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문정신문화과’ 신설 vs 대학 '정원감축·학과 통폐합 1순위'

[한국대학신문 신나리·이연희 기자] 정부는 인문학을 살리자며 나서고 대학은 오히려 정부재정지원을 받기위해 인문학 관련학과를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인문학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2월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인문정신문화과가 신설됐다. 반면, 대학에서의 인문학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특성화 사업안을 발표하며, 각 대학의 정원감축계획안에 따라 가산점을 주겠다고 공표했다이에따라 대학은 지난달 30일 특성화 사업안을 제출하며 정원감축계획안을 제출했다. 평균적으로 지방대는 10%, 수도권은 4%의 정원감축안을 내놨다.

이에 기초학문을 비롯한 인문학과를 전공하는 학생과 교수는 정원감축안의 칼날이 사실상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취업률로 대학 경쟁력을 판단하는 현실에서 기초학문과 인문학은 눈엣가시라는 설명이다.

조우호 덕성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기초학문분야와 인문학은 제도적으로 지원받고 대접받은 적은 없지만, 이만큼 (괄시가) 심하지도 않았다. 지난 정부는 실용정부를 표방하면서 그 정도가 사실 매우 심했다라며 현재 대학에서 인문학의 상태를 궤멸 직전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인문학 융성에 대한 원대한 포부를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지만,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인문학은 멸종 위기 상태에 처해 있다.

인문 대한민국확정된 사업도 없고 예산도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인문정신문화과설립은 인문학 부흥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앞으로 인문정신문화진흥법이 제정되고, 인문학 대중화를 위한 국민독서운동도 전개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도서관, 박물관 등에서 인문학 강좌 등을 열고, 한국의 정신문화의 토대를 든든히 할 국학 연구에 매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문·정신문화자원의 발굴·활용 및 창의적 계승에 관한 계획의 수립 및 추진 문화시설 및 문화예술·관광 등과 연계한 인문·정신문화 진흥에 관한 계획의 수립 및 추진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인문정신문화과의 인문학 정책과 사업은 대중과 지역별 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문정신문화과 조형익 주무관은 예산 편성이 확정되지 않아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없지만, 소외 계층, 지역에 인문학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현재 재경부와 예산과 사업계획에 대해 조율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인문학 부흥 정책에 대학과 협의는 진행된 것이 없다. 조 주무관은 대학은 우선 교육부 관할이기에 함부로 사업안이나 계획을 세울 수 없다. 대학에서도 인문학을 융성해야 한다고 보지만, 구체적인 것은 교육부와 업무별 협의 공조가 필요하다라며 말을 아꼈다. 정부의 인문학 융성과 대학내 인문학의 입지는 따로 가는 셈이다. 

▲ 동국대는 2011년 12월 학문구조개편안에 따라 윤리문화학과가 철학과에 통폐합된다고 발표했다. 이에 학생들은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학문구조개편안을 내놓은 것에 반발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신나리

기초학문 보호, 최소한 원칙도 없나=인문학과 기초학문 분야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줄곧 사립대 구조조정 통폐합 1순위로 거론됐다. 인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2011년 정부의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평가시 취업률 평균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특성화사업 마감을 앞두고는 특성화 분야 밖에 있다는 이유로 대폭 정원감축 또는 통폐합 대상으로 분류됐다.

인문과학대학과 사회과학대학을 교차 통폐합하면서 전면 재개편하기로 한 세종대의 엄종화 교무처장은 구조조정을 일찍 단행한 일본 대학들만 봐도 사립대는 백화점식 종합대학이 아니라 사회 수요를 적극 수용하며 교육과정을 꾸렸다현재 교육부에서 취업률과 학생 만족도 상승, 교육비 절감 위주로 구조조정을 유도한다면 결국 사립대에서 기초학문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국가 지원을 받는 국립대 위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국립대 기초학문 단위도 구조조정 칼날을 마주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 국립대가 3년간 7~10%가량 입학정원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초학문 보호장치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국립대는 사립대와 같이 기초학문 단위를 폐지하거나 통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강원대는 특성화사업을 앞두고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 통폐합을 시도했다. 대학본부는 학과통폐합 또는 융합학부로 합쳐 전공 형태로존치시키는 안을 검토했으나, 대학평의원회 심의에서 부결돼 겨우 취소됐다.

