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세상살이로 그간 잊고 있던, 묻고 있던 생각과 말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재해석해줄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를 연재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좇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일을 다 한 다음(盡人事, 진인사),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기다려라(待天命, 대천명).

인사(人事)는 무엇인가. 사람의 일이다. 능력 차원에서 본다면 ‘사람의 능력으로 알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 될 수 있다.

도덕 차원에서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뜻도 될 수 있다. 쾌락, 욕구, 행복 차원에서는‘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는 뜻도 될 수 있다.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과 구분되고 이 두 영역 사이에는 경계선이 그어진다. 가능과 불가능, 가지(可知)와 불가지(不可知) 사이의 경계 말이다. 그래서 진인사(盡人事)는 그 경계선에 접근할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는 뜻일 수 있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 즉 의무(義務)와 금지(禁止)사이에도 경계선이 있게 된다.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것’과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것’, 즉 기호(嗜好)와 혐오(嫌惡) 사이에도 경계선이 생길 것이다.

이 세 가지 차원이 겹치는 곳에서 인사의 난국(難局)이 생길 수 있다. ‘해야 할 일’인데 ‘할 능력이 없’거나 ‘하기 싫’은 경우가 그렇다. 군복무 의무는 해야 할 일이다. 군대 생활은 하기 싫은 일일 수 있다. 취직은 해야겠는데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기 못 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고 싶’고 ‘할 수도 있’는데 ‘해서는 안 되’는 경우도 그렇다. TV 연속극에 자주 나오는 유부남이나 유부녀와의 불륜 사랑도 그 예일 것이다.

천명(天命)은 무엇인가. 사람이 알 수 없거나 할 수가 없는 것이 천명이다. 다시 말해 사람으로서는 불가지하거나 불가능한 것이 천명이다.

공자는 쉰 살에 천명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여기서 ‘천명을 안다’는 것은 천명의 컨텐츠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천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불가지, 불가능의 영역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인다.

천명의 컨텐츠를 부분적으로나마 안다고 주장하고 나오는 것이 종교와 미신이다. 신화, 예언, 점사(占辭) 등으로 천명의 컨텐츠를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 신앙 속에서 이런 컨텐츠는 현실이 된다.

뿐만 아니라 종교와 미신은 사람의 정성, 즉 인사가 천명의 운행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까지 말하기에 이른다. 부적을 붙이고 치성을 드리고 굿을 하는 것은 인사를 가지고 천명을 바꾸어 보려는 기획이다.

예수는 지상의 교회를 베드로에게 맡기며 언약했다. ‘자네가 땅에서 매면 나도 하늘에서 매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겠다.’라고. 베드로가 땅에서 매는 인사가 예수가 하늘에서 매는 천명과 직결되어 버린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의 천명(天命)은 사람의 힘으로는 알 수도, 영향을 끼칠 수도 없고, 인사와 천명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완전히 분리 되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인사(人事)만 말하면 되지 천명(天命)을 들먹일 필요는 어디 있었을까. 짐작컨대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강조함으로써 겸손을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겸손하게 능력껏 노력하고 그 결과를 담담하게 기다리는 낙관적 태도의 아름다움을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한 가지 사족(蛇足)을 붙이려 한다. 인사라는 말과 천명이라는 말은 고대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에서 널리 쓰여 왔다. 그러나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은 한국에서만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중국어판 위키피디아(維基百科)에서도, 일본의 모로바시(諸橋)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에도 이 말이 없다. 그런데 한국의 민중서관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에는 있다. 

<한국대학신문>

*** 3월부터는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의 <살며 생각하며>가 독자 여러분들 찾아갑니다. 

 

<고침>  상기 내용 중 '역사학자 정진홍 교수'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 고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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