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에서 온 대학생 24명, 미얀마 난우학교에서 보낸 2주일

대학생들의 역량을 세계인과 교류하고 사회봉사 문화를 선도한다는 취지로 지난 1996년 창립한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회장 강희성 호원대 총장, 대사협)는 전국의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231곳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협의체다. 대사협은 서울여자기독교청년회(서울YWCA) 등 5개 기관과 협력해 단기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사협의 해외봉사 프로그램은 전세계인과 함께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소통의 장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13~28일 전국 24개 대학에 재학 중인 24명의 대학생이 참가한 미얀마(양곤) 봉사활동 현장을 동행취재했다.

▲ 미얀마 난우학교 아이들과 한국 대학생 봉사단원들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흥겹게 춤추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영어·음악·미술 교육, 물병로켓에 희망 담아 발사 ‘나는 누구인가’
YWCA와 협력해 성인여성들에 ‘직업교육’… 놀라운 학습 몰입도
15일의 여정, 등뒤에서 들려온 천사들의 합창 “선생님, 또 오세요”

[미얀마 =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새벽 6시 40분, 모두가 잠든 시각. 단원들을 깨우는 임무를 맡은 ‘타임키퍼’ 이주영(서울여대·3)씨는 동료들보다 조금 일찍 아침을 열었다. 오늘은 난우학교(Nan Oo)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어제는 아이들이 들꽃을 꺾어 동네어귀까지 마중을 나왔다. “쎄아마! 쎄아마!”(선생님)를 외치며 달려오는 아이들의 눈빛이 선명하다. 오늘도 아이들 만날 생각에 빙긋이 미소가 번진다.

▲ 해외봉사는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사람들도 이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김태연(한양여대, 오른쪽)씨가 난우학교 학생에게 손편지를 쓰다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미얀마의 옛 수도 양곤시 외곽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 북오욱갈라. 시내에서 대로를 타고 가다 버스에서 내려 30분 가량 걸어들어가면 난우학교가 있다. 5~16세 아이들이 다니는 기숙학교다. 이곳은 으레 해외봉사하면 떠올리는 오지도 아니고 극빈층이 모여사는 곳도 아니다. 미얀마 북부 경계지역처럼 종족분쟁이 일어나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몇몇 아이들은 부모를 잃은 상실감을 품고 살기도 하고, 승려가 되기 위해 승복을 입고 있는 동자승들도 있지만, 난우학교는 이들과 함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진 배움터다.

이 때문에 난우학교는 처음부터 ‘해외봉사=스펙쌓기’라는 공식이 어울리지 않는 곳일지도 모른다. 1만5000㎞ 떨어진 동아시아의 끝자락에서 온 이방인, 한국 대학생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 다같이 크게 따라해봐요. What is your name?”

“My name is 쿤마운쫘!”

파파야빛 승복을 두른 동자승 쿤마운쫘(10세, 남)의 목소리가 교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난우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봉사단원들의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가 생소하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모양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시내에 탁발하러 나가는 게 여전히 힘들다고 말하는 쿤마운쫘는 영어를 익혀 전세계에 불교를 전파하고 싶단다.

봉사단의 팀장을 맡은 정재철(한양대 2)씨는 아이들에게 영어로 인사하기, 날짜읽기, 자기소개 같은 기초부터 생일초대카드 만들기까지 단계별로 영어를 가르쳤다.

“단어를 가르쳐주고 소리내 읽으라고 해요. 만일 한국이었으면 머뭇거리는 아이들이 많았을 텐데 이곳 아이들은 하나같이 잘 따라와줘요. 눈망울도 맑고 늘 활동적이라 오히려 제가 에너지를 받아가는 느낌입니다.”

▲정재철(한양대, 왼쪽)씨가 난우학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단원들이 영어로 말하면 양곤경제대학 학생들이 미얀마어로 통역해주는 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미얀마어를 쓰지만 부모의 출신지에 따라 다른 종족의 언어로 말하기도 한다. 통역과정 탓에 가르치는 속도는 느리지만 아이들이 또릿또릿하게 잘 따라줘서 학습진도 나가기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단원들은 아이들의 몰입도에 연신 감탄을 보내기도 했다.

