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호 본지 논설위원·덕성여대 독문과 교수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는 나라에 많은 변화가 있는 해였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그에 따라 국가 운영의 철학과 정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 어떤 것이 가장 눈에 띌까?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인문정신의 강조를 주목하고 싶다. 국가원수로서 대통령도 누구보다 먼저 인문정신을 강조했다. 국가의 지도자가 인문정신을 강조할 때는 역사상 대개 국가가 융성할 때와 일치한다. 우리 역사의 경우 세종과 영·정조 르네상스도 그 예라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국정의 지도자가 인문정신을 강조할 때는 그가 국정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정책에 확신을 두고 있을 때 가능했다. 이 말은 자기 확신이 없는 정책은 남을 확신시킬 수 없지만, 남을 확신시키지 못하는 정책은 자기 확신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자기 확신을 돌아보는 것은 인문정신의 중요한 특성이며 성공한 지도자의 실천 덕목이다. 그런 국가의 정책에는 국민이 신뢰를 보낼 것이다.

이의 연장선에 사회통합이 존재한다. 인문정신은 여기서도 중요하다. 인문정신이란 목적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신뢰이기에 그렇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인생론󰡕에서 인생의 행복은 자신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하고 이것이 모든 인간에 대한 신뢰의 기초가 된다고 했지만, 국가의 사회통합 정책에도 이것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사회통합은 개인에서 출발하고 자신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해야 한다. 개인에게 자신감을 상실하게 하며 열등감과 패배감을 줄 수 있는 국가의 정책에 국민은 신뢰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문정신에 기초한 사회통합적 국가정책의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예를 통해 간단히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의 정책은 개인이 자신만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잘 알려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터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터가 절망한 첫 번째 원인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귀족 중심의 제도와 관습이었다. 개인에게 절망을 주는 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없애줘야 한다.
 
다음으로 햄릿을 보자. 햄릿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는 과거에 갇혀 미래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베르터처럼 자초한 죽음이다. 햄릿이 아버지의 복수에 사로 잡혀 정작 미래 군주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갖추는 일은 게을리 했다면 그것이 그의 실패의 원인이다. 그는 사실상 미래를 성찰하고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을 갖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 국가는 개인이 미래를 성찰하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자신에게 투자하는 다양한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 사회에 이른바 다양한 힐링프로그램이 유행하는 것은 이런 방향의 국가정책이 미미할 뿐이라는 방증이다. 사회통합의 시각에서 보면 개인의 능력 개발도 국가가 떠맡아야 하는 공적 영역이지, 영리 시장에 맡겨 경제적 능력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의 영역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정책은 개인이 어떤 분야든 자신이 원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게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정책은 개인의 도덕을 해치거나 그것과 상치되어서는 안 되며, 개인은 국가의 정책을 통해 자신의 도덕률을 세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개인은 이런 점에서 통합되어야 하며, 국정의 지도자는 국가의 정책 방향이 개인의 일생 행로를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윤리성을 가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그렇게 강조한 머리 위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엔 도덕률이라는 주장은 국가정책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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