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지난 1월 한 대학에서 장송곡이 울렸다. 검은 상복을 입은 학생대표가 조문을 읊으며 학생의 권리가 죽었음을 선언했다. 40여명의 학생이 모여 향을 피우고 조화를 건넸다. 엄숙했다.

이 대학만의 문제일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학생회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생회가 없는 대학도 다수 존재한다. 대학간 이미지 경쟁이 격화되며 대학본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던 대다수 학보사들은 이미 보도기능을 거세당했다. 학생회나 학보사나 지금은 그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학생회가 자취를 감춘 대학도 많다.

대학도 할 말은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처해 구조조정을 압박받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합심 노력해야 하는 때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만큼 ‘이견’의 존재는 달가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립대에서 학생을 30%까지 확대하도록 한 최근 등록금심의위원회 구성관련 규정 개정도 반갑지만은 않다. 대부분 대학평의원회도 반기지 않는다. 개방이사 추천과 예결산 심의 등 대학운영 전반을 들여다보는 견제가 취지지만 운영이 제대로 되는 대학은 몇 없다. 실제로 일부 대학은 근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학평의원회 구성을 외면하고 있다.

더욱이 학과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많은 구성원들이 징계 등의 조치를 받았다. 위기를  극복하기도 바쁜  대학의 이미지에 손상을 가하는 구성원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퇴학‧출교 등 대학본부로부터 쫒겨난 학생이 법원의 도움으로 학교로 돌아간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일부에선 밥그릇 싸움, 일부에선 정당한 권리 주장으로 시각이 나뉘지만 서로 양보없는 구조조정은 구성원들을 갈라놓기에 충분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나 징계가 이어지는 등 교수회 마저도 몸을 사리면서 대학 내 자정기능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은 “대학본부가 대학발전을 무기로 모든 구성원이 일치단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말마따나 대학이 위기상황이라해도 학내 구성원의 권리가 억압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숨죽인 대학에 발전은 없다. 민주적 대학운영이라는 큰 틀 안에서 대학본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학내 구성원 역시 전례 없이 다가오는 대학위기 극복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판을 깨는 어리석음을 삼가는 한해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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