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한달만 미뤄달라” 설득하고 졸업유예도 부추겨 고스란히 충원률 속으로

정부, 대학평가로 ‘부실대학’ 지정…지표경쟁 속 “솔직한 대학만 피해”
대학가 “합법과 불법 경계 넘나들다 결국엔 ‘편법’ 택할 수밖에 없어”

▲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평가를 거쳐야 한다. 지난 4~5년간 대학간 경쟁이 심해지며 평가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한 편법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진=이재익 기자>

[한국대학신문 최성욱·이재 기자, 양지원·이재익 인턴기자] 교육부는 지난 2010년부터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 선정 시 대학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대학가에선 ACE·LINC·특성화사업 등 정부의 주요 대학재정지원사업 신청마감이 몰렸던 지난달 초부터 일부 대학들이 ‘지표’(자료)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편법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2012년 교육부는 대학알리미를 비롯해 재정지원·학자금대출제한대학 등 각종 대학평가를 위해 대학들이 제출한 자료가 허위로 밝혀질 경우 입력오류 값의 5배 페널티와 사업 참여자격 박탈 등 ‘강력한 조치’를 한다고 했지만 허위보고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솔직한 대학만 피해를 본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재정지원사업부터 구조개혁평가까지 모든 게 지표 싸움= 정원감축·학과통폐합 등 대학구조조정이 수반되는 정부의 대표적인 평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다. 교육부는 2010년부터 수시모집을 앞둔 매년 8월말, 전국 200여 개 사립 4년제 대학과 140여 개 전문대학을 평가해 ‘하위 15%대학’을 지정해왔다. 이들 대학은 이듬해 모든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참가자격이 박탈된다. 올해부터는 절대평가와 ‘5등급제’로 평가방식이 바뀌었지만 대학들은 여전히 평가지표 관리에 총력을 쏟고 있다.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위해 대학들은 △발전계획 △학사운영 △교직원 △학생 선발 및 지원 △교육시설 △대학(법인) 운영 △사회공헌 △교육성과 등 8개 평가항목에서 총 30여 개의 관련 지표를 교육부에 제출해야 한다. 여기에 교육·연구·산학협력 등 대학이 가진 강점분야를 중심으로 한 ‘특성화 성과’도 지표화해서 내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전임교원 확보율·교수업적평가제도 운영 여부(교직원) △장학금 지급률·등록금 인상률(학생선발 및 지원 항목) △취업률(교육성과) 등을 평가한다. 이 같은 평가지표들은 대학알리미를 통해 공시되고,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비롯해 ACE·LINC·특성화사업 등 정부 재정지원사업 선정기준으로 활용된다.

이 사업에는 대학별로 연간 총 100억원대 이상의 정부 재정지원이 달려 있고, 선정된 대학들은 ‘정부 검증’을 대학 홍보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부여받는다. 반대로 사업에서 탈락할 경우엔 ‘미검증대학' 또는 '부실대학’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아야 한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평가지표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는 것이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대학 간 평가지표 경쟁에 돌입하다보니 ‘지표 만들기’에 각종 편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보료 대납에 부정입학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 다한다" = 대학들이 취업률, 재학생 충원률 등 정량지표에 ‘손대는 일’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돼왔다. 지난해 5월 교육부가 실시한 특정감사에서만 16개 대학이 적발됐다. 이들 대학은 비상근 근로자는 국민건강보험 직장 가입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에 가입시켜 취업자로 허위 공시하는 수법을 쓰기도 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대학들은 미취업자를 취업자로 둔갑시켰다. 일부 대학의 교수들은 교내에 근무하지 않는 졸업생을 건강보험에 가입시켜놓고 취업자로 공시하는가 하면 규정에도 없는 교내 ‘인턴조교’를 수십~수백명씩 일괄 채용해 취업률을 무려 6.1%p나 끌어올린 대학도 있었다. A대의 한 교수는 본인이 운영하는 음악학원에 학생 6명을 비상근 근로자로 취업시키고 취업자로 보고하기도 했다.

유령계약서도 등장했다. 지방의 B전문대학은 인력파견업체와 서류상으로만 인턴계약을 체결한 졸업생 6명을 취업자로 공시했다가 감사에 적발됐다. 업체가 부담해야 할 435명의 4대 보험료를 인턴지원비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런 수법으로 총 187개 업체에 무려 10억원이 넘는 비용을 치른 대학도 나왔다.

대학들이 수년째 정부의 평가지표로 경쟁하면서 심각한 도덕불감증에 빠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른바 ‘잡매칭’(job matching)으로 사설 인재알선업체에 학생들의 취업을 맡긴 일부 대학들은 취업률을 허위로 공시하고도 알선업체에 ‘성공수당’을 지급했다.

