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오후 6시 취임 1년 만에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전국 4년제 대학 총장 161명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열렸다.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간담회에서 4명의 총장만이 10분씩 발언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대통령은 총장들과 눈인사는 물론, 악수도 없이 퇴장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간담회에 참석한 대학총장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는 것은 ‘한 대학 총장으로서, 창조경제를 견인할 인재를 키울 대학의 수장으로서 당신을 존중한다’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데 대통령이 휑하니 자리를 떠 참석총장들이 허탈해 했다는 후문이다.

역대 정부도 취임 초기 대학 총장들을 만나 인재양성에 힘써달라는 당부와 함께 대학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청와대로 대학총장을 초청한 역대 대통령들은 당시 참석총장 한명 한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특히 대학구조조정을 시작한 MB정부 때는 대학총장들을 초청해 '교육대국‘을 강조하며 대학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을 설명하고 머리를 맞대고 다함께 노력해보자고 당부했다고 한다. 총장들의 발언도 사전에 정하지 않고 자유 발언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달랐다. 취임 1년이 다 되도록 대학 총장들을 만나자는 얘기가 없었다. 대통령이 정책기조로 창조경제와 인재양성을 앞세웠고, 창조경제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대학들이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 것인지를 왜 함께 논의하지 않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러던 차에 대통령이 대학총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잔뜩 기대를 갖고 참석했던 대학총장들은 나름 대학구조개혁, 지방대‧전문대 특성화 등 주요 정책에 대해서 얘기가 있었지만 원론 수준의 이야기를 나누는 데 그쳤다고 아쉬워했다. 참석총장들은 그저 자리를 마련했다는 수준의 의미에 그친 간담회였다는 점이 못내 안타까웠다고 했다.

대학총장은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취임직후 본지 주최 대학총장 간담회에 참석해 "대학총장이 사회의 웃어른으로, 사회의 리더로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예전에는 원로 대학교수가, 중진급 대학총장이 일갈(一喝)하면 사회가 그들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미덕이 있었다. 미덕의 차원이 아니라 그만큼 대학총장의 권위가 존중됐었고 사회가 그들의 격을 인정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정부가 구조조정을 핑계로 대학을 줄 세우고 평가 잣대를 들이대면서 대학총장들은 평가 잘 받고 정부재정지원사업 잘 따와야 하는 기업형 CEO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니 ‘교피아’(교육부 고위관료출신 대학총장)논란이 불거지고, 관료출신 총장들은 마치 부실대학 지정을 막기 위한 바람막이로 오해받고 있다.

현직 대학총장 중에는 전직 부총리, 각 부처 장관 출신들도 있고, 차관, 공공기관장 출신들도 많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의 행정경험과 국정관리능력이 결코 교육부 관리나 청와대 참모진들에 의해 폄훼되거나 경시(輕視)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 임을 감안한다면, 또 창조경제를 실현할 인재양성이 국정기조라면 간담회이후 총장들과의 개별 교감도 없이 대통령이 자리를 뜬 것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이 나라의 미래를 일구어 나갈 인재를 키우는 대학의 수장을 존중할 때 박근혜 정부가 구현할 창조경제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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