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만들고 양주 테이블까지 등장 "주점은 소통 창구, 학생회 비용 충당도"

*** 세월호 침몰사고의 여파로, 연예인 초청행사와 주점을 중심으로 치러지던 대학축제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달에 예정돼 있던 축제는 모두 연기되거나 취소됐으며 대신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성금 모금운동이나 사회적 의제를 토론하는 공론의 장을 열고 있다. 학생들조차 외면하고, ‘유흥’으로 얼룩져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학축제가 이번 기회로 변모할 수 있을까. 본지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공동으로 축제로 대변되는 대학문화를 돌아보고 본연의 모습을 찾아 청년문화, 나아가 사회 전반의 문화 수준을 격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연예인 무대 회당 평균 ‘4800만원’, 동아리 공연엔 450만원 ‘주객전도’ 
“대학 축제 문화 개선하려면 이번이 기회,  다함께 바로 고민시작해야”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지난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주요 국립대가 지난 2012년 대학축제에 쓴 행사비용은 대학당 1억1641만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연예인 섭외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평균 4800만원. 여기에는 무대 설치와 철거 비용 등이 포함돼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연예인을 동원한 무대에만 총 운영비의 41%를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에 따르면 한 지방대의 경우 축제기간 연예인 섭외에만 1억원 가까운 지출을 했다. 서울대도 4035만원이나 썼다. 서울대가 다른 대학에 비해 비교적 적은 비용을 지출한 데에는 초청연예인의 몸값과 인원 수의 차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울을 기준으로 거리에 비례해 이동경비 등 추가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연예인 행사섭외업체 K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 8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시간이면 해당 연예인이 서울에서 2~4개의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며 수도권보다 지방의 섭외비가 비싼 이유를 안내하고 있다.

대학총장 출신이기도 한 박 의원은 “학생들이 준비한 동아리공연에는 인색하면서 연예인들에겐 거액을 쥐어준다”며 “대학축제가 연예인축제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연예인 초청행사에 5800만원을 쓰면서 정작 동아리공연 등 학생활동에는 10분의 1도 안 되는 450만원을 지출한 대학도 있었다. 대학축제에서 학생들이 밀려나고 연예인이 주인공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행사비의 대부분이 등록금으로 조성돼 있어 수천만원대의 연예인 초청행사를 두고 찬반논란도끊이지 않았다. 특히 인기 연예인이 축제의 흥을 돋울 수 있다면 1년에 한 번쯤은 수천만원 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학생들의 인식은 연예인 중심의 대학축제를 부채질했다.

▲ 언제부터인가 대학축제가‘유흥’과‘상업화’로 얼룩지면서 학생들 조차 외면하는 축제로 전락했다. 특히 축제때면 으레히 술판이 벌어져 각종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왼쪽) 세월호 사고로 축제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대학이 늘면서 대학 축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달 대동제를 전면 취소한 한성대 총학생회가 8일 교내에서 마련한 헌혈행사에 교수봉사단 소속 교수들과 교무위원, 학생들이 동참했다.(오른쪽) <한명섭 기자>

최근 대학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클럽(club)주점’은 연예인과 술, 유흥이 한꺼번에 만나는 지점이다. 일부에선 대학축제가 유흥주점으로 완전히 빠져버렸다고 성토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대다수 학생들의 반응은 상당히 뜨겁다.

지난해 충남의 한 사립대는 축제기간에 클럽주점을 운영키로 했다가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 대학은 교내 체육관에 서울시내 유흥주점과 똑같은 형태의 클럽을 이틀간 운영하기로 했다. 무대를 설치하고 연예인 출신 디제이(DJ)를 섭외했다. 테이블당 15만~45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좌석도 별도로 마련했다. 이 좌석은 사전에 예약을 받았는데 며칠 만에 매진될만큼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이 행사를 기획한 총학생회장 P씨는 “연예인 초청하는 데 수천만원이 드니까 적자 면하려고 양주테이블을 기획했을 뿐”이라면서도 “축제 프로그램이라고 해봐야 동아리공연에 주점밖에 없다.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다가 나온 게 클럽이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원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대학 측은 언론보도를 의식해 축제 직전 클럽행사를 전면 철회했지만, 이를 공지한 총학생회 페이스북에는 공지를 띄운 지 1시간 만에 수백개의 댓글이 달릴만큼 학생들의 아쉬움은 컸다.

