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의사 명곡 김희수의 삶과 육영사업<7> 융합·실무 중심의 대학교육

*** 국내 안과전문병원의 기틀을 마련한 ‘김안과’의 설립자 명곡(明谷) 김희수 박사(85세). 폐교 위기에 놓인 한 중학교를 인수하면서 건양대를 설립하기까지 그의 삶은 세상과의 소통과 함께해왔다. 건양대 총장을 지내고 있는 요즘 그는 새벽부터 대학병원과 캠퍼스를 돌며 환자와 학생, 시설을 점검한다. 길가에 떨어진 담배 꽁초 하나도 손수 줍는 그는 안팎에서 ‘소통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는 의사 출신으로 육영사업에 뛰어든 그의 삶을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미래 준비하는 개개인에 '맞춤형 취업컨설팅'
인성 기본 충실한 교육, 실무 능통한 인재로
단순 합체 아닌 신가치 창출하는 융합 추구

“우리 학생들, 졸업 후에도 책임지겠습니다!”

총장을 맡고부턴 해마다 입학식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때마다 나는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적어도 건양대 학생들은 20대 초반, 소중한 청춘을 불안한 미래 걱정으로 잠 못 이루며 보내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말이야 쉽게 할 수 있지만, 나는 진심을 담은 약속을 소중히 지켜가고 있다.

전통에만 함몰되지 않은 21세기 실무 중심의 수업을 도입했고, 취업매직센터를 설치해 학생 한 명 한 명을 가까이에서 맞춤형 컨설팅을 받게 했다. 취업컨설팅은 학점과는 무관하게 제공했다. 이곳에서 자신감과 만족감을 얻는 학생들은 더 튼실히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다. 결과적인 얘기지만 학생들은 졸업 후에 곧바로 사회생활이 가능한 인재로 성장했다. 이를 발판으로 건양대는 매년 좋은 소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엔 건양대가 해마다 높은 취업률로 주목 받을 때마다 따가운 눈총도 감내해야 했다. 대학은 학문하는 곳인데 너무 취업이란 목표 하나에 매몰돼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고 말해왔다.

■인성과 기초학문으로 다져진 실무형 인재들= 1980년대 말, 건양대를 세우기로 결심한 그 때 나의 대학교육 이상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어느 곳에서나 기본이 되는 인성교육이었고, 둘째는 탄탄한 기초학문 교육이며, 셋째는 이를 바탕으로 한 실무교육이었다. 즉 실무에 능통하려면 인성과 기초학문이 기본이 돼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당장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수월하게(?) 하려고 기초학문 보다는 실용 학문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또 자신의 적성과 관계없이 무작정 취업률 높은 학과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덩달아 대학들도 기초학문 분야와 응용학문 분야를 한 개의 학부로 묶어 경쟁시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랜 역사를 가진 기초학문이 힘없이 비틀거리고 있다.

이대로 계속되면 문제가 심각하다. 대학은 기초 소양과 직업 실무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채 ‘실력 없는 졸업생’만을 배출할 것이고, 학생 개인의 삶은 오직 취업만이 정답인 듯 재미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20대에는 무얼 하든 낭만적인 삶을 살아야할 것 같다. 20대가 지나고 나면 낭만보다는 현실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 생각엔 20대가 부럽다고도 하지만 요즘의 학생들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사계절의 아름다움도 만끽하지 못할 만큼 스펙과 싸우느라 바쁘게 살아간다.

스펙쌓기에 청춘을 다 바쳐서 취업하면 행복할까. 아니다. 일터에 가도 새로운 슬럼프가 금세 찾아온다. 적성에 안 맞는 일을 매일 반나절 넘게 하면서 뿌듯함이나 흥미를 못 느낀다면 점차 업무 능률이 떨어지고 결국엔 회사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하면 앞이 깜깜할 건 예견된 일이다.

미래학자들이 예측하길, 현재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평생에 걸쳐 직업을 5~6번 바꿀 것이라고 했다. 평균 연령은 이미 80세를 넘었고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나. 대학 졸업 후에 일할 시간이 너무 많은데, 주체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평생을 이곳저곳을 방황할 텐가.

