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실현가능성 검증 안된 개발·건설 등 공약 남발

매년 신축, 꽉 들어찬 관악캠퍼스…땅 속까지 파내자는 ‘개발 중독’
버스정류장만 20개, 베이징대보다 넓어…"경쟁력은 면적과는 무관"

▲ 텅 빈 복도. 완공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우정관 4층(사진)과 5층 전체는 통째로 비워져 있다. 5층 일부를 총장추천위원회 행정추진단이 임시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법인 서울대가 기존 건물의 효율적 사용과 교육 내실화에 대한 고민 없이 외형적 팽창에만 주력해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총장 예비후보자 5명 역시 경쟁적으로 신축·개발 공약을 내놓고 있다.(이하 사진=이우희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서울대 총장 예비후보자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건설·개발이 빠지지 않고 들어있다. 서울대는 최근 축구장(약 7100㎡) 47개를 합친 면적과 비슷한 33만㎡ 규모의 평창캠퍼스를 완공했고, 시흥캠퍼스도 설립을 추진 중이다. 관악캠퍼스에선 제2중앙도서관 격인 관정도서관을 비롯해 생명공학연구동, 치의학대학원, 체육문화연구동 등 모두 5개동의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들어 해마다 5개 내외의 건물이 새로 지어지면서 축구장 579개(410만㎡)와 맞먹는 관악캠퍼스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난개발 상태다. 건축법상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절대녹지공간을 제외하고 개발 가능한 땅은 219동의 건물들로 빼곡하다.

이처럼 급속한 외형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공간 부족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오고 있다. 짓기에만 열중했지 공간 활용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축에 앞서 기존 건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더해지고 있다.

게다가 법인 서울대가 최근 캠퍼스 확장과 세계대학순위 상승 등 외부 지표에 집착하는 사이 학내 성추문과 교수간 파벌 싸움, 순혈주의, 특목고 선호 입시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그럼에도 서울대 총장 예비후보자 5명 모두 앞 다퉈 개발공약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기 총장 체제에서도 서울대는 기존의 ‘외형적 팽창주의’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서울대 관정도서관 신축 현장.

■호텔·기념관·연구병원·지하개발·터널까지…신축·개발 계획 봇물 = 예비후보자들의 개발 공약은 기숙사처럼 꼭 필요한 복지시설도 있지만 대학에 꼭 필요하다고 보기 힘든 것들도 적지 않다.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을 위한 복지·교육시설 보다는 교직원을 위한 시설 공약이 많다는 말도 나온다.

조동성 전 경영대 학장은 캠퍼스 확장을 7대 중점사업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면서 세종시로의 정부 이전으로 비워지는 과천정부청사를 활용한 과천캠퍼스 구상안을 내놓았다. 관악산을 관통하는 3.6km의 터널을 뚫어 관악캠퍼스와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의 연구기능 확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묘안이라는 설명이다.

강태진 전 공대 학장은 ‘글로벌 중심대학 위상’에 걸맞은 대학호텔을 BTO(Build-Transfer-Operation) 방식으로 짓겠다고 약속했다. BTO 즉 수익형 민간투자사업방식은 일정기간 민간사업자가 위탁경영을 맡아 투자금을 환수하는 방식이다. 인문사회·과학기술·예술 등 전 분야 교육의 집적화를 위한 융합강의동의 신축과 지하 주차장 조성도 제안했다.

성낙인 법대 교수는 ‘서울대 역사기념관’과 ‘서울대국가유공자기념관’의 건립을 제안했다.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에 기여한 서울대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미래 교육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그 밖에 △대운동장의 지하 대개발 △기초 교육기능 담당할 서울대 연구병원 신설 △융합연구를 위한 생명공학연구단지의 조성 △분당병원 부설 연구소 건립 △세종시 서울대 분원 설치 △서울시내에 ‘다운타운 캠퍼스’ 조성 등을 제시했다.

오세정 전 기초과학연구원장은 관악캠퍼스에 신축을 할 땅이 부족하다면서 신축보다는 환경친화적인 리모델링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관악캠퍼스 인근 신림동과 낙성대 등 낙후한 대학가를 함께 개발해 대학도시 건설을 지향한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시흥캠퍼스에는 해외 유수대학을 컨소시엄 형태로 유치해, 서울대생과 외국학생, 지방국립대생이 교환학생 자격으로 함께 거주하면서 학점을 딸 수 있는 ‘열린 대학’을 조성하겠다고도 했다.

김명환 전 자연대 학장은 무분별한 캠퍼스 난개발을 지적하면서도 개발 공약에 대한 유혹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기숙사 확충 이외에도 대운동장 지하개발, 제2교직원아파트 신축을 약속했다. 서울대가 추산, 연곡, 곤지암, 춘천, 평창, 동해 등에 보유한 숙박시설을 교직원을 위한 휴양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 혹은 증축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 예술계 복합연구동 공사로 인해 학생들은 안전펜스 안쪽 우회로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예비후보자 전원 공약할만큼 서울대는 비좁을까 = 서울대의 교지면적은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을 통틀어 여타 대학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3년 서울대 본교의 교지 면적은 420만㎡로, 2위인 연세대 신촌과 원주캠퍼스를 합친 317만㎡를 가볍게 눌렀다. 이어 △3위 영남대 267만㎡ △4위 대구대 233만㎡ △5위 한국외대 231만㎡ △6위 경희대 184만㎡ △7위 한양대 183만㎡ △8위 포스텍 163만㎡ △9위 충남대 160만㎡ △10위 경상대 158만㎡ 순이다. 게다가 다른 대학들은 모두 지방 캠퍼스를 포함한 면적이다.

