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조리 기능장, 최연소 호텔 조리 차장 거쳐 초당대 조리과학부 교수로

[한국대학신문 신나리 기자] 한국국제요리대회, 남도음식 요리대회, 담양 죽순 요리대회… 연구실을 들어서자마자 20개가 넘는 심사위원 명찰이 눈에 띈다. 책장에는 1980년대 손으로 옮겨 쓴 조리법 공책이 여러 권이다.

“아직도 이걸 보면 그 시절이 생각나 눈물이 납니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갖고 있네요.”

누렇게 바랜 공책을 쓰다듬는 이인성 초당대 조리과학부 교수.  이 교수는 작년 12월, 조리 명인에 선정됐다. (사)한국음식관광협회에서 선정하는 조리 명인은 조리 업계에서 30년 이상의 종사자만 지원할 수 있다. 그간의 업적과 성과를 엄격히 평가하기에 지난 8년간 오직 12명만 조리 명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1978년. 그의 나이 19살, 처음 주방에 들어섰다. 프랑스 유학을 꿈꿨던 소년은 유학 대신 호텔에서 프랑스 요리를 담당했다. 호텔에서 프랑스 요리 부서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복잡하고 미세한 양념의 차이를 알고 제대로 요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요리사의 길에 들어선 그는 93년, 국가가 정식으로 인정하는 조리 기능장이 된다. 우리나라 3호 조리 기능장이자 당시 최연소 기능장이다. 최연소라는 타이틀은 그를 좇아다녔다. 서른여덟에 호텔 최연소 조리 차장으로 145명을 거느리는 호텔의 수장이 됐다.

‘내 접시에 올리면 혼이 담겨야 한다. 그것만이 나의 요리다. 내 모든 것을 쏟아낸다.’

그의 요리 철학이다. 철칙을 지키며 현장을 지휘하고 즐겼다.

2001년부터 그의 일터가 변했다. 주방이 아닌 강의실에서, 정식 요리사가 아닌 요리사를 꿈꾸는 학생들과 함께 했다. 초당대 조리과확부의 교수로의 삶을 시작했다.

“현장에 대한 미련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만, 학생들과 함께하는 학교는 또 학교만의 재미와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현장에는 계속해서 요리를 만들고 유행을 파악하죠. 학교에서는 기본을 다듬어요. 칼질의 기본, 양념의 기본 등 모든 기본을 배우죠. 기본은 변하지 않잖아요.”

현재 초당대의 조리과학부는 요리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을 자랑하고 있다. ‘2011 서울세계관광음식박람회 학생 요리대회’에서 국제요리부문의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세 이하만 참가할 수 있는 주니어 라이브 경연은 초당대 조리과학부 학생들의 이름이 거의 매년 수상자 리스트에 올라간다.

이 교수는 이 학부 재학생들이 ‘맞춤형 요리사’가 되기를 바란다. 고기를 제일 잘 다루거나, 한식에 특별하거나, 양식에 특화되어 있는 학생들을 학교에서 길러내고 싶어 한다.

“요리의 기본은 배우되 분야별로 특성화 돼있는 학생이 경쟁력을 갖습니다. 3학년 이상이 되면 자신이 선택한 쪽 요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실습하는 거죠. 이게 바로 특성화 교육입니다.”

이미 우리나라 웬만한 호텔의 조리실에는 초당대 조리과학부 출신이 적쟎이 포진해있다. 관련 학과의 교수로 활동하는 이도 여럿이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여전히 더 특화되고, 더 잘하는 학생들을 배출하고 싶다고 말한다. 30여 년 전, 손으로 조리법을 베껴 쓰던 때의 꿈과는 다르지만 어찌 보면 결국 ‘요리와 함께 사는’ 같은 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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