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을보라③]구성원과의 수평적 소통이 위기극복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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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의사 명곡 김희수의 삶과 육영사업<6> ‘괴짜총장’의 소통의 리더십

*** 국내 안과전문병원의 기틀을 마련한 ‘김안과’의 설립자 명곡(明谷) 김희수 박사(85세). 폐교 위기에 놓인 한 중학교를 인수하면서 건양대를 설립하기까지 그의 삶은 세상과의 소통과 함께해왔다. 건양대 총장을 지내고 있는 요즘 그는 새벽부터 대학병원과 캠퍼스를 돌며 환자와 학생, 시설을 점검한다. 길가에 떨어진 담배 꽁초 하나도 손수 줍는 그는 안팎에서 ‘소통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는 의사 출신으로 육영사업에 뛰어든 그의 삶을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일방통행 거두고 '다함께 목소리' 낼 수 있게
아이디어 학생의견 수용해 과감히 철회키도
지역주민과 함께 성장 '평생교육원' 문 활짝

21세기가 열리고 내 삶에도 2막이 시작됐다. 2000년 건양대병원을 개원했고, 1년 후엔 건양대 4대 총장이 됐다. 나로서는 병원과 학교의 운명이 동시에 시작된 것이다. 무슨 일이든 초기에 잘 다져가는 일이 중요하기에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일명 ‘IMF사태’(외환위기)가 터져 전국이 들썩였다.

사실 그 동안은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내 판단만으로 극복해왔던 건 아니다. 주변의 도움과 운도 참 많았다. 그런데 대학이라는 조직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복잡했다. 게다가 당시에 지역 대학들이 줄줄이 힘을 잃어가고 있었으니, 이럴 때일수록 총장인 내가 더더욱 힘을 내야했다. 그래서였다. 학교 발전을 위해 내가 항상 따뜻할 수만은 없었다. 때때로 카리스마(charisma)가 필요했다.

나는 나만의 리더십을 고민했다. 요즘이야 서점에 가면 리더십에 관한 책이 참 많다. 그땐 리더십을 제목으로 달고 있는 책조차 흔하지 않았다. 서점을 돌아다니며 얻은 나의 결론은 이렇다.

사람마다 그리고 이끌어야할 조직의 특성에 따라 리더십은 각기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어디에서나 ‘옳다’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소통’이다. 왜 소통이냐고 묻는다면 리더십이 왜 필요한 지부터 생각해보길 바란다.

학교의 경우 교칙과 교육, 생활환경 등에서 학생과 교수, 직원 뿐 아니라 학교를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의 바라는 바를 잘 들어주는 것이 (학교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는 길이다. 결국엔 학교를 성장시킨다. 그래서 나는 총장이라는 직책으로 나의 뜻에 일방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견을 취합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실현시키는 리더가 되기로 했다. 그것은 총장의 임무다.

그러나 총장이 아무리 소통을 부르짖어봐야 기존의 수직적인 조직 틀이 바뀌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물이 조용히 머무르려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수평과 균형을 유지해야하는 것처럼 조직도 마찬가지다. 부침과 갈등, 오해없이 평온한 관계가 되려면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향적 지시를 거두고, 다함께 목소리를 내 움직이는 수평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상대도 움직인다= 구체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삼았다. 나이와 지위가 높다고 남에게 ‘감 놔라 배 놔라’ 지시하고 간섭하는 늙은이가 되긴 싫었다. 내가 육영사업을 하는 이유가 누군가에게 나를 내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먼저 해보기로 했다. 일단 새벽에 일어나서 교정을 거닐었다.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내가 학생이라면 등하교길마다 얼마나 인상을 찌푸렸을까.’

양복과 구두를 벗고 점퍼 차림에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한 손엔 집게를 들었다. 그 길로 나는 매일 새벽 담배꽁초를 줍고 다녔다. 그랬더니 웬 노인이 쓰레기를 줍고 다닌다며 소문이 났다. 알고 보니 이 대학 총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지역언론과 인터뷰까지 했다. 그때 언론에선 내게 ‘꽁초 줍는 총장’이라고 별명을 붙여줬다.

