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만으로는 한계 ‘실험실 문화’ 형성이 핵심"

*** 진도 세월호 침몰 참사는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자리한 안일주의와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였다. 사회 전반에서 안전에 대한 자성과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실험실 안전부터 교통안전, 행사안전, 식품안전까지. 대학의 안전, 무엇이 문제인가. 현황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한국대학신문 정윤희 기자] #지난해 5월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에서 화학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같은 학교 자연대 연구실에서 황산이 폭발해 대학원생 7명이 얼굴 목 등에 화상을 입었다. 

지방의 한 국립대에서도 지난해 11월 혼자 실험을 진행하던 대학원생의 양손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 학교 대학원생이 송풍팬 날에 손을 다쳐 봉합수술을 받았다. 이들 학교 모두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현장점검 결과 학생들 안전교육 이수율이 15~20%로 매우 저조한 상태였다.

■ 실험실 사고 원인 1위는 ‘안전교육 미흡’ = 연구실 안전사고는 매년 100여건 이상 발생한다. 미래부가 보고받은 지난 7년간의 연구실 안전사고는 총 785건으로, 2013년 연구실 안전사고만 해도 전체 사고 107건 중 94건(88%)이 대학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안전사고는 왜 끊이질 않을까. 지난 2월 발표한 미래부의 ‘연구실 안전관리 현황 지도ㆍ점검 분석 결과’를 보면 안전교육 실시가 미흡했다는 지적사항(1520건)의 28%(417건)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그외 △안전조직체계 미흡(24%, 368건) △보험가입ㆍ건강검진ㆍ안전예산 확보 미흡(21%,322건) △안전점검 미실시(20%, 305건)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학에서도 2006년부터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하 연안법)에 따른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법률에 의하면 연구활동종사자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신규교육 2시간 이상, 매년 12시간 이상의 정기(집합)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안전교육이 형식에 그친다는 데 있다. 연안법에는 교육대상에 따른 안전교육 시간이 명시됐을 뿐 실시 시기와 구체적 방법, 제재조치는 학교의 재량이다. 실제로 황산폭발 피해자도 지도교수의 실험 전 주의사항을 듣는 것 이외에는 안전교육에 참석한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 미래부 안전관리 강화는 허울, 위반해도 제재는 ‘솜방망이’ = 미래부는 지난해부터 창의인재 보호를 위한 연구실 안전관리 체제 강화에 나섰다. 2006년 시행된 연안법을 기반으로 현장점검 대상기관을 기존 100여개에서 211개로 대폭 확대했고, 연구실 안전관리 결과를 기관평가에 반영하거나 안전관련 현황을 대학정보공시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전교육 미이수자에 대한 연구실 출입이나 논문심사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이다. 또한 지난해부터는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제’를 도입하고 개별 연구실을 상대로 정부가 직접 안전관리 상태를 심사하고 있다. 현재 16개 연구실이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미래부의 안전교육에 대한 관리감독은 형식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미래부는 연안법 제정 이후 지난해까지 9년간 법 위반으로 인한 과태료 부과는 17건(사고 미보고 3개 기관,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미실시 9개 기관, 안전환경관리자 미선임 5개 기관)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현장점검 때마다 문제가 됐던 ‘안전교육의 (저조한)이수율’에 대해서는 과태료 등 제재조치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안법 제25조(과태료)제3항에는 “제6조(안전관리규정의 작성 및 준수)제1항에 따른 안전관리규정을 작성하지 아니하거나 제6조제2항에 따라 이를 성실하게 준수하지 아니한 자”에 대한 과태료 처벌 규정이 있지만, 이수율과 직접적인 관련이 적을 뿐더러 법 위반의 구체적인 범위설정이 이뤄지지 않아 미래부가 대학에 실제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서울대의 한 실험실 출입문에 걸려 있는 '수료증 부착판'. 실험실 출입자에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반복적으로 일깨운다.(사진=정윤희 기자)

■ 대학 자체적인 실험실 ‘안전문화’ 조성 절실 = 실험실 사고를 겪었던 학교들은 유사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부산의 C대학 실험준비실에서 납품업체 직원이 장비를 설치하던 중 그 일부가 작업자 신체를 타격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학교에서는 담당교수 책임 하에 연구실 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안전교육 이수율을 높이기 위해 온라인 교육시스템을 도입, 오는 6월에는 안전관리센터를 발족해 학내 다양한 위기사항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안전관리 전문 인력을 배치할 예정이다.

서울대 환경안전원도 자체적인 안전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연안법’에 따라 2월과 8월에 정기(집합)교육을 실시하는데, 3월과 9월에 입학하는 신입생도 입학 전에 진행되는 안전교육에 참여토록 하고 있다. 또한 안전교육 테스트를 통과하면 수료증을 발급하고 이를 가진 학생만이 실험실 입실이 가능토록 했다.

서울대의 독특한 안전교육은 이 수료증 활용에서 시작된다. 서울대 환경안전원은 실험실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안전교육 수료증을 실험실 문 앞에 걸어놓을 수 있도록 ‘수료증 부착판’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실험실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안전교육을 이수한 자’에 한정한다는 제재조치로 ‘실험실 안전’에 대해 실험자 모두가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안전수료증을 일종의 ‘실험면허’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서울대 환경안전원 손병권 팀장은 “안전도 문화다. 안전관리자를 비롯한 실험자 모두가 안전을 중시하고 지키려고 하는 ‘실험실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 안전교육의 핵심”이라며 “안전교육은 정책으로 한계가 있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 안전에 대해 공부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격려하는 문화가 실험실 안전의 선순환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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