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대구가톨릭대 인성교육원장

 “우리학교는 인성교육은 시키지 않습니다.”

어느 학부모가 이른바 대학입시 명문고의 입학설명회에 갔다가 그만 기겁을 했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이 아주 당당하게 그 학교가 인성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더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교장선생님은 과연 무슨 의미로 저런 얘기를 하신 것일까 궁금했다. 인성교육이란 원래 가정에서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니까 학교에는 애당초 바라지 말아달라는 뜻일까. 혹시 “우리학교는 대학 입시에 ‘올인’하느라 인성교육에 배당된 시간은 아예 없다”는 뜻으로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인지.

이 교장선생님의 생각과 달리 오늘날 교육계 최대 화두는 ‘인성교육’이다. 특히 최근에는 대학에서도 인성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가족 모임에서 새로 맡은 나의 보직이 ‘인성교육원장’이라고 설명하자, 곧바로 “대학에서 인성교육이 과연 필요하며, 무엇보다 이미 머리가 굵은 대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이 대체 소용이 있기는 한가”라는 누님의 질문이 생각난다. 이 물음에 대한 필자 나름의 소견을 펼쳐본다.

인성교육이 이루어지는 첫 출발점과 장소는 바로 가정이어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 가정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전에는 대가족제도 하에서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해서 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누면서 기본예절과 공동체성을 배웠다. 이에 반해 오늘날 우리 자녀들은 가족들과 함께 식사나 대화를 나눌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가정에서부터 기본적인 인성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기에 초·중·고교에서 별도로 인성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문제는 초·중·고교에서마저도 입시를 최우선순위로 두느라 인성교육은 여전히 말뿐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아본 학생들이 많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누님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만일 인성교육이 가정과 초·중·고교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면 굳이 대학에서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이 그렇지 않기에, 그래도 사회에 나가기 전 마지막 공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이 무한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대학생들의 인성교육에 시간과 인력,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대학생 인성교육의 실효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누님의 두 번째 질문은, 사실 대학생들에게 인성을 교육 하려는 우리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다. 이제 어느 정도 사고가 굳어진 그들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현장에서 실제 인성교육을 실천해 본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론과 실습을 겸비한 인성교육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론교육(지식전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체험하고 느끼고 실천하는 인성교육을 행할 때, 학생들은 참된 인성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스스로 인성을 함양시켜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토대로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론·체험·실천이 잘 조화된 참된 인성교육을 해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이 나와 너, 우리라는 공동체적 삶을 성찰하는 이론교과는 물론이고 직접 장애체험이나 장애인동행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된다. 나아가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사회 여러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깨달은 바를 실천 하고 있다. 결국 이론이 전부가 아니라 체험과 실천까지 잘만 결합된다면, 대학생들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고 설득력 있는 인성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직접적인 경험의 결과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모든 학생들이 이미 가정에서 참된 인성교육을 받고 대학에 들어왔기에 대학에서 더 이상 ‘인성교육’을 언급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꿈꾸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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