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지난해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공개되기도 전인 어느 시점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인터넷 공간은 물론이고 야당과 일부 편향된 언론매체들, 일부 국사학계와 전교조 등 몇몇 단체들은 입을 맞춘 듯이 이 교과서를 공격했다.

“안중근을 테러리스트” “유관순을 여자깡패” “5.18을 폭동”이라 기술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무차별 흑색선전과 불매운동은 황색 언론들이 의도한 바대로 급속히 일부 몰지각한 대중의 폭력으로 번져나갔다.

물론 터무니없는 음해였지만 허위 선전선동의 효과는 컸다. 사실은  교학사는 충실히 유관순 열사에 대해 설명을 했고, 가장 좌편향적인 네 개의 교과서는 서술은 커녕 유관순열사 이름도 언급을 안했다. 참고로 북한의 역사교과서에도 유관순의 자리는 없다. 

이런 풍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2011년 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들 때 국사학계의 태도를 보면 이런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체제임은 일반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에 이러한 내용을 넣는 것에 대해 기존 한국사학자들이 격렬히 반발했었다.

또한 한반도가 UN이 승인한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문구도 삭제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이들은 역사교육을 국가정체성 교육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부각시키려 노력해 왔다.

이런 와중에 교학사 교과서에 기술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대해 교육부가 ‘건국’을 금지어로 지정해서 수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제1공화국이 출범한 1948년 8월 15일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건국의 날이었다. 예를 들어 올해 8월 15일은 해방 63주년이고 대한민국 건국 66주년인 날이다. 그래서 2008년 8월 15일에는 국가적으로 건국60주년을 기념했고, 1998년엔 건국 50주년 기념을 했었다.

대한민국 건국 기점을 두고 벌어진 논쟁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역사관의 혼란을 여실히 보여줬다. 특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은 건국의 기점을 1919년으로 잡아야한다는 일각의 주장이었다.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국호를 정하고 민주공화정을 추구한)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신적 건국이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국가의 3대 요소가 주권, 영토, 국민임을 상기할 때, 임시정부는 이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다 결여한 상태였다. 임시정부가 진정한 ‘건국’에 대비한 ‘건국강령'을 1941년에 발표했던 것은 온전한 국가를 세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19년을 포함한 1948년 이전의 역사는 정식으로 대한민국을 출산시키기 위한 산고의 시간이었다고 해석해야 옳다.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선각자들의 노력 속에서 대한민국의 씨앗은 뿌려졌고, 비록 자력에 의한 광복은 아니었으나 광복이후 엄청난 고통과 노력 끝에 대한민국이 수립됐고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세울 기틀이 마련됐다. 대한민국은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다. 정말로 창피한 일이다. 이런 기현상은 바로 잘못된 역사교육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이제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의 의미를 새롭게 평가해야한다. 1919년을 정신적 건국이라 해도 좋다. 대한민국 건국은 2단계 혹은 3단계(1919년 임시정부, 1945년 해방, 1948대한민국 정부수립)의 과정을 거쳤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1948년의 실제적 건국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는 우(愚)를 더 이상 범해선 안 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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