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세상살이로 그간 잊고 있던, 묻고 있던 생각과 말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재해석해줄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를 연재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좇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말은 생각(뜻)을 다할 수 없다(言不盡意, 언불진의).’ 역경(易經)의 계사전(繫辭傳)에 있는 말이다. 말은 생각을 나타내지만 말이 생각을 온전하게 나타낼 수는 없다고 하는 까닭은 생각이 말보다 더 가짓수가 많거나, 미묘하거나, 변화가 심하여 그것을 완전하고 쉽게 말이 표현하지 못 하는 데도 있을 것이다.

‘언불진의’ 때문에 말로써 표현하고 소통하는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답함을 크게 느낀다. 말싸움도 일어나고 끝없이 설명하고 변명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말의 부족을 해결하려고 하나의 말이 여러 가지 의미를 띄는 다의어(多義語)가 나오기도 한다. 비유를 쓰고 시를 짓기도 한다. 단어 하나로 생각 하나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니까 간단한 생각 하나를 말하기 위하여 문장이 동원되고 심지어 책 한 권을 쓰게 되는 일도 생긴다.
대학의 대수학 교과서 가운데는 “5차 이상의 대수방정식을 푸는 일반 연산법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정리(定理)로 끝을 맺은 것이 있다. 이 생각(정리) 하나를 말하려고 그 책 전부가 써진 것이다. 수학에서도 이러니 말의 정의가 보다 흐물흐물한 기타 분야에서는 생각과 말의 관계가 훨씬 애매하고 복잡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언불진의’는 말의 미흡한 측면을 들춘다. 하지만 말이 그 말 이상의 뜻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행간(行間)의 뜻’, ‘자간(字間)의 뜻’, ‘침묵의 언어’, ‘언외(言外)의 언(言)’이라고 불리는 것은 한 단어나 한 문장이 그 여백 속에 더 큰 생각 또는 제3의 뜻을 은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말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뜻을 은닉(隱匿)할 때 말은 그 자체로서 암호가 된다.

말은 생판 다른 뜻을 스스로 밀조(密造)하기도 한다. ‘작업’이란 말은 남녀 간의 에로틱한 접근 시도라는 뜻을 근자에 밀조해냈다. 제발 사람이 이런 뜻을 만들어 ‘작업’이라는 말에 갖다 붙였다고 말씀하지 말기 바란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럴 능력은 없다.

컴퓨터는 인간의 편리를 위하여 인간이 만들고 발전시켰으나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컴퓨터가 자신의 논리와 역량에 따라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나아가서 인간의 생각과 행동마저 규제하는 일면이 생기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말도 스스로 발전하고 새로운 뜻을 덧붙여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말은 생각을 담아 전달하는 도구나 장난감의 지위를 이미 벗어나 버린다.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미디어가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유명한 일구(一句) 그대로 말(미디어)이 생각(메시지)이 된다.

‘언불진의’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언유전의(言猶專意)’, 즉, 말이 오히려 생각을 지배하는 것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말이 생각의 표현, 전달, 접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것이 곧 말의 역할이므로 불가피하다. 그러나 말이 생각의 발생을 주무르고 생각의 형식을 규정한다고 본 맥루한의 일성에는 가공할 진실이 들어 있다.

생각은 개인의 것이고, 주관적이고, 근원적으로 자유롭다. 말은 집단의 것이고, 객관적이며, 하나의 제도요, 구조물이다. 제도는 자유를 억제할 수도 있고 자유를 보호할 수도 있다.

생각이 바다의 물고기라면 말은 바다의 산호초에 견줄 수 있다. 물고기는 산호초 덕에 풍부한 먹이를 얻고 좋은 번식 환경을 제공 받는다. 산호초 때문에 생기는 약간의 유영(遊泳) 장애는 물고기의 자유를 제약하기보다 보호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만일 산호초의 크기나 구조가 현재보다 엄청나게 커지고 제약적이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역경 계사전의‘언불진의’구절 앞에는‘서불진언(書不盡言)’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둘을 합치면 ‘글은 말을 다 적기에는 부족하고 말은 생각을 다 말하기엔 부족하다.’가 된다. 한마디로 부족 타령이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생각의 자유를 말과 글이 구속하는, 즉 집단성, 객관성, 제도의 부족 아닌 과잉 시대에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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