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6개월 맞은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과거 비판 뒤로 하고 숨어있는 한국 가치 발굴에 사활걸어
TV드라마 ‘한류1.0’, K-Pop ‘한류2.0’ ‥ ‘한류3.0’시대 열어야
사료 대중화·세계화 위해 장서각 고문헌 15만점 번역 추진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대학 총장직을 물러난 지 4년여나 흘렀지만 아직까지 ‘이화여대 총장’이라는 직함이 더 친숙한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67세, 사진). 총장 퇴임 이후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대학을 벗어나 주로 사회와 직접 호흡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취임하고 6개월 여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엔진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연구원)의 전신은 정부나 특정 정치인의 ‘정치’를 홍보하기 위한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정신문화원이다. 이 원장은 과거의 비판을 뒤로하고 땅 속 깊이 묻혀 있는 한국 고유의 문화를 발굴해 그 속에 숨어있는 한국의 가치를 조명하는 데 연구원의 사활을 걸고 있다.

이는 한국의 글로벌화 ‘한류3.0’이라는 기치로 펼쳐지고 있다. 조선 의궤, 서원, 지역 명장 등 한국학의 원류가 되는 모든 것들은 이 원장의 머릿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진달래꽃이 움트던 지난 14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그를 만났다.

 

- 연구원 사상 첫 여성원장이다. 한국근대사 전공자로서 취임당시 기대감이 높았는데.

“한국학자로서 한국학의 본향을 찾아왔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지냈다. 이전에도 연구원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지만, 직접 와서 보니 국가적으로 필요한 사업이나 콘텐츠가 무궁무진한데 그러한 성과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연구원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살려서 일반 대중과 공유하고, 나아가 인류 보편적인 학문과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취임 초부터 한국학에 뿌리를 둔 정신문화의 회복을 주장했다. 

“한국학은 과거에 머물러있는 학문이 아니다. 한국학은 ‘오래된 미래’를 배우는 학문이다. 한국학의 본질은 단순하게 과거를 공부하고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있는 가치를 통해 미래 한국의 방향을 설정하고 발전적 미래로 가는 동력다. 일반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리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한국학을 과거에만 머물도록 만들고 있다. 한국학은 과거의 우리 문화를 통해 미래를 볼 수 있게 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순간 교훈을 줄 수 있다.”

- 물질에 정신이 매몰된 것 같은 현실에 직면할 때가 있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병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늘날 우리는 물질만능 풍조와 기계 문명에만 젖어 있어 유형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적 가치를 너무 많이 잊어버렸다. 숭례문 화재사건이 대표적이다. 숭례문을 물질 또는 형태로만 보았기 때문에 범인이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던 것인데, 그 속에 들어있는 시대의 고귀한 숨결과 민족의 혼을 일찍이 역사교육을 통해 가르쳐 주었다면 그와 같은 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최근 장서각의 국가왕실 문헌을 현대화하고 영문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제 ‘학술 한류’가 시작돼야 할 때다. TV드라마가 한류1.0이라면, K팝(K-Pop)은 한류2.0이다. 이제는 전통문화가 뒷받침되는 ‘한류3.0’ 시대를 열어야 한다. 세계적인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된 국가 왕실 문헌 10만여 점, 민간 사대부 문헌 5만여 점 등의 자산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장서각 자료를 잘 활용하면 현대인과 세계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학술 한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어떻게 활용한다는 건가.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예를 들어 장서각에는 ‘동의보감’이 소장돼 있다. 이걸 단순한 의학서로만 보면 곤란하다. ‘동의보감’은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재난을 겪은 어려운 시기에 추진한 국책사업이었다. 그 바탕에는 신분과 직업을 초월한 박애정신이 담겨 있다. 이로 인해 ‘동의보감’이 세계와 소통하는 코드가 되는 것이다. 장서각에 보관된 의미 있는 사료의 대중화·세계화 작업을 적극 추진하려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 전국 600여 개 서원을 활용해 ‘전통과 지역’을 함께 묶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풀뿌리 문화재건 사업에 역점을 두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근대화 되면서 도시화, 서울 중심화에만 온통 신경을 썼다. 그러나 향토 문화를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삶, 역사, 이야기 등 보석과 같은 문화들이 너무나 많이 숨겨져 있다. 향토지역에서 새로운 문화의 동력과 콘텐츠를 얻을 수 있다. 향토지역 연구를 통해 동서 갈등을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전국 9개 서원을 연구원의 분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지역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될 것이다. 조선시대 영남의 이황과 호남의 기대승이 서로 소통한 것처럼 서원을 거점 삼아 지역 간 소통을 이끌어내고 싶다.”

 

▲ 본지 이인원 회장(왼쪽)과 환담하고 있는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1969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동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서강대에서 한국사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2006~2010년 이화여대 13대 총장을 지내면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2008~2009),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2009~2010)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는 2년간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2대 위원장을 맡았고 지난해 9월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2010년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에서 선정한 ‘글로벌리더십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는 ‘5·16 민족상’(사회·교육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근대 광업침탈사 연구>, <Women in Korean History>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대담 이인원 본지 회장, 사진 한명섭 기자, 정리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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