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연구과제 관리에 개인계좌 이용 "잘못된 관행 맞지만…"

“검찰 구속 수사 필요했나” 의문 제기, 사회적 타살 주장도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제자들의 인건비를 부당편취한 교수의 죽음에 국내 건축계가 눈물짓고 있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해당 사실을 적발하고 구속수사를 벌이려던 검찰도 공소권이 없다며 손을 놨다. 대학에서 추모제를 열자 건축계의 명사들이 참여하는 등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달 21일 새벽 여수앞바다에 몸을 던진 故 이종호(57)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부교수의 이야기다.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부산항. 이 교수는 복잡한 마음을 추스리려 제주행 페리호를 탔다. 동행한 사람은 없었다. 배가 떠나고 3시간 여 지난 10시 30분, 배가 여수 소리도 인근을 지날 무렵 스스로 몸을 던졌다. 페리호 CCTV는 이 교수의 투신자살 과정을 선명하게 기록해놓았다. 그날은 사흘 전 검찰이 이 교수에게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에 대한 법원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된 날이었다. 이 교수는 왜 제주행 배에 올랐을까.

지난 달 18일 검찰은 이 교수가 한예종 소속 산학협력단을 상대로 허위 인건비 등을 청구하는 수법으로 10억원대 금품을 가로챘다고 보고 소환조사를 벌였다. 죄목으로 따지면 사기죄다. 검찰은 이 교수가 편취한 금액이 크고 연구원 등 권력관계에 있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기 등 서민대상 범죄에 대해 구속수사 방침이 강화된 직후다. 소환조사 뒤 이 교수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교수가 수사 과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거나 불만을 토로한 적 없다. 가혹 행위 등은 없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 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건축계의 반응은 안타깝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사회적 타살이라며 성토하는 분위기다. 특히 존경하던 동료이자 선생을 잃은 한예종 건축과 학생들은 정신적인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 이 학과 김모(22)씨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교수의 건축작품 등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고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이 학생은 사기죄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사기혐의는 사실일까. 검찰은 피의자 자살로 인해 공소권이 없다며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다. 검찰이 이 교수의 인건비 부당편취 사실을 인지한 것은 감사원 감사를 통해서다. 감사원은 지난 해 11월 29일 한예종 측에 이 교수에 대한 징계처분을 요구했다. '연구비 부당 집행'이 지적됐다.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이 교수는 지난 2009년 4월 1일부터 2013년 7월 19일까지 연구책임자로서 7개의 연구과제를 수주했다. 7건의 연구비 총액은 약 9억 1000만원. 이 교수는  이중 2억 3000만원을 개인 통장으로 공동관리 해왔고, 5800만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한예종은 이 교수를 대신해 반발했다. 학내 소명절차를 거쳤다. '개인적인 용도'가 드러났다. 이 교수는 연구소 운영을 위해 공동관리 했고, 연구에 필요한 비용은 오히려사비를 보태 사용했다고 소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예종의 자체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교수는 개인 계좌를 이용해 연구원들의 급여를 선지급하고 연구비가 들어오면 일부를 다시 개인 계좌로 정산했다. 이 과정에서 5800만원의 차이가 발생했다. 한예종과 이 교수는 이를 '회계오류'라고 밝혔다. 7건의 연구과제 인건비를 다루다보니 나온 실수라는 것이다. 감사원과 검찰은 이를 횡령 등 부당편취로 해석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연구소 운영을 위해 개인 계좌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나. 그러나 연구과제가 많아지고 인원이 늘면 계좌도 많아져서 힘들다. 개인 계좌를 이용해 일괄처리 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A교수는 "교수들의 외부연구비 수주가 중요해졌지만 대학의 행정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산학협력단도 생긴지 10년 정도에 불과하지 않나. 그나마 직원도 많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이 교수의 시신이 일본 쓰시마섬 해안가에서 발견됐다. 이틀 후 해양경찰청은 "일본 쓰시마섬 해안가에서 한예종 건축과 이모 교수로 추정되는 시신이 일본 경찰에 의해 발견돼 신원확인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밝혔다. 여수 앞바다에 몸을 던진 지 23일 만이다.

이 교수의 투신이 알려지자 김봉렬 한예종 총장은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학교 직원을 제주로 급파하는 등 수습에 힘썼다. 학교 관계자는 "존경받던 교수였다. 구속수사는 이 교수의 사회적 인격을 말살하는 행위다. 이 교수가 도망을 갔겠느냐. 구속수사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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