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앞세워 철거 잇달아 또다른 논란 '고개'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3일 고려대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철도민영화와 밀양 송전탑 등 사회적인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대학생의 현실을 개탄해 많은 공감을 얻어 전국 대학가로 확산됐다. 그러나 가톨릭대와 성균관대, 중앙대 등 일부 대학에서 학생들이 기명으로 붙인 대자보를 철거하기 시작해 논란에 휩싸였다.

가톨릭대 배모(20, 경영학)씨도 최근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다. 배 씨는 “기말고사 기간이지만 대학생으로서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배 씨의 대자보는 총학생회에 의해 철거됐다. 총학생회는 규정을 지키지 않아 철거했다는 입장이다. 대자보를 붙인 지 12시간만의 일이다.

가톨릭대 총학생회는 올해부터 ‘대자보 부착 승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청소미화원에 의해 기준 없이 대자보들이 떼어진다는 것이 이유다. 홍보기간이 지나거나 총학생회의 인가도장을 받지 않은 대자보가 철거 대상이다. 배씨는 현재 총학생회의 인가를 얻어 재차 대자보를 부착한 상황이다.

대학본부에 의한 대자보 철거도 잇달았다.

중앙대에선 대자보 철거와 부착이 반복되고 있다. 중앙대는 대자보 등 게시물을 학교에서 관리한다. 학생이 붙인 대자보가 승인을 받지 않아 방호원이 떼어낸 것이다. 대학본부는 “방호원 개인이 판단해 제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중앙대에는 다시 대자보가 게재된 상황이다.

대부분 대학에서 대자보를 철거하는 명분은 규정이다. 대학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학조경 등을 이유로 대자보 관리를 시작했다. 클린캠퍼스 등 학교 이미지 개선 작업의 일환이다. 대학본부의 인가를 받는 대학부터 학생회의 인가를 받는 대학까지 형태는 다양하다.

그러나 대자보 관리가 실제로 잘 이뤄지는 대학이 몇 없다는 것이 대학가의 증언이다. 총학생회가 대자보를 관리하겠다고 나선 가톨릭대 역시 마찬가지다. 배씨는 “일부 학생들이 대자보 철거를 계기로 대자보 관리 실태를 점검해보니 규정과 맞지 않은 홍보물이 즐비했다”며 “대자보 관리제도라고 하지만 실제 효과는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대학본부의 대자보 관리도 마찬가지다. 인가제도 등 규정에도 불구하고 어학원과 공모전 등 외부홍보물이 대학가의 게시판을 점령한 상태다. 성균관대 김모(24)씨는 “관리제도가 아니라 검열제도다. 누가 개인의견을 개진할 때 허가까지 받아가며 대자보를 쓰겠는가. 사실상 외부 홍보물에 대학 게시판을 내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대자보 철거에 대한 대학 구성원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짓”이라며 “학생들의 정치참여나 담론형성에 나서야 할 대학이 도리어 대자보를 떼고 있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배재정 민주당 의원은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대자보를 철거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낡은 학칙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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