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대교협 ‘고등교육 전문가 100인 대토론회’서 한 목소리

총장·교수 등 정부 대학 구조개혁 평가 방향 놓고 머리 맞대
“정성평가 치밀하게” 
대학 죽이는 평가 아닌 살리는 평가로”

[한국대학신문 민현희 기자] “대학구조개혁 평가 시 대학의 설립 규모, 소재지, 규모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정성평가는 정량평가보다 한층 치밀하게 준비해 실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단순한 정원감축이 아닌 대학 교육의 질 제고를 통해 대학 본연의 기능을 살리는 데 역점을 두고 추진돼야 할 것이다.”

21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고등교육 전문가 100인 대토론회’ 참석자들은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와 관련해 이 같이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대학구조개혁을 위한 평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교육부가 지난 1월 발표한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 관련 대학 총장과 교수, 고등교육 전문가 등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은 절대평가로 전체 대학을 5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최우수등급(1등급)을 제외한 모든 대학의 정원을 강제적으로 감축하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2023학년도까지 총 16만명의 입학정원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모든 대학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되 교수·학생 간 상호 작용, 교육 만족도 등 정성지표를 등급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비중 있게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 대부분은 특히 대학 특성에 따른 평가 기준 적용과 정성평가의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또 대학구조개혁의 근본적인 목적이 대학을 고사시키는 게 아니라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야 한다는 점도 재차 강조됐다.

서거석 대교협 회장은 “대학구조개혁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나 추진 방법 등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있다. 특히 대학구조개혁 평가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대학구조개혁 평가 방향, 평가 내용, 정성평가 반영 방법 등에 대한 논의가 대학구조개혁 평가의 방향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대학구조개혁 평가 5대 쟁점은 = 이날 토론회는 최재원 부산대 기획처장의 주제 발표로 포문을 열었다. 최 처장은 ‘대학구조개혁을 위한 대학평가의 방향과 쟁점’을 주제로 대학구조개혁 정책의 추진 배경, 주요 내용, 문제점, 개선방향 등을 제시했다.

먼저 그는 “재정지원 평가는 수월성을 기반으로 일정 수의 대학에 재정을 배분하는 데 비해 구조조정 평가는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일정 수준의 책무성을 이행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최소 수준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대학을 선별하는 데 목적을 둬야 한다”며 “평가목적에 따라 평가 체제를 차별화해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처장은 △소재지·설립유형·대학규모에 따른 유형별 평가 실시 △정성평가 비중 확대에 따른 평가의 객관성 확보 △학생정원 감축이 아닌 대학 수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 추진 △미래인력의 수요를 고려한 구조조정 실시 △평가지표 개선 등 5대 쟁점 사항의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학 유형별 평가와 관련해서는 “평가지표 설정 시 국립대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 국립대는 순수·기초학문 분야 중심 특성화, 지역 사립대는 실용학문과 지역 산업 밀착 분야 중심의 특성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대·중·소 대학 규모에 따른 평가지표 차별화도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성평가의 핵심인 명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평가기준을 사전 공개해 검증하고 평가위원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며 “정원감축의 경우 각종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므로 최우수등급도 사실상 일률 감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최우수등급은 실질적으로 자율 정원 감축이 가능하도록 하고 부실대학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학 특성 고려한 평가여야” = 주제발표에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토론자로 나선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김홍석 배재대 기획처장, 김경섭 한경대 기획처장, 이재경 국민대 기업경영학부 교수는 무엇보다 대학 특성에 따른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역설했다.

오대영 교수는 “다양한 유형의 대학들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 등을 분리해 평가하지 않는다면 평가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나올 수 있다”며 “특히 국립대와 사립대를 동등 평가할 경우 재정여건이 열악한 상당수 사립대들이 출발선부터 불리할 수 있어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홍석 처장은 “5등급제 평가는 대학의 서열화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학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대학 고유의 정체성 확립과 특성화를 위해서는 교육중심대학·연구중심대학·산학협력대학, 그리고 수도권·지방권·지역특성에 맞는 차등화된 가중치와 정교한 평가지표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경섭 처장 역시 “모든 대학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대학을 획일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학은 설립 목적에 따라 특수목적대학, 종교 관련 대학, 예·체능 대학 등 다양하게 분류되고 각각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동일한 평가 지표를 적용한 대학 평가는 결과의 수용성을 약화시키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 “정성평가 제대로 될까” 우려 = 평가지표의 공정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이재경 교수는 “대학구조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고등교육시장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이전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무엇을 요구하고 선택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학생들에게 많은 교육기회와 선택권을 제공하느냐, 소속된 대학에 만족하느냐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면 교직원, 교사, 교지확보 등과 같이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평가 비중이 높아지면 가뜩이나 정원 감축과 등록금 동결·인하로 나빠진 대학 재정이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한정된 대학재원이 현재 실수요자인 재학생들에게 투입되지 않고 정원감축을 모면하기 위해 사용되도록 만드는 평가지표는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 발표 당시 정성지표를 등급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높은 비율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던 만큼 이에 대한 우려도 잇따랐다. 오대영 교수는 “전체 평가대상 대학이 400개에 달하는 만큼 충분한 전문 평가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서로 다른 심사위원들이 한 평가를 모아 종합평가를 하는 것을 놓고 정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므로 정성평가의 실행 방법에 대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김경섭 처장은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정량평가와 함께 정성평가를 근간으로 할 예정이다. 정성평가는 평가위원의 주관성, 평가팀 간의 균질성 문제로 평가 결과의 신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꼬집고 “평가영역별 지표가 대학구조개혁을 위한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구성돼야 평가 결과의 신뢰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밝혔다.

평가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홍석 처장은 “5등급 평가와 재정지원사업 평가 등은 대학 전체가 평가준비에 몰입돼 교육이라는 본연의 의무에는 소홀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교육부는 3년마다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진행한다고 하지만 대학은 계속해서 평가에 대비해야 할 텐데 이것이 과연 온전한 대학의 역할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사회 수요 바탕 장기적으로 추진돼야” = 이날 참석한 주제 발표자, 토론자들은 각각 대학구조개혁 평가에 대한 제언과 개선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이들은 대학구조개혁 평가가 사회적 수요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원 처장은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한 대학에 불이익이 없도록 정원감축과 관련된 정책을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또 기초학문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도 필요하다”며 “대학기관평가인증과 대학구조개혁 평가 모두 책무성을 평가하는 것이므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대학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오대영 교수는 “교육부는 그동안 많은 대학 평가를 해 왔기 때문에 새로운 평가지표는 거의 없다고 본다. 문제는 정확성과 균형성에 있다”고 강조했고, 김경섭 처장은 “정부는 중·장기별 사회적 수요를 반영한 고등교육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대학 정원조정을 시행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경 교수는 평가방법의 변화를 제언했다. 그는 “평가 시 연구, 교육, 산학협력, 사회봉사, 평생교육, 국제화 등 영역별로 각 대학이 가중치를 선택하게 한다면 대학의 특성화가 평가에 보다 효과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며 “아울러 대학별 정원감축이 아닌 계열별 정원감축을 실시한다면 국가 인력수급 불균형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지는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구조개혁 평가로 가장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곳은 지방 사립대인 만큼 이들의 가치를 알아달라는 호소도 있었다. 김홍석 처장은 “고교에서 다소 출발이 늦은 학생들이 지방 사립대에 들어온다. 꾸준한 관심과 사랑으로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문의 기회, 취업의 기회를 주려고 한다”며 “이러한 대학의 기능을 평가를 통해 서열화 시킨다면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균등한 평등과 자유로운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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