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행진’ 제안한 용혜인(경희대 정치외교4) 씨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가만히 있으라”. 지난달 16일 300여 명을 수장시킨 결정적인 한 마디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믿고 구조를 기다린 세월호 288명의 희생자들은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우리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용혜인(경희대 정치외교4) 씨였다. 그 글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 안타까운 비극이 반복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런 반복을 피하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보여주자 제안했다. 

지난 19일 오전 9시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는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있었다. 이날 박대통령은 담화문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용혜인 씨는 유치장 안에서 지켜봤다. 4차 침묵시위를 하던 중 '불법시위' 협의로 광화문광장에서 연행된 것이다. 

44시간의 구금 끝에 석방된 용혜인 씨를 지난 21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날 저녁 시위자 중 가장 마지막으로 유치장을 나온 용혜인 씨는 작고 다부져 보였다. ‘모범생’같은 인상. 그에게 ‘침묵행진’를 제안한 이유를 물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살피면 생명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조건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안전교육에는 54만원을 쓰면서 광고비에는 2억3000만원을 쓰고,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무리하게 증축을 하고, 평형수도 빼고…. ‘돈이 생명보다 우선되는 이런 풍조가 바뀌지 않으면 이런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라 말하는 사회에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아야 이런 일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세월호 참사 직후 용씨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봤다. 그가 보기엔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은 책임자보다 ‘단죄자’ 역할을 자처했다.

용씨는 또 “현 정부가 규제를 ‘암덩어리’라 표현하며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규제는 기본적으로 안전과도 닿아있는 것”이라며 “선령 제한 완화 등 기업 이윤을 위해 규제를 완화한 것이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침묵행진’을 제안한 시점부터 사찰과 통제를 받았다고 말한다. 게시글은 삭제됐고, 정보과 형사들이 침묵행진 시 채증을 하고 용씨 등의 행적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지금 홍대입구역 몇 번 출구에 몇 점이 있다고 무전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몇 명이 아닌 몇 점이 있다고….”

침묵행진이 진행될수록 투입되는 경찰 병력도 비례했다. 지난 3일에는 100여 명, 18일에는 400~500명에 달했다고 그는 기억한다. 용씨는 국가가 국민을 여전히 ‘통제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 지적했다.

대통령을 만나고자 나선 유가족 앞을 공권력이 막아서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민들을 공권력이 잡아가는 현상이야말로 국가가 국민을 '통제'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 그는 말한다. 

세월호 참사 전후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정홍원 총리와 김장수 안보실장 등이 물러났다.

대학사회도 통탄했다. 대학교수들은 시국선언을 통해 범사회적인 성찰과 반성을 촉구했다. 지난 14일 연세대 151명의 교수들이 '스승답지 못한 우리 모습 반성하고 참회'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이어 서울대, 중앙대, 인천대 교수들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참사 후 한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리고 용씨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또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정확한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월호가 결코 해프닝으로 취급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300여 명의 죽음을 역사로 되새기려면 세월호를 끊임없이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침묵행진을 이어갈 겁니다. 200여 명 시민을 잡아 가둔 것, 그것이 박근혜 정부의 대답이라 생각하고, 여기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답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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