나면 논산에서 대전까지 30분이면 오갈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 지역이 구릉지대여서 병원 지을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고, 도로가 닦이면 땅값이 오를 것을 기대한 땅주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시민들이 휴식처로 자주 찾는 만수원 땅이 매물로 나왔다. 잴 것도 없이 부지 2만여 평을 샀고 병원을 세웠다. 큰 도로에서 병원을 이어주는 진입로도 만들었다.

1999년 말, 건양대병원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1층, 지상 10층의 본관과 지하 1층, 지상 1층의 별관이 세워졌다. 본관에는 병상 618개를 만들었고, 주차장엔 자동차 700여 대를 댈 수 있었다. 21세기를 여는 첫 번째 봄날(2000년 5월 3일) 건양대종합병원이 문을 열었다.

■환자에게 주는 3가지 선물= 어떤 병이든 잘 고치면 그만한 명의가 없다. 병원 건물이 절반 정도 모습을 드러낼 때쯤 나는 유능한 의료진과 직원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개원 전에 예비 진료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건양대 의과대학 교수와 대학 구성원을 중심으로 의료진을 꾸렸다. 실력이야 이미 안팎으로 검증된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인사고과 만큼은 성과급제로 못박아뒀다. 직원들의 성과를 인정하고 우대해주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며 실력도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원 후에는 급변하는 의학 기술에 발맞춰 최첨단 장비를 들여오려고 힘썼다. 그중 건양대병원이 국내에 처음 들여온 장비가 ‘사이버 나이프’였다. 4세대 암 치료용 로봇이다. 환자에게 고통이 덜 가해지고, 치료 시간도 짧아 해외에서는 ‘무혈수술의 혁명’이라고까지 불렸다. 장비 가격에 부대시설, 진단장비까지 합하면 한 대 들여오는 데만 100억원대. 그러나 암환자가 늘어나는 현실과 암치료에 속수무책인 의료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도입키로 했다. 사이버 나이프는 요즘말로, 의료기술에 IT가 접목된 대표적인 융합형 수술로봇이었다. 이를 통해 암환자 치료는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연구실적까지 쏟아져 나왔으니 그때 내린 결정은 매우 중요했을 뿐더러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IT기술이 치료에 큰 효과를 보자 좀 더 일상적인 부분까지 효과가 미치길 바랐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2011년, 병원을 스마트폰을 활용한 시스템으로 전면 교체했다. 환자 정보와 진료 내역을 전산화하고 의료진이 언제든지 전자기기를 통해 열람할 수 있게 하는 ‘EMR(전자의무기록)시스템’은 대표적이다. 이는 예상보다 효과가 좋았다. 의료진이 환자의 정보를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치고 깨지고, 아파서 오는 곳이 병원이다. 오랜 입원이나 차가운 수술대에 대한 기억이 한 번쯤 있다면 병원은 불편한 공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집처럼 편하고 따뜻한 병원을 만들고 싶었다.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휴게실과 간이주방을 설치했다. 그곳은 병을 낫게 하는 충전소 같은 공간이었다. 환자와 가족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하호호 웃길 바랐다. 그러다 창밖을 내려다보면 예쁜 자연의 풍경을 보면서 희망을 주고 싶었다.

▲ 건양대병원 신축 기공식 당시의 모습
■나(환자)를 알아봐주는 병원= 항상 환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려고 애썼다. 고객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조금이라도 더 보완하고 싶었다. 웹사이트를 통해 고객만족증진센터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병원을 이용하면서 겪은 갖가지 고충을 전산화하고, 환자들이 신속하게 답변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건양대병원 가족들에게 특별한 해를 꼽자면 아마도 2002년이 아닐까 싶다.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그 해 여름, 온 국민은 축구응원으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당시 건양대병원은 FIFA 월드컵 축구대회 공식병원으로 지정됐다. 모든 직원이 부지런히 또 활기차게 월드컵 관련 의료서비스에 책임을 다했다. 축구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의료진(25명)을 경기장에 파견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16강전엔 간절함만큼이나 부상도 많았다. 건양대병원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치료과정을 끝까지 책임졌다.

의료진은 거리응원전에도 파견됐다. 갑천둔치와 서대전 공원에는 한꺼번에 수천~수만명의 사람이 몰리면서 안전사고가 잦았는데 건양대병원 앰블런스가 그들의 곁에서 함께 응원했다.

‘김안과’라는 개인병원으로 시작한 나는 건양 중고등학교와 건양대를 설립했다. 병원과 육영사업을 병행하면서 느낀 건 둘의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건양대병원은 그 둘의 융합 속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교와 병원은 제 각각 별개의 영역이었지만 이를 하나로 통괄하는 운영철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목적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학교는 질 좋은 교육이 행해지는 곳, 병원은 수준 높은 의료활동이 이뤄지는 곳이 본연의 역할이다. 병원 개원 1주년에 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건양대병원의 정신, ‘OUR 서비스’(고객의 시간을 아끼고, 향상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늘 쾌적하고 새로움을 추구)를 함께 지켜나갑시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가 될 것이고, (여러분들로 하여금) 환자들에겐 희망의 불씨가 되어 타오를 것입니다.”

<정리=이은진 한국대학신문 객원기자>

*** 이 시리즈는 대학 창립자가 초기 건학이념과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교육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살아 있는 참 교육자’를 발굴, 소개하고자 8부작으로 기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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