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윤리 의식 없는 ‘꼼수 보도’ 더 이상 용납해선 안돼
[사설]윤리 의식 없는 ‘꼼수 보도’ 더 이상 용납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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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지 기사 문맥만 바꿔 보도하는 관행도 문제

논문표절 등 엄격한 잣대 기사에는 관대한 언론도 자성해야 

단 하나. 단 한 사람. 이를 뜻하는 한자어 단독(單獨)은 언론에서는 특종 기사를 맨 처음 보도할 때 쓴다.독자 대부분은 이를 보고 해당 언론사의 정보력·취재력 수준을 가늠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한 언론매체의 단독 보도에는 일선 기자들의 폭넓은 정보수집 능력과 발 빠른 취재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지는 지난달 24일 오후 2시 16분 모 대학으로부터 삼성이 추진하는 총장추천제 입사와 관련해 전국 200여개 대학에 대학별 할당인원을 공문으로 보냈다는 정보를 입수, 취재에 들어갔다. 대학팀 10여명의 기자가 그때부터 각 대학관계자들에게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 그날 오후 3시46분 국내 언론사 가운데 최초로 100여개 대학의 할당인원을 단독 보도했다. 뒤이어 각 대학의 반응들을 취합, 이 같은 삼성의 총장추전제가 새로운 인재등용 방식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서열화를 부추기고, 지역차별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후속보도를 계속 이어 나갔다.

24일 오후 5시6분. 한 일간지 기자가 본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본지 취재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고는 “우리도 그 기사를 써야 겠다”며 “쓰게 되면 한국대학신문 인용을 하라”는 본지기자의 말을 뒤로한 채 자기들 신문 단독이라며 기사를 올렸다.

그 한 일간지는 바로 서울신문, 서울신문이 단독이라며 보도한 ‘삼성, 대학별 총장 추천 인원 할당’ 관련 기사는 몇 가지 맥락에서 따져볼 때 기자윤리를 져버리고 꼼수를 부린 흔적이 역력하다.

첫째, 서울신문은 지난 25일 새벽 2시7분 자사 홈페이지와 네이버 표출 기사에서 위 제목의 기사를 단독이라고 올렸다. 하지만 이 기사는 25일 토요일자 서울신문 1면에(관련기사 4면) 게재된 것을 보면 24일 편집마감 시간 전에 기사가 작성됐을 터. 본지(한국대학신문)가 하루 전날인 24일 10여명의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한 두명의 기자가 일일이 확인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둘째, 본지 자료를 도용했음이 분명해 보이는 증거가 있다는 점이다. 본지는 24일 오후 첫 기사를 띄우면서 건국대학교의 할당 인원을 55명으로 잘못 보도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파악해 50명으로 고쳤다. 그런데 이를 직접 취재했다던 서울신문은 본지가 틀리게 적은 숫자(55명)를 그대로 표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기사 작성 초기 단계에 급하게 자료를 인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 대다수 일간지가 기사 출처를 본지로 삼아 이미 24일 저녁시간부터 온라인에 보도했음에도 이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채 일간지 중 서울신문이 가장 먼저 보도한다는 명분으로 단독이라고 보도하는 우를 범했다.

물론 전문 매체의 취재 정보를 가지고 다시 취재하는 방식은 일간지가 사용하는 흔한 취재 방식 중 하나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24일과 25일에 걸쳐 국내 유력일간지와 연합뉴스 등이 삼성 총장추천제 기사를 보도하면서 출처를 한국대학신문으로 밝혔지 어떤 언론도 가장 먼저 보도했다던 서울신문의 기사를 인용하지 않았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서울신문은 지난 25일 오후 홈페이지에서 슬그머니 단독 표기를 내렸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단독 취재라고 강변하며 ‘꼼수 보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종합 일간지 기준에서 가장 빨리 썼기 때문에 단독이라고 기사를 올렸다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 ‘바른 보도로 미래를 밝힌다‘는 다짐을 내건 서울신문이 안쓰러울 뿐이다.

우리와 언론 환경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를 보자.

지난 2012년 6월 지지통신의 한 기자가 다른 매체의 기사를 교묘하게 바꿔 쓴 뒤 마치 자신이 취재한 것처럼 보도, 해당 통신사 사장이 사직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이에 앞서 지난 2007년 아사히신문 역시 요미우리신문의 기사를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도용했다가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해당 기자와 간부 모두 중징계를 받았다.

미국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지난 2003년 기사 표절을 일삼던 기자를 발견한 뉴욕타임스는 신문 첫 면에 ‘독자들에게 신뢰를 잃어 부끄럽다’는 사과문을 싣는 등 기자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도 미국 언론은 자체적으로 추가 취재를 하더라도 처음 보도한 매체는 꼭 밝히고 있다. 다른 언론의 기사 정보를 단순히 확인하는 과정만으로 ‘우리가 취재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사 정보의 출처를 도용하거나 기사 문구를 베껴 쓰는 행위를 도둑질이라고 생각하는 언론계의 윤리 의식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우리 언론에도 엄연히 미디어 윤리 기준이 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실천요강(8조 2항 타 언론사 보도 등의 표절금지)을 보면 ‘언론사와 언론인은 타 언론사의 보도내용 등을 표절해서는 안 되며 내용을 전재 또는 인용할 때에는 그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설령 똑같은 취재 정보라 할지라도 신뢰 있는 기사를 제공하려면 언론인부터 떳떳한 윤리 의식을 지녀야 한다.

전문지의 기사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빌려가 보도하는 관행도 고쳐야 한다.

또한 일부 내용을 추가하고 글 맥락을 바꾸면 기사도용이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도 바꿔야 한다. 그런 논리라면 누구든지 타 언론사의 기사를 짜깁기해서 자기 기사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연합뉴스와 뉴시스, 로이터 및 교도통신의 기사에 내용을 조금씩 덧붙이고 글 순서만 변경한다고 해서 본인 기사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관 국회의원 심지어 연예인의 논문표절까지 눈에 쌍심지를 켜는 언론이 자사가 작성하는 기사에는 적당히 베끼고 도용해도 눈감고 넘어가는 관대함에 대해 이제는 자아비판해야 한다.

특종 기사·단독 보도 경쟁은 분명 언론인의 숙명이다. 하지만 기자 양심과 윤리 의식이 뒤따르지 않은 특종·단독 기사는 거짓 글에 지나지 않는다. 남의 재산을 훔치면 범죄이듯 남의 지적재산권을 뺏는 것도 중한 범죄행위라는 것을 정상적인 기자라면 다 알지 않는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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