학교 구성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지시나 간섭 없이도 선뜻 일어나 쓰레기를 주웠다. 사람들은 길거리 아무 곳에나 버리려다가도 쓰레기통을 찾았다.

그렇다. 소통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수평적 사고로 움직인 몸이 때로는 그 어떤 말보다 정직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이것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비결이다.

■휴대전화 보관함의 탄생 비화= 80대 중반이 된 지금도 나는 학생과 학교를 위한 일이라면 매일같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수첩에 메모해두었다가 학생과 직원들에게 물어본다. 그리고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은 후 실행에 옮긴다. ‘취업매직센터’를 만든 일은 가장 만족감 높은 기획이었다.

그날도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휴대전화 화면에 코를 박고 걸어가는 학생들이 보였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인기척도 못 듣는 것 같았다. 걱정스러웠다. 처음엔 교수들에게 강의시간에 휴대전화 문제로 따끔하게 혼내라고 일렀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되려 학생들의 반감만 커지는 듯했다. 강압적인 방법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었다.

자발적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렇게 나온 게 건양대만의 문화인 휴대전화 보관함이다. 강의 직전,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번호가 붙은 상자 안에 휴대전화를 넣어두는 것이다. 나중엔 누가 시키지 않고, 감시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은 스스로 휴대전화를 상자에 넣었다. 공부할 의지를 다지면서. 상자는 금세 휴대전화로 가득찼다.

물론 내가 고안한 아이디어가 전부 실현된 것은 아니다. 실패 사례도 있다. ‘괴짜총장’이라 불릴 만큼 평소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이다. 직업이 의사라 그런지 학생들을 보면 항상 건강 걱정이 앞선다.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여학생들이 예외일 리 없었다. 강의시간마다 건물 이동이 잦을 텐데 발목에 무리가 가는 것이 걱정됐다. 더구나 강의실이나 도서관에선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면학 분위기를 해칠 것 아닌가. 그래서 학내에선 굽 있는 구두를 실내화로 갈아 신도록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반응은 차가웠다. ‘총장님, 구두는 패션이에요’라며 총학생회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다. 허허,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어디 있겠는가. 개성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는 무리가 있다고 반성했다.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 아이디어는 미련 없이 철회했다. 다만 우리 학생들에게 공부할 때만큼은 최대한 편안한 신발을 신고, 실내에서 걸을 때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뿐사뿐 걸어주길 당부했다. 나의 걱정이 진심으로 전달된 걸까. 요즘 건양대엔 또각또각 소리 보다 사뿐사뿐한 발소리가 많아졌다.

■“맞춤형 리더십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할 것”= 논산에는 대학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논산은 내 삶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고향이다. 그만큼 애틋하다. 이왕이면 건양대가 지역과 함께 발전하는 대학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1995년 평생교육원을 개원해 주민들에게 교양·취미, 전문 강좌 같은 학습의 장을 열어뒀다.

논산시와 대전시(서구) 주민들에게 꾸준하고 친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건양대병원도 지었다. 이 노력은 외환위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학교와 병원 그리고 내가 완전히 한뜻으로 지역발전을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었다. 감개무량하게도 안팎으로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지역혁신 특성화 시범사업에 주관기관으로 선정(2004년)됐고, 제5회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의 산학연 유공단체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해 故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협동과 맞춤형 리더십으로 나의 조직과 꿈을 이끌고 나아갈 것이다. 혼자만 알고 제멋대로 하려는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으로부터 여러 입장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할 땐 제일 먼저 실제로 사용할 사람들의 기호와 편리를 파악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내가 먼저 움직인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의 뜻에 힘을 합해 함께 해줄 것이라 믿는다.  

<정리=이은진 한국대학신문 객원기자>

*** 이 시리즈는 대학 창립자가 초기 건학이념과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교육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살아 있는 참 교육자’를 발굴, 소개하고자 8부작으로 기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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