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행복 본지 논설위원·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인간존중의 원리를 배우게 하고 인류가 쌓아 온 문화의 정수를 습득하도록 해주기 때문에, 인문학은 올바른 인격체가 갖춰야 할 소양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교육’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인문적 소양을 충분히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이과를 통합한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충분히 환영할 일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독창적 사고와 견해를 용인하고, 획일화되지 않은 개별적 성과마다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역사 분야 역시 예외일 수는 없으니, 동일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8종의 검인정 교과서를 선정한 후 학교와 교사에게 최종 선택을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 양상을 보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념대립으로의 비화조차 우려될 정도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국사 교과서에 대한 교육계의 요구가 충분히 표현되었고, 어떤 교과서를 필요로 하는지 역시 분명히 드러났으니, 더 이상의 논란은 자제해도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교과서를 사법적으로도 말소시켜야만 한다는 주장이 수그러들지 않는가 하면, 이미 교육부의 검정을 획득한 한국사 교과서의 대부분이 북한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을 밝혀내겠다는 말이 서슴없이 내뱉어지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필자의 머리에는 1960년대 중반의 중국이 얼핏 떠올랐다. 시대와 상황이 전혀 다르고, 우리에게 그런 일이 닥칠 가능성 또한 없지만, 비정치적 사안이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는 사태의 빌미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문학작품에 대한 평론이 그 발단이었는데, 정치적 비화를 막으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역부족이었고, 그 후의 10여 년 동안 엄청난 고통이 중국을 덮쳤다. 그래서 지금의 중국인들은 그것을 “십년동란(十年動亂)”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의 사태를 초래한 요인이 자신들의 역사와 의식 속에 잠재해 있었다고 진단하였다. 

한 세기 남짓 동안의 민족적 고초들이 빚은 상처가 우리의 의식에 잠재해 있다가 계기만 조성되면 국론분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식민지 피지배, 분단과 민족상잔, 그리고 몇몇 쓰라린 기억들이 우리로 하여금 평상심을 잃도록 하지는 않는가 짚어봐야 한다. 근현대사의 후유증이 이념 대립의 조성에 늘 기여해오지 않았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지나온 삶의 경험들이 스스로의 객관적 판단을 저해하지는 않는가 자문해봐야 한다. 이제는 역사 트라우마로부터 애써 벗어나야 한다. 아물었던 상처를 다시 후비면서 이념대립 국면이 조성되어도, 너무 분노하거나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국가관과 건전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역사교육, 남북관계를 올바로 세워가며 통일한국을 이루게 하는 역사교육, 다문화 세상을 이끌어 갈 열린 세계관을 심어주는 역사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의 글로벌 상황에서는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자존을 보장할 수 있는 역사관의 정립이 더없이 중요하기도 하다. 역사교육 문제를 학계에 맡겨 이성적 토론으로 풀어가자는 주장을 제기한다. 모 고등학교에 대해, 관할교육청과 교육부가 서로 나서서 교과서 채택과 철회 과정을 조사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전문적 판단에 맡기는 것만이 타당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해결책일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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