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을보라③]건강한 여든이 스무살 청춘들에게 “벗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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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의사 명곡 김희수의 삶과 육영사업<최종회> 의료·교육·봉사 그리고 건강

*** 국내 안과전문병원의 기틀을 마련한 ‘김안과’의 설립자 명곡(明谷) 김희수 박사(85세). 폐교 위기에 놓인 한 중학교를 인수하면서 건양대를 설립하기까지 그의 삶은 세상과의 소통과 함께해왔다. 건양대 총장을 지내고 있는 요즘 그는 새벽부터 대학병원과 캠퍼스를 돌며 환자와 학생, 시설을 점검한다. 길가에 떨어진 담배 꽁초 하나도 손수 줍는 그는 안팎에서 ‘소통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는 의사 출신으로 육영사업에 뛰어든 그의 삶을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의술이 인술이라면, 교육도 인술…위기 해법은 ‘발품’에 있다고 믿어
매일밤 ‘기분 좋은 상상’ 아침이면 실행 “샘물과 같은 학생들의 눈빛”

안과의사로 시작한 나의 삶은 중고교·대학 육영사업과 대학병원장에 이르러 어느덧 아흔의 일기(一期)를 바라보고 있다. 명함만 세어도 수십 가지가 훌쩍 넘는 걸 보니 인생이라는 묘한 감회에 젖어든다. 그렇다고 폼 날 것도, 화려할 것도 없었다. 신념대로 걸어온 한 사람의 발자취, 그 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신념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이따금 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기자들은 ‘지금까지 일궈온 일 중 어떤 것이 가장 애틋했냐’고 물었다.

■건양대는 ‘애틋한 나의 꿈’= 뻔하게 들리겠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그 아픈 손가락 중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건양대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건양대는 고난 속에 피어난 꽃처럼 소중하다. 건양대가 지금만큼 성장하기까지, 나를 비롯해 모든 건양인들이 겪었던 지난한 역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처음 대학을 세울 땐 작게 시작해서 점점 키워나갈 생각이었지만, 대학이라는 건 덩치(규모)부터 중고등학교와는 차원이 달랐다. 구성원도 많을 뿐더러 단순히 교육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 개념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무슨 일이든 선뜻 투자에 나서기는 나도, 투자자들도 벅차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꿈은 저버리기 힘들었다. 대학은 치밀한 준비과정과 용단(勇斷)이 필요한 조직이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조언을 들었고, 나 스스로 이것이 맞는 길이냐고 여러 번 되묻곤 했다. 이때마다 내게 힘을 실어준 건 이전의 경험들이었다.

육영사업의 시작은 건양중․고등학교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을 설립했지만 곧바로 외환위기의 파고에 휩쓸렸다. ‘지방대 위기설’이 나돌 때마다 더욱 더 절치부심으로 달려야했다. 그렇게 일궈온 학교다. 한 해 한 해 졸업생을 배출할 때마다 뭉클한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 모든 과정 속에 오롯이 내 삶이 함께했기에 건양대는 곧 나 자신이기도 하다. 
 
■희망을 밝혀준 김안과, 아픔을 낫게할 건양대병원= 나는 ‘의사’로 시작한 나의 뿌리를 절대 잊지 않는다. 어릴 적엔 의사가 된 형을 보며 막연하게 동경했던 직업일 뿐이었는데, 고교시절 나는 마음의 병까지 다스려주는 의사에 숭고한 매력을 느꼈다.

1946년 연세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비싼 등록금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운이 좋았는지 졸업 후 곧바로 의사가 됐다.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인지라, 나는 더 조바심이 났다. 1956년 미국으로 가는 승선 티켓을 어렵게 구했다. 유복하게 유학생활을 할 수 없었던 터라, 짧은 기간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치열해야했다. 뉴욕 프란시스병원에서 인턴으로 있는 동안 직경 24밀리미터의 안구만 들여다보고 살았다.

1962년 귀국한 후 나의 첫 사업은 ‘김안과’였다. 서울 영등포로터리 인근 건물 2층에 ‘눈 전문병원’으로 둥지를 틀었다. 김안과 이전까지는 배운대로 환자를 치료하면 그뿐이었지만 병원을 개원한 후엔 경영도 해야했다.