미얀마 초중등 정규교과엔 예체능 과목이 없다.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 종이접기, 태권도 수업시간이 되면 금세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통에 교실 안의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는다. 단원들도, 아이들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쿤마운쫘와 동갑내기인 윤뿌잇웨이(10세, 여)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끼가 넘치는 소녀다. 마지막 날 300여명의 동네주민들과 함께한 장기자랑 시간에 전통춤을 멋드러지게 선보이기도 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인터뷰 도중 뭔가 생각이 난듯 한국동요 ‘나비야’를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음정·박자를 놓치지 않고 부르기 시작했다. 봉사단과 공부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는 윤뿌잇웨이는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라고 했다. 

“한국인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해서 즐거웠어요. 다른 노래도 배워야 하는데… 내년에 또 와요.”

▲양곤시내 미얀마 YWCA에선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윷놀이가 벌어졌다. 대학생 봉사단원들은 이 같은 문화교류 외에도 현지 성인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컴퓨터 등 직업교육을 실시했다.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양곤시내에선 성인직업교육 ‘한창’= 양곤 시내 중심가의 미얀마YWCA에는 한바탕 웃음꽃이 폈다. 구정을 맞아 단원들과 지역주민들 사이에 윷판이 벌어졌다. 윷판 곳곳에 함정을 만들어 놓아 현지 여성들은 윷을 던질 때마다 벌칙(?)으로 단원들이 낸 한국어 문제를 맞춰야 했다. 요리 수업시간에 만들어 놓은 김밥과 김치를 먹어가며 진행한 ‘놀이수업’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단원들은 이곳에서도 미얀마인 특유의 명석한 두뇌에 놀라는 눈치다. 엑셀수업을 위해 준비해온 1시간 분량의 과정을 30분만에 이해하는 바람에 즉석에서 중급과정을 부랴부랴 만들기도 했다. 박민수 부단장(한국성서대·교목실 직원)은 “컴퓨터에 친숙한 한국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인데 어떻게 컴퓨터 자판을 처음 잡아본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습득할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해외봉사를 통해 대학생들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최진홍(연세대, 왼쪽)씨가 난우학교 아이들과 핸드페인팅을 하고 있다. 손으로 잎을 만들어 양국 간 신뢰와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를 완성했다.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대사협의 해외봉사 프로그램은 전국 대학 총장들이 회원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여느 봉사단체와 명확한 차이가 있다. 해외봉사를 통해 21세기 글로벌 리더로서 자질을 갖출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봉사가 단지 ‘도움’에 그치지 않고 교육적 기능을 수반한다는 것인데, ‘해외봉사와 교육’이라는 연관고리 속에서 자칫 봉사자 중심의 활동이 되진 않을까.

이번 미얀마 봉사활동에 함께 한 김병주 대사협 사무국장은 해외봉사를 통한 교육과 봉사자의 성취라는 모호한 경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개발도상국이라고해서 결코 ‘미개한 곳’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우리 학생들이 현지인 나름의 터전을 침범해 현대화하거나 계몽하는 과정에서 어떤 감동을 얻으려는 건, 우리가 말하는 ‘교육’이 아닙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오로지 ‘함께한다는 것’,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작은 목표라도)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교감’이 생기는 것이죠. 해외봉사에서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건 엄밀히 말해 교육이라기보다 교감입니다.”

부대껴지내는 것으로 해외봉사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다시 아이들을 만났다. 난우학교의 소문난 개구쟁이 쪼쪼(9세, 남)는 대학생이 되면 꼭 봉사활동을 할 거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의사가 돼서 형들 누나들처럼 힘들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면서 살고 싶어요. 돈이 없으면 공짜로도 고쳐줄 거예요.”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그러더니 갑자기 ‘빠빠라잉 선생님’을 찾았다. 며칠 전 물병로켓을 날릴 때 자신의 차례에서 로켓이 고장났는데 박소현(인제대·3)씨가 고쳐준 게 쪼쪼에겐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했다. 주저없이 박씨를 ‘베스트 티처’로 꼽은 이유다.

