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많은 음대·간호학과·무용학과 예외 아냐

“전통 아닌 폭력, 정부가 처벌 분위기 조성 필요”
대학들 ‘위계질서·군대문화 없애기’ 미온적 반응
 
[한국대학신문 손현경 기자] # 최근 본지로 충청지역 모 대학 졸업생들이 ‘OO대 체육교육과의 썩은 전통을 고발합니다’란 제목의 제보가 접수됐다. 제보에 의하면 반복되는 구타와 기합으로 한 학기에 평균 1~3명이 자퇴나 휴학을 한다. 특히 학과 조교와 학생회장이 각종 학외비, 행사비, 교수 해외여행경비, 논문지도료 등을 강제로 요구한다며 ‘돈 낼 능력 없으면 학교를 그만두라’는 폭언까지 했다. 심지어 이들은 교수들의 60세 환갑잔치까지 챙겨줘야 했다. 
 
# 지난달 24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S여대 체육학과 현실’이란 제목으로 사진 두 장이 게재됐다. 사진 속에는 신입생들이 지켜야할 예절 14가지와 매뉴얼에 맞춰 자신을 소개하는 카카오톡 채팅방의 모습이 보인다. 특히 신입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 안 된다는 항목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네티즌들은 “신입생들은 등록금도 벌지 못하냐”, “군대도 저렇게는 안한다, 차라리 입대를 권유해라”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체육학과에서 반바지나 치마 착용을 금지하고 ‘다나까 말투’를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신입생 생활규정’ 문서를 배포해 최근 논란이 됐다. 인쇄물에 따르면 신입생은 ‘요’자 사용은 금지되며 전화를 할 때에는 선배가 먼저 끊기 전까지는 끊어서는 안 된다. 이밖에 학교 안에서 이어폰 끼지 않기, 엘리베이터 타지 않기 등의 내용이 담겨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다.
 
지난 27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학 내에는 군대식 문화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다. 구타 등으로 피해학생이 다치거나 죽는 등 사고가 터지면서 언론을 타면 당장 해결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이던 대학들도 ‘그때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대학들은 “사실보다 과장되고 왜곡된 내용”이라거나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며 사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다.
 
■여학생 많은 음악·간호·무용학과도 ‘군기 바짝’= 대학 내 군대식 문화는 전공 특성 자체가 집단행동이 많은 과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다. 비단 체육관련 학과뿐만 아니라 여학생이 많은 음악대학·간호학과·무용학과 등 대학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버스에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고 잠깐 졸거나 고개를 숙여도 안돼요. 잡담은 당연히 못하고 핀으로 고정 시긴 머리카락 하나가 흘러내려도 만지면 안되는 걸요.”
 
서울 모 대학 무용학부 2학년에 올라가는 강새롬(21.가명)씨가 지난해 2월 강원도로 떠났던 새내기 새로 배움터(OT) 버스 안 상황을 떠올리며 말했다. 강 씨는 “여학생 비율이 높은 학과들이 오히려 이런 독특한 훈육문화가 많다”고 설명했다.
 
‘백의의 천사’ 이미지가 연상되는 간호학과도 예외가 아니다. 지방의 한 간호전문대학 신입생들은 학기 엠티에서 고학번이 적어준 요리를 그 자리에 있는 재료로 다 선보여야 된다. 이 대학 관계자는 “선배들이 투표를 해 제일 맛없는 요리를 가져온 그룹은 ‘선배를 생각하는 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앉았다·일어났다’를 반복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모 음악대학 성악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OT때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학교 교가를 외우도록 시킨다. 조원이 한명이라도 못 외우면 전원이 외울 때까지 눈밭에서 뒹굴어야 한다”며 “모든 벌칙은 개인이 아니라 단체로 받는다”고 밝혔다.
 
■ 대학 내 군대 문화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 전문가들은 대학 내 군대식 문화가 한국사회 내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전통이 왜곡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정희준 동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대학 내 군대식 문화는 서열문화를 예절 전통처럼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관습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위계질서가 있어야 그 집단이 활발히 잘 돌아간다”며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회 간부들이나 조교들이 위압적인 분위기를 잡아놓으면 교수들은 내심 대접 받는 것을 즐긴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 남학생들의 재학 중 입대가 대학문화에 이같은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 대학문화의 군대적 징후 - 위계·폭력·성차별’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던 권인숙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는 “대학 재학, 입대, 복학이라는 순환을 통해 대학 내 군대 문화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나아가 성적 차별과 직장에서의 복종적 상하관계 등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 ‘전통 아닌 폭력’ 정부가 문제의식 가져야 = 전문가들은 대학의 군대식 서열문화를 ‘전통이 아닌 폭력’이라고 단언한다. 이들은 교육부가 확실한 대응이나 처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희준 교수는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이런 위계질서로 인해 구속이나 처벌을 당하면 억울하다고만 생각하고 반성을 하지 않는다. 또 이에 대해 학교는 솜방망이 처벌만을 하기 일쑤”라며 “이에 대해 교육부 등의 정부기관이 확실하게 대응해 처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권인숙 교수는 한국 대학문화 구상을 위해 대안을 제시했다. 권 교수는 "대학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신입생들을 위한 교육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군 경험에 대한 성찰적 문화와 교육을 대학 안에서 마련할 것, 대학생들이 졸업 후 입대하는 방식을 사회 전체가 고려할 것” 등을 제안했다. 그는 “교수들이 이 문제에 대해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학들 “전담부서 마련보다는 자연 예방 바라” = 대학들은 이같은 대학내 변질된 위계질서 문화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선후배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 등을 위한 상담소 정도만 운영할 뿐이다.
 
다수의 대학 관계자들은 군대식 서열이나 위계질서 문화는 각 단과대학, 작게는 학과별, 동아리별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나서기 어려운 이유로 들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피해 학생들을 위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어느 특정 부서에서 전담하기가 애매하다”고 말했다.
 
기숙형 대학(RC)으로 군대식 서열 문화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대학도 있다.
 
순천향대는 학생상담소에서 해오던 군대식 문화 예방 움직임을 RC프로그램에 흡수시킬 예정이다. 이 대학 박일 학생팀장은 “대학 내 군대식 문화는 전담부서를 세운다고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그렇게 하기 보다는 우리 대학은 RC를 통해 선후배 사이의 강압적 위계질서를 자연적으로 없앨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