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수 따라 연금·보험료 등 일부 매년 6600만~199억 원까지 납부해야

2012년 완납 20개大 뿐…병원·기업·종교 후원이 법인의 ‘유·무능’ 갈라
이진우 전 계명대 총장 “법인 책무성은 이사들, 발전기금 끌어오란 것”

[한국대학신문 최성욱·이재 기자] 사립대 법인들이 매년 대학에 출연해야할 법정부담금을 내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법정부담금은 교수와 직원을 고용한 법인이 이들의 사학연금, 건강보험료 등의 일부를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다. 직원 수에 따라 적게는 6600만원(대구외대)에서 많게는 199억원(연세대)을 매년 납부해야 한다. 사립대 법인들은 기부금·주식·부동산·임대사업 등 수익사업이나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자수익으로 법정부담금을 마련해 왔지만,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재원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6일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2년 법정부담금 기준액 ‘10억원 이상’ 전국 95개 사립대 법인 중 을지대, 포스텍을 비롯한 20개(21.1%) 법인만이 법정부담금을 완납했다. 법정부담금을 완납하지 못한 서강대, 한양대 등 75개(78.9%) 대학법인의 경우 미납분을 교비에서 끌어다 썼다.

95개 대학의 평균 법정부담금 부담율은 48.5%에 그쳤다. 조사대상 법인 중 절반이 넘는 51개(53.7%) 법인은 납부해야 할 금액의 50%도 채우지 못했다. 심지어 지급기준 금액의 10%에도 못미친 법인은 18곳(18.9%)이나 된다. 특히 경기대·대구대·명지대는 법정부담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제47조)에 따라 법인이 납부하지 못한 법정부담금의 나머지 금액은 등록금이 포함돼 있는 ‘교비’로 대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언론은 등록금 이슈가 터져나올 때마다 법정부담금을 완납해 줄 것을 법인에 촉구했다. 그러나 법인들은 이런 여론을 이른바 ‘마른걸레 짜기’에 비유한다. 대학법인이 수익사업체가 아닌 이상 연간 수억~수백억원대의 법정부담금을 내는 건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논란은 법인들이 법정부담금을 있는데 안 내는 것인지, 없어서 못 내는 것인지로 모아지고 있다.

■법인 “교직원이 법인서 일하나” vs 시민단체 “인사·재정권 틀어쥐고 책임 방기”= 최근 정부 대학평가에 ‘법인지표’를 도입하면서 법정부담금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법정부담금을 납부하면 ‘유능한 법인’이고, 그렇지 못하면 ‘무능한 법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법정부담금은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대학 교직원들의 건강보험료와 사립학교교직원 연금의 50%를 납부해주는 데 쓰인다. 대학의 규모가 커져 교직원 수가 늘면 그만큼 법인이 내야할 법정부담금도 커지게 된다.

학교법인 연세대학교의 경우 2012년 납부해야할 법정부담금은 약 199억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았다. 연세세브란스병원과 연세우유 등을 운영하면서 재정이 탄탄할 것으로 알려진 연세대는 그러나 2012년 법정부담금의 87.7%인 174억원만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와 한양대 등 법정부담금 기준액 100억원이 넘는 두 대학의 법인도 60%만 납부했다.

이들 법인의 공통된 아우성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법정부담금 부담률이 100%(완납)를 넘는 대학들을 살펴보면 경제적으로 ‘유능한 법인’과 ‘무능한 법인’이 뚜렷이 대비된다. 2012년 가장 많은 법정부담금을 낸 을지대 법인 을지학원(161.8%)은 병원을 소유하고 있다. 뒤를 이은 포스텍(135.7%)은 대학 설립 시 포스코가 출연한 7000억원의 기금을 주식·채권·부동산 등 다방면으로 운용하면서 투자·임대·이자수익으로 법정부담금을 조성하고 있다. 이밖에도 가톨릭대(103.6%)처럼 종교재단이 설립한 대학도 ‘완납그룹’에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병원, 대기업, 종교재단 등 든든한 배경이 있는 대학법인은 이른바 ‘유능한 법인’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대학법인은 수익사업을 벌일 수 있다. 법정부담금을 내고 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제한이 없다. 사립학교법과 동법시행령은 “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안에서 그 수익을 사립학교의 경영에 충당하기 위하여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원칙적으로 사업의 범위는 따로 정하고 있지 않으며, 유가증권이나 부동산 임대, 사업체 경영 등 자유롭다.

이른 바 ‘돈 없는 법인’들은 손실을 무릅쓰고 사업에 손을 대거나 투자를  감행해야할 처지라며 난감한 입장이다. 삼육학원(삼육대)이 대표적이다. 삼육학원은 수익사업으로 삼육식품을 운영하고 있지만 법정부담금 기준액 16억원 중 10억3000만원만 냈다. 박세현 법인사무국장은 “수익사업체 몇 개 운영해서는 법인의 역할을 해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기업운영을 위한 재투자 비용없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반기업에 비해 법인이 운영하는 기업의 경우 경영 노하우가 적은데다 시장환경도 좋지 않다. 신규투자를 해야한다면 토지나 건물을 매입해야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대학법인이 토지나 건물투자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대학교육연구소(소장 박거용)에 따르면 1997년 사립대의 수익용 기본재산 중 토지가 차지한 비율은 53%다. 그러나 2012년엔 67%까지 높아졌다. 같은 기간 신탁예금이나 유가증권 투자비중은 모두 하락했다. 이는 대학이 ‘부동산 장사에만 나선다’는 비판이 제기됐던 이유다.