■‘취업’은 아는 것을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 건양대가 취업 잘되는 학교로 명성을 얻었지만 나에게 ‘취업’이란 단어는 ‘돈 벌기의 시작’과 같은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적어도 건양대는 그렇다. 쓸모없는 것을 배우거나 배운 것을 사용하지 못해 쓸모없는 것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언제 어느 곳에 떨어뜨려 놓더라도 기본기가 탄탄하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센스 있는 인재’를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강조한 게 기본소양이다.

우선 인문·사회계통의 기초학문을 중심으로 편성했다. 입학과 동시에 교양과 덕목을 강조하는데 (내가 육영사업과 의료사업 모두에서 인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키운 건양대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예의 바르고 협력하는 인재가 될 것이다.

비대한 지식으로 높은 콧대를 튕기는 인재보다는 실력과 바른인성을 겸비한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내가 바랐던 건양대 학생들의 졸업 후 모습이다. 더불어 그들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찾아 첫 발을 내딛는 것, 이것이 내가 그리는 ‘취업’이다.

■융합교육은 비빔밥 같은 맛= 싱그러운 봄날, 직원들과 봄나물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어떤 직원은 각각의 반찬들이 고유의 향이 있다며 그것들을 하나씩 천천히 곱씹으며 먹었다. 또 다른 직원은 이미 나물맛은 다 안다면서 콩나물·시금치·도라지·고사리 등을 둥글넓적한 그릇에 넣고 소고기·달걀·고추장을 얹더니 척척 비벼 먹었다.

어떤 방법으로 먹든 비빔밥 맛은 다 좋다. 다만 비빔밥에 대한 내 소신을 말하자면 각각의 나물을 합쳤을 때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맛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융합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의 혼합뿐 아니라 요즘은 가요도 장르의 혼합이, 학계에서는 인문학과 과학, 예술과 과학이 서로 넘나들며 융합한다. 산업계에서도 전통 제조업이 IT와 융합해 말 그대로 똑똑하게(smart) 발전하고 있다. 융합이 대세긴 대세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오래전부터 융합 속에 살고 있었다. 대학 안에서는 인성·기초학문과 실무의 융합, 병원에서도 인성·의료실력과 의료서비스의 융합, 내 삶에선 육영사업과 의료사업의 융합을 수행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것들이 구별없이 하나로 합해지는 단순한 ‘합체’로 끝내고 싶진 않다. 마치 비빔밥의 새로운 맛처럼 각각의 능력과 매력이 녹아들어서 보다 새롭고 나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진정한 융합 아닐까.  

건양대에서 그토록 기초학문과 실무를 융합한 교육을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비빔밥보다 나물 하나 하나의 참맛을 음미하는 것도 큰 매력이 있다. 이처럼 모든 학생이 졸업과 동시에 곧장 사회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길 원하는 건 아니다. 학문을 전문적으로 깊숙히 공부하고 싶은 학생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도 똑같이 비빔밥을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부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랬더니 미국 학계에서 활약하는 건양대 졸업생들도 나왔다. 건설환경공학과를 졸업한 서준원 교수는 미국 사우스다코타주립대 토목환경공학부 조교수로 임용됐다. 국내에서도 학문적 깊이와 실력을 인정받아 산업통상자원부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될 정도였다. 미국 네바다주립대 화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강준용 교수도 식품생명공학과를 졸업했다.

학계에서 활약하는 졸업생들을 보면 뭉클할만큼 기특하다. 지금도 졸업생들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입학식 날 학생과 학부모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떠올린다. 그들과 한 약속이었지만 내 자신과 한 약속이기도 했기에 이를 지켜나가는 하루하루가 뿌듯하다. 그런데 약속은 한 번 지키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유지해야하는 것 아닐까.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모든 학생을 끝까지 책임질 것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틀거리에 맞춰넣지 않고 그들이 원하고 또 기대하는 교육으로 말이다.

<정리=이은진 한국대학신문 객원기자>
 
*** 이 시리즈는 대학 창립자가 초기 건학이념과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교육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살아 있는 참 교육자’를 발굴, 소개하고자 8부작으로 기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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