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세상살이로 그간 잊고 있던, 묻고 있던 생각과 말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재해석해줄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를 연재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좇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성춘향과 이몽룡이 남원 광한루에서 만나는 것이 춘향전의 시작이다. 그 날 그들은 서로의 나이를 알려 준다. 둘은 이팔(2x8=16세) 동갑이었다. 식물로 치면 갓 피어나는 봄꽃의 계절이다.

춘향전이 가진 중심 인력(引力)은 이 둘이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에 있는 것 같다. 춘향이 그 혹독한 고독과 고난을 견디는 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나 관객이 열중하며 수긍하는 것도 그들의 사랑이 계속 16살 박이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에게 농업 시대가 시작된 것은 약 만 년 전 이라고 한다. 그 뒤로 정착(定着)형 가정이 생기고 마을이 형성되고 국가가 생겼다. 약 2500년 전에는 가정, 마을, 국가를 각각 중심으로 하는 윤리 체계들이 정립되었다.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는 대체로 이 시대 사람이다. 특히 공자는 동아시아 여러 시대, 여러 곳의 윤리의 대강과 세칙을 집대성하여 예기(禮記)를 편찬하였다. 그것을 후대에 와서 맹자(孟子)는 오륜(五倫)으로 요약하였다.

오륜(五倫)에 의하면 가정에는 부자유친(親)과 부부유별(別), 마을에는 붕우유신(信)과 장유유서(序), 국가에는 군신유의(義)가 각각 그 윤리의 중심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오륜의 어떤 조항도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적 억압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억압 체제로 개편한 것이 한무제 때 동중서(董仲舒)의 삼강(三綱)이다.)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의(義)만 해도 그렇다. 군신 사이의 질서는 의라는 윤리가 만드는 것인 바, 의는 군(君)이나 신(臣) 어느 한 쪽에만 부과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군과 신 둘 다가 지켜야 하는 쌍방적인 것이다. 평등하고 호보(互報, reciprocity)적이다.

아마도 오륜 가운데서 그 해석이 가장 모호한 것은 부부유별로 보인다. 부부는 그 맡은 역할이 남자는 농사 일등 바깥 일을, 여자는 육아 등 집안 일을 맡아 분리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분업론이지 윤리론은 아니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정약용(丁若鏞)의 해석이 가장 뛰어나다고 본다. 그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박석무 편역)에서 “부부유별이란 각자가 그 짝을 배필로 삼고 서로 남의 배필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자녀들에게 썼다. 부(夫)와 부(婦)에 차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부부는 ‘특별’한 남녀간이라는 뜻으로 본 것이다.

오륜은 농업이 경제의 대본(大本)이고 군주제 외에는 다른 정치 형태를 상상할 수 없었으며 사람의 평균 수명은 영아사망을 제외하더라도 40세에도 미치지 못 하던 시기에는 평화롭고 평등하며 가장 인간적이던 윤리다. 춘향전은 이런 환경 조건에서 태어난 사랑 이야기다.

지금 선진국들에서 국내총생산의 농업 비중은 1% 내외에 불과하다. 정치에서는 민주주의가 갈 데까지 가 있다. 사람의 평균수명은 80세를 웃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이 노랫말을 외치는 주인들은 누구며 몇 살일까. 이팔의 성춘향이나 이몽룡은 물론 아니다. 아마도 칠팔(7x8=56세)을 넘어 팔팔(8x8=64세)까지 이른 여성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사랑은 자식을 낳기 위하여 남녀를 결합시키고 자식을 기르기 위하여 부부를 해로(偕老)시킨다.

그렇다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나이도 훌쩍 지나고, 낳은 자식은 다 자라 슬하를 떠나 버린 사람들에게 30년 이상 연장된 가외의 수명 동안 사랑은 무엇을 시킬 것인가. 어쩌면 무엇보다 우선 옛 윤리를 허물어 가며 새로운 윤리를 지어 가라고 시키고 있는 지도 모른다.

< 한국대학신문 >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