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세상살이로 그간 잊고 있던, 묻고 있던 생각과 말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재해석해줄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를 연재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좇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근대(modern era)는 합리주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합리주의는 지식의 근거를 이성에 둔다. 그리고 모든 사변(思辨)은 과학적 인과관계에 따라 전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공자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 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이 주장은 이성적이기 보다 경험적인 것으로 들린다.) 이성 지상주의도 급기야 지나치게 앞으로 나가고 말았다.

18~19 세기의 과학 발전에 도취되었던 결과로 보인다. 이른 바 ‘과학유일사상’도 그 부류다. 과학이 아닌 것은 모두 신비주의로 취급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아가서 인간은 이성적이므로 모든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의 전지전능론(全知全能論)이다. 하늘을 날 수 있게 되고, 핵폭탄이 만들어지고, 컴퓨터를 통한 정보처리와 원거리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이성만능, 이성유일 사상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성(理性)유일사상이 흠모하는 모델은 수학이라는 점이다. 모든 것은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수학자들은 겸손하다. 수학 상의 진리는 철저하게 공리(axiom, 公理)로 정한 정의(定義)와 연산(演算)의 폐쇄된 장(場) 안에서만 성립한다고 수학자들은 믿는다.

1+1=2가 성립하는 것도 대수학의 더하기 연산 가정을 용납할 때 만이다. 구름 한 덩어리가 다른 구름 한 덩어리와 합쳐져도 구름 두 덩어리가 되지 않는다. 이 때는 1+12가 참이다. 구름은 이 연산 가정을 용납하지 않는 장에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대 유진 파머 교수는 주가는 취보(醉步, random walk), 즉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처럼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른 바 효율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시장은 효율적이라서 주가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는 수 없는 정보들이 쉴 새 없이 모여들고, 거기에 따라 주가도 쉴 새 없이 출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역설적이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과학적으로 주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로부터 며칠 안 가서 주식시장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다른 투자자들은 돈을 싸들고 와서 주가를 미리 아는 사람에게 바치는 셈이 되는데, 그들이 이 짓을 계속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취보를 예측하는, 그러니까 주가를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지 못 한다. 사람의 이성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 함은 물론이고 자신의 느낌이 어떻게 변할지 조차도 모른다. 주식시장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20세기 후반부터 근대이후사상(post-modernism)이 크게 등장해 왔다. 합리주의로는 적절한 설명을 댈 수 없는, 그래서 이성만능주의가 실패하는 사례들을 논의하게 되었다. 파머의 취보도 그 한 예다. 자연과학에서도 복잡계과학의 등장 등, 데카르트적인 과학적 환원주의(還元主義, reductionism)와 인과관계의 보편성에 도전하고 있다.

소설가 김영하가 뉴욕타임스에 실은 컬럼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하는 대신 신비주의에 의존한다고 비판하였다는 국내 신문 기사를 읽었다. 사주, 관상 등은 근대이후가 아니라 전근대(pre-modern era)적인 비합리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보기에 한국기업은 세계에서도 그 경영에서 ‘아주잘함’성적을 받고 있다. 한국의 기업과 경제가 거두고 있는 성공이 그 성적표다.

합리성이나 이성이 타당성을 갖는 영역은 작고 비합리성이나 비이성의 영역은 그보다 거의 무한에 가까울 정도 클 것이다. 합리성은 비합리성과 통하는 문을 열어 두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pre' 나 'post' 어느 쪽이든 말이다.

< 한국대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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