법정부담금 대책을 묻자 충남의 한 사립대 설립자는 “돈을 훔쳐오기라도 하란 말이냐”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법정부담금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교직원들을 선발하는 곳은 법인이지만, 이들이 일하고 월급 받는 곳은 대학이므로 법인이 직원의 연금 등을 보전해줘야한다는 것은 과중한 짐을 지우는 것이란 말이다.

박승철 경기대 이사장은 “교직원의 실질적 고용주는 이사회가 아니라 대학이지 않느냐. 인건비도 대학에서 나가는데 왜 법정부담금만 법인이 내야 하느냐”고 따져물었다. 박 이사장은 위험성이 큰 수익사업체 대신 동문과 기업을 대상으로 발전기금을 모금해 법정부담금을 조성하고 있다.

법인에서 제기하는 불만은 △법인과 교비회계의 분리 △사용자·피고용인 관계의 불합치다. 일반기업에서는 법인지원비 등을 기업수익에서 보조하는데 대학은 전혀 그런 구조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박 이사장의 주장처럼 교수나 직원은 대학에 ‘용역(노동)’을 제공하고 대학으로부터 임금을 받기 때문에 실사용자는 법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면 이 같은 법인의 볼멘소리가 무책임하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지난 1996년 서울 주요 사립대의 법정부담금 미납문제를 처음 들고나온 대학교육연구소 측은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김삼호 연구원은 “법인이 법정부담금 등을 납부하지 않겠다면 법인으로서 대학에 가지는 경영권을 포기해야한다. 예·결산부터 교직원 채용, 총장 임면권까지 장악하고 있는 법인이 사용자가 아니란 주장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사용자가 피고용인의 4대보험을 보조하는 것은 일반기업도 마찬가지다. 사립대에만 특별히 더 큰 의무를 부과한 것이 아님에도 그간 의무를 지키지 않다가 규정이 강해지니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재홍 한국방송대 교수(법학)도 법정부담금은 법인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의무라는 데 공감했다. 임 교수는 “법인이 설립주체로서 사립대 운영경비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며 “운영경비의 70% 가량을 등록금에 의존해왔으면서 인사권이나 운영권을 행사할 때는 자율성을 내세운다”고 꼬집었다.

핵심은 ‘돈’이다. 여러 논란 속에도 결국엔 법인이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교육부 관계자도 “대다수 사립대는 설립 당시 대학설립 운영규정의 교지·교사 확보 등 설립기준을 겨우 맞추는 데 불과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법인과 시민사회단체는 연간 수억~수백억원대의 법정부담금을 내놓지 못할 법인에 대학설립을 인가해준 교육부에 화살을 돌렸다.

감독청인 교육부는 법정부담금을 감당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법인에 설립허가를 내주고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부 취재 결과 교육부는 법인의 재정능력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교육부 담당자는 “법인 제무재표를 봤을 때 사립대 절반 가량이 ‘돈이 없어서’ 법정부담금을 낼 수 없다. 더구나 예금이자나 부동산 현황이 나쁘니 법인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막혀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또 “법정부담금은 사실상 인건비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지급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도 이해는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최근 내놓은 법정부담금 관련 ‘결정’은 사학연금에 한해 교육부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교비로 대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법정부담금의 법인부담을 완화시켰다기보다 오히려 법인에 대한 감시조항을 강화한 것이다. 이전의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에 따르면 대학은 관리감독청의 특별한 승인 없이도 교비로 법정부담금 납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설립인가를 내주지 말았어야 했다는 때늦은 비판에 대해 교육부 측은 “설립 당시는 최소 조건을 충족해서 인가를 내줬고, 설립 이후 대학들이 몸집을 키우면서 법정부담금이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늘어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교육부는 그러나 “부담금 기준에 한참 미달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주의’를 주는 것 말고는 물리적으로 제재할 법령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사 정원 늘리고 ‘펀드레이저’ 역할해야= 교육부가 관리·감독과 제도 개선 어느 것에도 나서지 않고 관망하는 사이 법정부담금을 둘러싼 논의는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다. 법인수익은 숨겨둔 채 교비로 법정부담금을 충당하는 일부 불성실한 법인들 탓에 싸잡아 비난을 받는다며 억울해하는 대학경영자들의 반응도 여전하다.

이 때문에 법인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법인이 수익사업을 벌여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이사진이 발전기금을 유치하는 데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사립대 법인이사회는 10명 내외로 구성된 데다 이사진이 친인척 비리에 연루되거나 이사 한두 명에 의해 의사결정이 좌우되는 등 부작용을 노출해왔다.

이진우 전 계명대 총장은 “법인의 책무성은 대학이 교육과 연구활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뒷받침하는 역할 즉 발전기금을 끌어오기 위해 이사들이 얼마나 노력했느냐”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사진이 제 역할(기부금 유치)을 하지 못하는 사이 사립대의 가장 큰 후원자는 정부(재정지원사업)가 됐고,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에 따라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반복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이 전 총장은 ‘이사진 확대’ 방안을 내놨다. 이사 50여명이 집단이사체제를 이뤄 연간 수천억원대의 기부금을 유치하는 미국대학의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의견이다. 미국 유수대학은 전임 총장·정치인·투자분석가·공연기획자·첼리스트·소설가 등 각계 인사들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이들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기부금을 끌어오고 있다.

이 전 총장은 “법인 구성원인 이사들을 움직이지 않은 채 ‘돈 벌어야 한다’는 압력만 받으니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며 “이사진을 대폭 늘려 발전기금을 적극 유치하도록 독려해야 안정성을 갖춘 법인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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