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공감대 있고 정부도 강력의지…상위권대 열외없어

지방대 특성화지원…‘지방 핸디캡’ 없는 공정경쟁 기반 구축
2000년대 초중반 시장 자율감축 실패…강제 감축은 불가피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위기는 기회다'

백성기(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이 인터뷰 내내 반복한 말이다. 이번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 우리 대학 전체가 다 같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의 구조조정은 험난한 일인데 이번에는 학령인구 감소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대학가의 공감대가 있어, 개혁에는 '더할 수 없는 적기'라는 설명이다. 여기다 박근혜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대학개혁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백 위원장은 전했다. 지방사립대학인 포스텍 전 총장으로 스스로도 경험했고 옆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가 있던 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대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내비쳤다. 일부 대학들이 수도권대-지방대 등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뭉쳐 반발하는 편가르기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 구조개혁위원장에 임명된 소감은.
“교육부가 왜 나를 뽑았을까 줄곧 생각했다. 짐작컨대, 포스텍의 성장과 그 안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높이 산 것이 아닌가 싶다. 포스텍 설립 당시 포항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지방의 소규모 대학이 30년도 채 안 돼 서울대의 경쟁 대학으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포스텍은 포스코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발전을 위해 극복해야 했던 ‘지방대 핸디캡’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정부가 ‘포스텍 모델’을 지방대 핸디캡 극복 모델로 좋게 평가한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포스텍의 설립멤버로 와서 29년간 몸담았고 연구자와 교육자, 행정가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 대학 구조개혁을 어떤 의미로 보나.
“교육은 미래다. 작금의 대학상황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절대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과거 학생수가 80만명을 넘나들때는 속된말로 ‘반타작’만 해도 국가인재 수급에 무리가 없었다. 이젠 40만명 시대가 온다. 40만명 중 어느 한 명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양질의 고등교육 제공은 국가적인 전략 차원의 문제다.”

- 개혁에는 비난이 따른다. 부담은 없나.
“우리나라 대학이 갈 길은 정해져 있다.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을) 누가하더라도 정답이 정해진 일이다. 교수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우리 대학의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유다. 비싼 등록금 가져다가 학생들에게 이 정도 수준의 교육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솔직히 우리 대학인들은 다 알지 않나. 지금까지는 여건이 안됐다. 이젠 대학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고 정부도 의지를 갖고 있다. 더 이상 우리만의 잣대로는 안된다. 우리 대학들이 생존하려면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야만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 강제적인 정원감축 대신 시장에 맡기라는 주장이 있다.
“시장원리에 따른 자율감축 모델은 실패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이미 대학정원이 고교졸업자수를 넘어서는 ‘역전현상’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80개 대학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시장 기능에 맡겨 봤다. 이후에도 강제 감축 대신 전체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은 늘리면서 일부를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지정하는 방식을 시행했다. 결과는 어땠나. 수도권 대학만 팽창했다. 철저한 실패였다. 강제적인 대학 정원 감축은 학습결과에 따른 조치다.”

- 정부가 16만명을 줄이는 방안을 내놨다.
“학령인구만 따지면 더 줄여야 한다. 2024년이면 학령인구가 약 40만명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중 대학에 진학하는 인구는 70%로 잡아도 28만명에 불과하다. 다만 사람들의 수명이 늘고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학이 제공하는 고등교육 자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대학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면 평생 그 전공으로 먹고 살수 있었지만, 미래에는 지식의 수명이 10년에 불과할 것이다. 10년이면 재교육이 필요하다.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본다.”

- 2016년까지 4만명을 줄이고 나면 이후 12만명 감축은 시기상 차기 정부로 공이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임기말에는 추진력을 잃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그렇기 때문에 대학구조개혁은 누구도 움직일수 없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는 공감대를 더 확산해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너와 나 각자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공동문제라는 인식이 자리잡도록 해, 대학구조개혁이 정치 환경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추진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이번 구조개혁안은 표면적으로는 자율감축이지만 1등급을 받은 대학에게도 사실상 정원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부실한 대학을 살리기 위해 잘하는 대학에도 희생을 요구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상위권 대학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상위권이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초라하다. 상위권 대학들이 이번 개혁을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대학구성원 전체가 개혁에 참여해야 한다. 상위권대와 하위권대, 수도권대와 지방대가 서로 편을 나눠 ‘핑퐁 게임(주고받기)’을 하기보단 세계적인 기준에 다같이 도달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일각에선 대학구조개혁과 특성화사업 등을 통해 정부재정지원이 지방대에 집중된다는 불만도 나온다.
“지방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은 공정경쟁을 위한 기본적인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서울중심사회’ 특성을 갖고 있다. 지방대학에는 배려가 필요하다. 지방대학의 주거여건과 교육환경을 개선해 궁극적으로 대학간에 소재지가 아닌 ‘클래스룸’에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교육의 질과 프로그램의 우수성으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대로 그냥 두면 지방대학은 고사할 수 밖에 없다.”

- 우리나라 대학, 몇 개가 적정하다고 보나.
“대학의 숫자는 중요치 않다. 퇴출이냐 감축이냐를 놓고 논란인데 개인적으로 감축도 좋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우리보다 인구는 6배 많지만 대학 수는 21배나 많다. 작고 탄탄한 대학이 많고, 다양한 대학이 어우러졌을 때 참교육의 틀이 완성될 수 있다고 본다.“

- 내실있는 정성평가를 위해 비상설평가단을 운영하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본래 상설기구화 하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법적인 문제로 실현되지 못하고 비상설평가단을 운영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평가는 4년제와 전문대학을 나눠 실시하게 된다. 아직 논의한 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국제전문가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자 한다. 평가단은 기업과 법조계, 의료계 등 세분화된 다양한 대학교육 수요자들을 포함시킨다는 계획이다. 평가방식은 국내외 여러 대학평가의 틀을 연구해서 적용할 예정이다.”

- 포스텍 5대 총장 재임시 일련의 개혁을 추진했다. 개혁을 앞둔 대학들에 조언한다면.
“대학은 결국 교수가 움직인다. 개혁은 손발이 맞아야 한다. 이사장과 총장 등 리더의 비전과 열정도 중요하지만, 교수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번 시기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지금은 ‘피할수 없는 개혁’이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자존심 센 교수들을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충분하다. 대학 구성원 전체가 이번 대학구조개혁에 대한 적극적인 동참을 결단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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