학생규모를 감안한 기준치보다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교지확보율은 국공립대 3위(550%), 교사(校舍)확보율은 국공립대 1위(278%)를 기록했다. 각각 기준치를 5배와 3배 가량 초과하고 있다. 캠퍼스 내 시내버스 정류장이 20개에 달한다는 사실도 서울대의 물리적 규모를 짐작케 한다. 현재 지선버스 노선 3개가 서울대 캠퍼스 내를 운행하고 있다.

서울대는 관악과 연건캠퍼스를 포함하는 교지 이외에도 광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2013 서울대 통계연감'에 따르면, 서울대의 총 토지 면적은 793만㎡로 △시설부지(관악·연건·수원캠퍼스) 432㎡ △실습장 및 부속농장(관악, 과천, 수원 일대) 350만㎡ △학술림(광양, 화성, 경기광주 일대) 104만㎡ △기타(서울 잠원, 여주 일대) 1만㎡를 보유하고 있다. 그 밖에도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올해 초 정부로부터 부설 초·중·고를 되돌려 받았으며, 전국 각지의 학술림과 수목원을 추가로 돌려받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서울대의 외형적 크기는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대학들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다. 중국 베이징대의 교지는 274만㎡로 오히려 서울대 관악캠퍼스보다도 작다. 미국 예일대도 중앙캠퍼스와 스포츠시설, 골프장 등을 모두 합쳐도 443만㎡에 불과하다. 일본 도쿄대의 경우 일본 전역에 보유한 부동산이 3억2000만㎡에 달하지만, 교지 면적만 따졌을 땐 163만㎡로 서울대의 절반도 안된다. 다만 세계 최고의 부자대학으로 유명한 하버드대의 경우 총 부동산 면적이 2057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대학의 교육 경쟁력과 외형적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 서울대 우정관 2층 강의실은 스포츠행정 강의에 활용 중이지만 좌우 대부분의 공간이 남아 구석에 책걸상을 쌓아두고 있다.

■비어 있는 건물들 … 일단 짓고 용도는 '차차' = 국내 대기업과 자산가들의 기부금이 몰리는 서울대는 용도가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단계에서 일단 건물을 짓고 보는 경우가 흔하다.

부영그룹이 기증한 우정관은 지난해 완공돼 지은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4층과 5층 전체가 비어있다. 5층 일부는 현재 총장추천위원회 행정지원단이 임시로 사용하고 있지만 6월 총장선거가 끝나면 철수하게 된다. 2층 대형 강의실의 경우 스포츠행정 강의에 사용하고 있지만 수강인원이 적어, 가운데 일부 공간만 활용 중이다. 1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대형공간이지만 가운데 배치된 책상 6개와 의자 30여개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책걸상은 강의실 양 구석에 쌓여 있다. 서울대 시설관리국 관계자는 “곧 면적 배분을 할 계획”이라며 “실제로는 신축 건물을 포함해 면적이 남아서 놀리는 공간은 거의 없다”고 해명했다.

구체적 계획 없이 개발하고 보는 팽창주의는 서울대 시흥캠퍼스 사례에서도 목격된다. 서울대는 지난 2009년과 2010년 시흥시와 배곧신도시 내 ‘교육 및 의료 복합 용지’ 66만㎡에 시흥캠퍼스를 건립하기로 약속하고 현재 추진 중이다. 시흥캠퍼스는 지난해 일부 지역지를 통해 서울대가 이곳에 기숙형캠퍼스(RC)를 기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방캠퍼스’의 건설로 오해한 총학생회가 반발했고 서울대는 RC계획은 없으며 학부 교육시설이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곳에 들어설 구체적인 시설이 아직까지도 명확히 협의되지 않은 채, 사업은 진행 중이다.

물론 꼭 필요한 신축도 있다. 서울대 시설관리국 관계자는 “학문이 첨단화 되고 변화 주기가 빨라지면서 오래된 건물은 신축이나 리모델링이 꼭 필요한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관악캠퍼스의 과밀화로 제2, 제3 캠퍼스의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 관계자는 “캠퍼스가 관악산을 품고 있어서 가용부지가 전체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이라며 캠퍼스 확장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총학생회 간부를 지낸 한 재학생은 “시흥캠퍼스 추진 때도 제기했던 의문으로 별도의 캠퍼스를 건설해야 할 정도로 필요한 시설들이 많이 있는가 우선 의문이다”라며 “학교 측은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분명한 목표 없이 우선 시설 건물들만 무계획적으로 짓고 본다. 해마다 신축 건물들이 있다는 것은 공간이 분명 늘어나고 있다는 것인데, 정작 학생들의 공간은 그대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 공간 문제에 대해 본부는 단과대들의 자율사항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서울대 전체 공간을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제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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