의사가 되려고 한 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김안과도 찢어지고 퉁퉁부은 눈보다는 사고로 인해 생채기난 마음의 병을 고치는 곳이었다.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다. 전봇대가 보이면 ‘김안과’라는 큰 마크가 박힌 홍보용 종이를 붙이고 다녔다. 수원과 안양의 전봇대에도 이 종이가 붙었다.

나름 열정적으로 병원을 운영했고 의사로서 보람도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육영사업에 뛰어든 건 의료사업과 육영사업이 무척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고객 중심의 서비스정신과 위기를 발품 하나로 돌파했던 경험이 고스란히 육영사업으로 이어졌다.      

■원래부터 내 것은 없다. 모두의 것만 존재할뿐= 내가 해온 의료사업과 육영사업을 뜻깊게 생각한다. 두 일 모두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뿌듯함을 느꼈다. 한편으론 ‘좋은 영향’이 우리 병원과 학교를 직접 찾지 않으면 미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더 넓게 나누자는 생각으로 지역의료봉사를 시작했고, ‘눈 검진의 날’을 정해 정기적으로 봉사했다. 만일 내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더라도 분명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그대로일 것이다.

한국에서 60대는 노인 대우를 받는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임하고도 남을 나이다. 나는 지금 60대를 훨씬 지나 80대를 살고 있다. ‘할아버지’하며 달려와 안기는 손주들 앞에선 영락없는 할아버지가 되니, 이제는 손주들 재롱 보는 걸 낙으로 삼고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내 속에 열정이 들끓고 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 천장 위에 무수히 많은 영상이 그려진다. 주로 학교와 병원과 관련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다. 밝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한참을 미소 짓다보면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든다. 다음 날 눈을 뜨면 곧바로 실행에 옮겨 ‘성취’하고 싶다. 이 뿌듯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래서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방팔방 움직이는 걸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면 건양대 여학생들이 날 더러 ‘총장오빠’라고 부르곤 한다. 친근함에 재미를 섞어 부르는 별명인데 그만큼 이 ‘할애비 총장’을 격 없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다. ‘총장님’이든 ‘총장오빠’든 ‘여든의 할아버지’든 ‘여든의 청년’이든, 중요한 건 여전히 나는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다. 외투 하나 걸치고 주머니에 수첩 하나 찔러넣고도 어디든 갈 수 있는 가벼운 몸, 옛 추억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구상하면 설레는 마음이다. 오늘도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스무 살 청춘들의 눈을 바라본다. 그들의 빛나는 눈빛은 내게 샘물과도 같다. 내가 그들보다 조금 더 살았고 경험했기에 더 아는 것이 있다면, 늘 그들에게 귀띔해주고 싶다. 여든의 청춘이 스물의 청춘에게 벗이 되고 싶다.

<정리=한국대학신문 이은진 객원기자>
 
*** 이 시리즈는 대학 창립자가 초기 건학이념과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교육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살아 있는 참 교육자’를 발굴, 소개하고자 8부작으로 기획되었습니다.

■ 명곡 김희수(明谷 金熺洙) 연보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출생(1928.7.9), 세브란스 의과대학(현 연세대) 입학(1946.9), 용산철도병원 인턴 발령(1950.7), 한국전쟁 중 전주구호병원 근무(1950.10~1951.9), 대전구호병원 및 대전보건소 초대소장(1951.10~1956.6), 미국 뉴욕 프란시스병원 인턴 수료(1956.7~1957.6),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안과대학원 졸업(1958.12), 시카고 안과병원 수학 후 귀국(1959.9), 인천 기독병원 안과과장 부임(1959.11), 부산 제3육군 병원 안과과장 역임(1961.7), 김안과의원 개원(1962.8),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의과대학 안과 외래교수 역임(1963.2), 연세대 의학박사 학위 취득(1966.2), 학교법인 건양학원 이사장 취임(1979.8), 양촌중학교 설립(1980.9.1), 대한안과학회 제 24대 회장 취임(1981.10), 대통령 표창(1982.3), 양촌고등학교 설립(1983.3), 의료법인 건양의료재단 설립(1984.12), 의료법인 건양의료재단 김안과병원 신축이전 개원(1986.8), 건양대 설립(1991.3), 충남 개도 백주년 기념 ‘충남을 빛낸 100인’으로 선정(1996.10), 건양대병원 개원(2000.2), 연세대 의대 총동문회 ‘올해의 동문상’ 수상(2001), 건양대 총장 취임(2001~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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