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지원 미끼로 거버넌스 관여·정원감축 요구에 불만고조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박근혜정부는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국립대들은 점점 강화되는 규제에 ‘옴짝달싹 못한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총장공모제 도입 등 거버넌스 개입부터 등록금 규제와 기성회비 관련 법적 압박을 받는 가운데 정원감축을 전제로 한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받아야 하고 국가 소유의 학교재산을 활용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등 재정적 압박에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이들의 하나같은 불만이다.

■총장공모제 도입으로 법적공방 ‘몸살’=지난달 31일까지 모든 국립대학들이 총장직선제 관련 학칙을 모두 폐지하고 공모제 규정을 만들었다. 교육부에서 지난해 10월과 지난 1월, 3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관련 조치를 완료하지 않을 경우 국가 재정지원사업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전남대와 전북대 교수회는 정부의 직선제 폐지 압박에 반발해 성명서를 냈다. 전북대 교수협의회의 경우 법원에 ‘학칙 개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했다.

전북대 교수협의회측은 "앞서 투표를 거쳐 본부의 직선제 폐지에 합의했지만 ‘구성원이 합의한 방식으로 선출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폐지에 찬성한 것"이라며 "이번에 본부에서 밀어붙인 공모제 도입 규정은 일방적인 조치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본부를 상대로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부산대 교수회는 지난해 11월 한 차례 승소했다. 학교측 항소로 법적 공방을 진행 중이다. 이와 별도로 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차원에서도 교육부를 상대로 한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교수회의 손을 들어줄 경우 학칙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고, 각 대학은 재정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미 지원 받은 2013학년도 교육역량강화사업 비용의 절반을 반환해야 하며, 연차별로 지원받는 정부재정지원사업비도 삭감된다. 올해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아 선정되지 못할 경우 대학 운영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재정난… '정부가 국립대 접수'=대학들이 법적 부담까지 안으면서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르는 이유는 결국 재정난 때문이다. 6년째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고 있고, 수익사업이 사립대에 비해 제한돼있으며 국가소유의 대학 재산은 쉽게 운용할 수 없게 돼 있어 정부 지원이 줄면 대학은 손발이 잘리게 된다.

경남지역 국립대의 한 기획처장은 “물가는 매년 3~5%씩 늘어나지만 정부의 국립대 지원 예산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도, 등록금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원감축 과정에서 손실된 예산규모가 100억원 단위”라고 토로했다. 그는 “외국 대학들은 대개 외부 손님이나 국제학술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호텔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 국립대들은 법적으로 묶여있다. 가뜩이나 재정난인데 수익사업 규제도 풀리지 않으니, 국립대들은 그야말로 물 위에 목만 내놓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재정난 속 수익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재원 부산대 기획처장은 “정부지원 없이 대학 자체적으로 구입한 캠퍼스 부지 및 건물도 국유재산으로 분류돼, 임대료가 모두 국가에 귀속된다”며 “재정난 속에서도 대학들이 수익사업을 택하기 어려운 구조다. 청와대 건의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잘한 비용까지 국가에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 국립대의 기획처장은 “각 대학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비용을 걷어 복지사업을 시행하는 생활협동조합 공간 사용료도 세금으로 걷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접했다”며 “대학들이 저렴하게 비품과 수업에 필요한 자재, 식비 등을 집행하기 위해 생협이 존재하는 것인데 이런 사용료까지 걷는다고 하면 대학마다 복지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하고 손을 내저었다.

■재정 미끼 규제가 교육 질 저하로=교육부에서는 지난해까지 시행하던 국립대학운영성과목표제도를 올해 ‘국립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바꿨다. 교육부는 올해 6~8월 중 일부 국립대에 평가를 통해 지원대학을 선정하며, 규모별로 예산을 지원한다. 총 사업 규모는 100억원이다. 입학정원 4000~5000명 규모의 지역거점국립대가 선정될 경우 15억 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 받게 된다. 이 사업 역시 총장공모제를 실시하는 대학만이 신청가능하다. 이마저도 조건을 달아 대학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지역 국립대들은 특히 대학구조개혁과 특성화사업에도 예외가 없어 7% 이상 정원 감축도 감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를 위한 학과통폐합도 진행 중이다. 정원감축은 결국 등록금 수입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 국립대는 매년 같은 악순환을 반복해야 할 처지다.  

한 지역거점국립대 기획처장은 “절대로 큰 규모의 지원은 아니다”면서도 “국립대들이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교육 질 관리를 해온 국립대들마저 대학구조개혁에 대비하느라 정작 대학 본연의 교육과 연구는 뒷전인 상태”라고 밝혔다.

충청지역 국립대 모 기획처장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지 보직교수들 역시 ‘어쩌다가 대학이 이렇게 됐나’하는 한탄을 많이 한다. 시장논리로 대학을 지배하려다가는 세계 수준으로 도약은 고사하고 교육 질만 더 떨어진다는 경고를 정부가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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