규모 2위의 국립대인 부산대의 경우 7%의 정원감축안을 내놓으면서 큰 폭의 학문단위 구조조정이 따랐지만 기초학문 단위는 정원만 조정했을 뿐 크게 손대지는 않았다. 정영숙 부산대 교무처장은 교육부로부터 기초학문을 보호하라는 지침은 없었다면서도 대표적인 지역거점국립대인 만큼 기초학문 단위를 없앨 경우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전북대 관계자는 국립대 스스로 당분간 기초학문 학과를 건드리지 않는 분위기라면서도 정부 차원의 기초학문 인력양성을 위한 지원약속이라든지 보호정책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미 전국의 인문학자들은 지금까지 관용어처럼 입에 올렸던 인문학의 위기이상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인문총연합회(이하 인문총)는 5월 9일 이화여대에서 변화 속의 대학 인문학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김혜숙 인문총 대표회장(이화여대 교수)은 이날 대학구조조정과 인문대학의 미래에 대해 기조발표를 하기로 했다. 기조발표를 통해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문대학이 헤쳐 나가야 할 길과 정부정책방향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김 교수는 정부의 인문학 대중화나 일반 대학이 교양교육 모델을 개발해서 유포하도록 하는 방식은 유행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무력화될 우려까지 있다한문과 언어, 철학 등 견실하게 인문학 뿌리를 갖출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전략과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교양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기존 인문대학 형태와 교사양성 시스템이 21세기에 맞는지도 고민해야 할 것고 지적했다.

 

●  3가지 인문진흥법 발의됐지만...
중복된 내용과 주무 부처 달라 실효성 논란

▲ 지난해 10월 7일 교문위 김장실 의원(새누리당)이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한 법제화 방안’ 국회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문학 육성과 관련 법제화 방안을 두고 문체부와 교육부, 학계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최성욱

현재 국회에는 인문사회과학진흥법안, 인문정신문화진흥법안, 인문학 진흥 및 인문강좌 지원 법안 등 3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인문학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발의된 3개의 법안은 ‘인문진흥’을 위한 목적은 같지만, 컨트롤 타워를 맡을 주무 부처가 교육부, 문광부 등으로 달라 법안의 실효성 논란이 있다.

지난해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은 인문사회과학진흥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서 이 의원은 대학이 학부제로 운영되며 학과 선택이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을 지적했다. 법안은 인문사회과학연구를 효율적으로 지원⋅육성해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균형적 발전을 유도하고 우수한 인문사회과학 연구인을 양성하는 것을 골자로 △재정⋅금융⋅행정지원 등의 시책 수립 △인문사회과학 진흥을 위한 사업 개발 추진 등을 담고 있다.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한 법제화 방안’(정신문화진흥법)은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했다. 이 법안은 소통과 신뢰, 나눔과 배려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적 가치를 국민 행복의 핵심자원으로 삼고 ‘문화융성, 국민 행복’의 근간인 ‘인문정신문화 진흥’의 기반을 촉구한다. 법안은 △인문학술연구 지원 △인문정신문화의 발굴·교육·인력 양성 △대중 대상의 공공프로그램 개발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신계륜 민주당 의원 역시 ‘인문학 진흥 및 인문강좌 등의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인문학지원법)'을 발의했다. 인문학전공자들의 활동 무대를 제도적으로 마련해 인문학 위기를 타개한다는 취지로 인문학자에 주목한 법안이다. △인문학 진흥 종합계획 수립 △인문학 연구활동 지원 강화 △인문학연구 및 인문강좌활성화정책심의회(이하 심의회) 구성△국립인문정책연구원 신설 △인문강좌 집중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한다.

이들 3개 법안은 모두 ‘인문학의 위기’에 집중해 타개책을 모색했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법안 내용 중 인문강좌, 인문정신 연구자 양성 등 중복되는 내용도 있는대데 법안의 주무부처 역시 교육부, 문광부 등으로 나뉘어 있어 부처 간의 힘겨루기로 실효성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위행복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일정 부분 교육 연구의 틀을 유지해줘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의 틀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우호 덕성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역시 “실용학문을 강조했다 인문학 부흥을 말하는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문학 정책은 널뛰고 있다. 정권에 상관없이 정책과  컨트롤 타워는 일치해 일관성있게 실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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