■주점 폐지 ‘술 없는 축제’ 가능할까? 논란 팽팽= 학과나 동아리의 주요 수익사업으로 자리잡은 ‘주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최근 축제주점에서 과음으로 인해 폭행 등 각종 사고가 빈발하자 정부에서 단속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최근 5년간 대학 캠퍼스에서 음주사고로 숨진 학생이 10여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재작년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통해 대학 캠퍼스에서 주류를 판매하거나 술을 마시는 행위를 전면금지키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4월부터 시행키로 한 이 법안은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상당수 대학에서 ‘술 없는 축제’를 진행하는 등 주점을 아예 없애거나 무알콜 음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대학의 음주문화를 바꿨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주점을 없앤 대학들은 주로 학술제를 열거나 취업박람회 등을 운영했다. ‘교내 음주문화 개선 선언’을 발표한 한국외대는 축제기간 주점을 설치하다 적발되면 해당 학생이 속한 단과대학(학과)의 장학금을 깎는 불이익을 주는 등 ‘술 없는 축제’를 유도하기도 했다. 가천대는 캠퍼스 내 음주를 원천적으로 금지시켰다. ‘가천스타일 선서’ 등에 따르면 잔디밭을 비롯한 교내에서 학생이 술을 마시다 3회 이상 적발되면 그 즉시 제적처리될 수 있게 음주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문제는 주점이 아니고 폭음”이라며 주점폐지나 학내 음주 금지를 놓고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실제로 주점은 교수와 학생,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학생회비가 선택적 자율납부제로 실시되고 있어 축제주점 수익이 없어지면 학생회 운영 자체가 어렵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선택적 자율납부제는 학생들이 등록금을 납부할 때 학생회비를 선택적으로 내는 제도다.

수도권 사립대의 학생회장 출신의 S씨(27·여)는 “학생회비 납부율이 20~30%에 불과해 학생회 운영이 예년같지 않은 상황에서 주점수익까지 끊기면 학생회는 사실상 문을 닫아야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만큼 축제주점 운영여부를 둘러싼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기업체들의 제품 홍보부스까지 대학축제에 끼어들면서 학생들은 점점 더 주변인으로 밀려나고 있다. LG, SK 등 대기업 전자·통신회사들과 화장품 업체 등은 축제 한 복판에서 늘씬한 행사요원까지 동원해가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거대한 다트판을 돌리거나 홍보용 플레시몹으로 시선을 끌고, 컴퓨터 게임 등을 통해 화려한 시연을 선보이는 등 학생들이 준비한 축제행사와는 여러가지로 비교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이곳에선 판촉용 제품을 무료로 나눠주기 때문에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재학생 A(23·여)씨는 “기업체에서 하는 행사는 톡톡튀는 아이디어가 많고 무료제품도 나눠주니 눈길이 가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동아리 공연이나 창작물 등 다소 어설프더라도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게 의미 있을 텐데 요즘 대학축제엔 손님과 주인이 바뀐 것 같긴하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올해 달라진 분위기, 진정한 전환점 될까 = 지난달 16일 서해안 진도 인근해역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의 여파로 올해 봄축제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치러질 전망이다. 사고 직후인 지난달 22일 한성대는 축제를 취소하고 △헌혈 △바자회 △성금 모금 등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행사로 대체했다.

축제기간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대체행사에 동참하는 대학이 줄을 잇고 있다. 한성대에 이어 남서울대는 한울마당축제와 학과별 체육대회까지 무기한 연기했고, 계명대·동국대·동덕여대·서울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수원)·성신여대 등도 축제 대신 성금모금 행사를 진행키로 했다. 국민대·목원대·배재대·부경대·충남대 등은 계획했던 봄축제를 가을로 옮겼다.

최근 연세대 학생회는 무려 6시간의 줄다리기 회의를 진행한 끝에 오는 29~30일 대동제를 열기로 결정했다. 대신 주점 위주의 축제에서 벗어나 사회문제를 의제로 한 공론장을 만드는 새로운 형식의 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서울여대에 재학 중인 김민영씨(4년)는 최근 대학축제의 변화에 우려섞인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씨는 “그간 대학축제는 ‘연예인 보는 재미·술 마시는 재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새롭게 변모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에 이어 내년엔 또 어떤 색다른 축제를 기획할 것인지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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