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관(본지 논설위원·덕성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사학문제가 고질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고질병이 고쳐져야 한국교육이 선진화할 수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사학문제는 왜 한국교육의 고질적 병폐가 되었는가? 초기 사학은 식민지시대에 근대적 계몽을 위한 토대였고 건국 초에는 문제가 있는대로 국가의 부족한 교육재정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해온 비중은 그만큼 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학경영자들이 비중이 커진 만큼 공적인 책무도 커진다는 것을 몰각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족벌지배, 전횡, 부정, 비리, 분규 등으로 점철된 사학의 역사는 왜곡된 한국의 교육현실을 늘 환기시킨다.

그렇지만 사학문제는 개별 사학경영자들의 자질부족 문제만은 아니다.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고질적으로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는 것이다. 매듭이 꽉 물려서 고착되어 있으면 도저히 풀기 어려워지는데 사학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다. 필자는 고약하게 꼬여 있는 사학문제를 기득권이 세 겹으로 중첩된 구조라고 분석한 적이 있다. 즉 가족적이고 폐쇄적인 운영방식, 보수권력과의 연계, 사학의 소유권을 옹호해온 법적 뒷받침이 그것이다. 상습적인 비리가 드러나 대학이 극심한 분규를 겪고 교육현장이 황폐화되는 재앙이 발생해도 그 당사자인 사학권력은 건재했다. 그 꼬인 매듭은 교육을 걱정하는 입장에서는 풀어내야할 숙제이지만, 사학권력에게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보호해주는 동아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지독하게 꼬여 있어서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그 매듭이 해체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대학에 닥친 구조조정이라는 위기국면이다. 구조조정이 교수와 학생을 비롯한 구성원들에게 위기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아울러 대학 자체가, 한국 교육 자체가 위기에 빠진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위기에 봉착한 쪽은 바로 사학재단이다. 지금까지는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도 불사조처럼 살아나 군림해왔지만, 이제 바야흐로 그런 사학들이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부실한 대학들도 알고보면 족벌경영의 폐해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시대를 거스른 지난 정부의 만행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쫓겨났던 구재단들이 대거 복귀한 것이 현 상황이다. 그러나 상지대와 대구대 사태가 그렇듯 복귀한 구재단의 횡포로 행정은 거의 마비되고 대학은 내부갈등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당장은 과거와 같은 행태를 삼가고 있는 곳도 있지만 구재단의 속성 상 언제 그런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긴장이 지속되는 곳도 많다. 도처에서 분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보수정권조차도 문제사학을 더 이상 비호하기 어려운 국면이 올 것이다.  

필자가 누구나가 다 우려하고 불안해하는 대학구조조정을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위기야말로 대처하기에 따라서는 한국교육의 고질적 병폐를 일거에 해소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분명히 해 둘 것은 사학의 퇴출이란 그 운영진인 재단이 물러난다는 것일 뿐 대학 자체를 쉽게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역점은 재단이 퇴출된 문제사학이나 부실사학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두어져야 한다. 사실 답은 나와 있다. 그런 사학들을 공공대학(public university)으로 전환하여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높여서 선진화는 길이다.

박근혜정부에는 그런 의지가 없기 때문에 기업식 구조조정에 불과한 현재의 구조개혁안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구조의 개편을 둘러싼 10년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과연 10년 후에도 한국 대학이 족벌사학의 지배 아래서 신음할 것인지 아니면 공공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화된 고등교육체제로 일신될 것이지는 이 싸움의 승패에 달려 있다. 이 시기 대학교육의 주체인 교수들의 책무는 그만큼 크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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