쪼쪼는 물병로켓 속에 사야원(의사)이라는 말을 써넣었다. 미얀마와 태국 국경지역에 미얀마 난민들이 숨어지내고 있다는 걸 신문에서 읽었단다. 어떤 ‘교감’이 작용했을까. 의사가 되고 싶은 쪼쪼의 마음 속에 ‘베스트 티처’로 다가온 박씨는 약대생이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박씨는 쪼쪼 앞에서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쪼쪼, 건강하게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된 모습을 보고 싶어. 의사와 약사로,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종이접기 시간에 만든 색종이를 스케치북에 붙여놓고,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한국 대학생들에게 교수법을 배웁니다”
[인터뷰] 미얀마 난우학교 교사 닐라 윈(Nilar Win)

미얀마 양곤시내 외곽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난우학교는 한국으로 치면 초중학교 통합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반 편성이 수준별로 이뤄지고 있어서 나이로 학습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 학교에는 방학을 맞은 아시아 각국의 대학생들이 교육봉사를 온다. 얼마전에는 말레이시아 대학생들이 다녀갔다. 난우학교의 터줏대감 닐라 윈(Nilar Win·34, 사진) 교사는 이 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아 7년째 교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난우학교 교사 닐라 윈씨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겪는 여러움은.
“크게 보면 두 가지예요. 우선 미얀마 대다수 초중등교육기관의 인프라가 열악해요. 칠판이 교실 사방에 있는 이유도 교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협소한 공간에서 한꺼번에 여러 수업이 이뤄지다보니 ‘재밌는 수업’을 하는 반으로 아이들의 시선이 몰립니다. 집중도가 떨어지죠. 또, 미얀마 초중등교육과정에는 예체능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요.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봐요. 학교에서 공부만 시키니 아이들이 금세 싫증을 내거든요. 미술이나 음악만 해도 갖가지 도구와 장비가 필요하잖아요. 예체능교육을 하려고 해도 교육환경이 열악하니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한국 대학생들의 단기 봉사활동이 실질적으로 교육효과가 있나.
“한국 대학생 봉사단원들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도하고 그저 즐겁게 놀아주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아이들이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하죠. 저도 처음엔 의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한국 대학생들로부터 ‘교수법’을 배우고 있는 거예요. 수업시간에 말할 기회를 많이 주니 아이들이 용감해지는 것 같아요. 감정이나 주장을 감추려는 아이들도 얼마못가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더군요.”

▲태권도 시간에 송판을 격파하는 난우학교 아이의 눈빛이 사뭇 비장하다.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다른 나라에서도 대학생 봉사단원들이 많이 온다고 하던데.
“최근에 말레이시아 대학생들이 석 달 동안 영어를 가르치고 갔습니다. 주말반이기는 했지만, 한국 대학생들처럼 아이들과 어우러져서 놀아주진 않았어요.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습내용만 채워주는 식입니다. 대체로 판서식 수업이었죠.”

- 한국 대학생들의 참여가 더 늘 것 같다.
“난우학교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읜 아이들이 많아요. 학교에서나마 부모의 사랑을 채워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요. 대부분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숙제를 내줘도 집에 가면 집안일을 도와야합니다. 이 시기에 필요한 만큼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함께 뛰놀면서 호흡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한국 대학생들이 자주 찾아줬으면 해요. 누구를 가르쳐본 경험이 없는 무자격자라고 해도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늘 웃고, 또 저렇게 즐거워하잖아요.”

<인터뷰·사진 : 최성욱 기자, 현지통역: 쪼잔윈(양곤외대 한국어과)>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