잡매칭이 취업률 허위 공시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취업알선 기능 외엔 전문성이 없는 잡매칭 업체가 학생 1인당 평균 60여 만원의 성공수당을 받아 챙겼다. 그러나 지난해 본지가 입수한 C대의 잡매칭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잡매칭 업체를 통해 취업자로 집계된 졸업생들은 대부분 실업 상태이거나 자력으로 취업한 경우였다. 그러나 잡매칭 업체가 ‘실적’으로 보고한 취업자 명단은 C대 취업률 집계에 고스란히 포함됐다.

대학평가의 주요 지표인 재학생 충원율도 편법의 손길이 미치는 영역이다. 지난해 6월 교육부 감사실이 실시한 특정감사 내용을 보면 신입생 충원율은 취업률과 달리 외부기관과의 연관성이 적어 보다 은밀한 조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D대는 입학자격을 조절해 신입생을 더 받았다. 고등학교 학력인정시설 졸업(예정)자에게만 허용됐던 특별전형을 전문계고교까지 확대해 신입생 65명을 더 모집했다.

수시모집 인원을 초과한 학생들을 그대로 입학시키거나, 정시모집에 지원한 학생을 수시합격자로 처리하는 대담한 방법을 쓴 곳도 있다. 원서마감일이 지나서 도착한 입학원서를 합격처리하기도 했고, 학생모집기간이 끝난 뒤 입학정원을 다시 정해 학생을 모집한 대학도 나왔다. 교육부 감사실 관계자는 “부정입학으로 적발된 상당수 대학이 입시수당까지 부당하게 지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결과 대학들은 학생들의 휴학이나 자퇴시기도 평가지표에 유리하게 잡히게끔 편법을 동원했다. 재학생 충원율 집계 기준일인 4월 1일 이전에 휴학하려는 학생은 대학의 입장에선 ‘설득 대상자’로 분류된다. 휴학 시기를 미뤄달라는 것이 대학의 요구다. 은밀한 제안도 한다. 휴학이나 자퇴에 따른 등록금 환불은 처음 휴학을 신청한 시기를 기준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휴학이나 자퇴는 4월 이전에 이뤄졌지만 서류상으론 4월 이후에 진행된 것으로 둔갑시킨다. 대학은 임의기금을 끌어와 등록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재학생 충원율을 구매하는 것이다. 취업난으로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이들의 수도 고스란히 충원률에 포함돼 졸업유예를 은근히 부추기기도 한다.

충원율이 중요해지자 복수학위제도도 도마에 올랐다. 복수학위를 위해 추가로 학기를 더 다닌다는 명분으로 학기 수를 늘려 재학생 충원률을 높이기 위한 꼼수로 악용된다. 정규 학위기간인 8학기를 넘어 최대 12학기까지 재학하는 학생들이 많아질수록 충원율에 보탬이 된다. 대학들이 나서서 수단을 강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표 상승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엔 학사학위자 이상만을 대상으로 국가자격증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보건의료계열에 집중 투자한 대학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8학기만에 졸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표상 손실’을 입게 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E대의 기획처장은 “학생들이 정규 8학기를 초과해 12학기를 다니면 더 많은 등록금을 걷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냐”며 일부 대학들의 평가지표 부풀리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평가를 위한 평가 반복” ‘옥상옥’ 언제까지?=대학의 평가지표 담당자들은 “제출해야할 지표가 너무 많은데다 확인·검증할 시간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허위·편법 보고 의혹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작성하는 지표의 수치로 재정지원사업의 당락이 나뉠뿐 아니라 자칫 ‘부실대학’으로 낙인 찍히게 될 수도 있으니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고 털어놨다.

수도권 F대의 한 평가 담당직원은 평가지표는 불법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조작에 가까운 조정을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장학금의 경우 대내·대외·동문 장학금 등으로 나뉘는데 동문교수들이 십시일반 출연한 장학금은 세 항목 어디에 포함시켜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가리켜 ‘하이브리드(hybrid) 장학금’이라고 불렀다. 이런 장학금은 지표상 수치가 부족한 곳에 배정한다.

입금이 약정된 발전기금도 입금날짜를 평가 기준일 이전으로 당긴다. 받지도 않은 발전기금을 당겨잡은 후 허위보고하는 것이다. 그는 “아예 꾸며낸 건 아니지 않느냐”며 “일단 부족한 수치(지표)를 채우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니 대학입장에선 학생들 취업도 취업한 사실보단 ‘데이터 입력시점’이 중요하다.

대교협에서 정보공시 관련 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대학정보공시는 말 그대로 ‘공시’로 끝나야 하는데 이 자료로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각종 사업평가에 써버리니까 대학들이 지표 부풀리기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게 되는 것”이라며 “편법을 쓰는 대학에 도덕적 잣대만 들이댈 게 아니라 대학이 교육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끔 평가방식을 바꿔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대학평가 업무를 맡아온 G전문대학의 한 교수도 “전국의 대학들이 1년 내내 평가 자료 만드는 일에 매진하면서 정작 학생들 교육환경 개선과 지원에 쏟을 시간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정부 측에 끊임없이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대학교육의 질을 개선하자고 시작한 ‘평가’가 오히려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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