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백신 안내부터 감사 손편지까지, 감동 전략으로 진화

▲ 한양대 신관 1층 로비에 설치된 '명예의 전당'

음악회, 특강 등으로 인연 쌓으며 ‘기부예정자 프로파일링’
정원 감축, 등록금 수익감소로 사면초가 ... 발전기금에 사활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 대학들의 발전기금 모금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광운대가 발전기금 출연자를 위한 ‘명예의 전당 동판제막식’을 가졌고, 같은 달 27일에는 경북대가 고액 발전기금 기부자 566명을 기리는 ‘명예의 전당’을 건립했다. 코리아텍(한국기술교육대)도 올 초 발전기금 명예의 전당 신설 뜻을 밝혔다. 발전기금 유치 전략도 고액과 소액을 가리지 않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극진한 예우·특전으로 무장하며 날로 진화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단돈 1만원부터 시작하는 소액기부 프로그램으로 ‘젊은 동문’ 잡기에 나섰고, 한양대는 고액 기부자를 유치하기 위해 동문들의 취향 등을 조사하는 ‘감동 마케팅’에 나섰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정원감축부터 등록금 동결, 입학금 폐지, 기성회비 논란 등으로 인한 재정 압박 속에서 국립대와 사립대를 가지지 않고 대학들은 발전기금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 2년 전 사재를 털어 연세대에 10억원을 기부한 A회장은 요즘 국내 최고 사립대학이 제공하는 고액기부자 ‘VVIP 서비스’에 감동할 때가 많다. 특히 건강에 관심이 많은 나이인데, 국내 최고 대학병원인 OOOO병원에서 제공하는 건강관리 특전은 남들의 부러움을 사곤 한다. 몸이 불편해서 병원을 찾으면 동행 진료서비스가 제공되고, 건강검진도 무료로 4회까지 받을 수 있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10월이면 독감 백신 안내 문자를 보내올 만큼 세심한 배려도 흡족하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강의실이 있고, 명절이면 고급 선물세트가, 세밑이면 달력과 연하장이 날아온다. 어쩌다가 대학이나 부속기관을 찾으면 주차비를 포함한 모든 이용료가 무료 또는 반값 할인된다. 심지어 본인과 배우자 장례식장 이용료까지 50% 할인해준다. 무엇보다 대학발전기금은 ‘법정기부금’으로 분류돼, 100만원당 약 15만원 세액공제 혜택이 적용된다.

발전기금 모금은 ‘전략’이다 = 송자 전 연세대 총장,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등 이른바 ‘CEO형 총장’이 각각 1500억원, 4000억원의 기부금을 유치하면서 2000년대 대학가에는 돈 잘 버는 총장 바람이 불었다. 최근에는 대학들이 총장 개인을 넘어 ‘발전기금모금 전담부서’까지 운영하면서 모금 전략은 날로 치밀해지고 있다.

한양대는 지난해부터 ‘거액모금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양대 대외협력처 김승 팀장은 “기부할만한 동문을 물색해 프로파일링을 한다”며 “몇 차례 음악회, 특강에 모셔 친분을 쌓고 기부 아이템 역시 기부예정자의 취향, 선호도를 고려해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는 고액 기부자와 소액 기부자 별로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고액 기부자는 ‘이화아너스클럽’으로 우대한다. 소액기부자도 마다하지 않고 소액기부 프로그램 ‘선배라면’을 특화해 젊은 동문들을 기부에 적극 끌어들였다.

‘선배라면’은 졸업한 선배들이 1만원 이상 발전기금을 약정하면 그 금액이 직속 학과 후배에게 곧바로 쓰인다. 이화여대는 2010년 11월 프로그램을 개설한 이후 2014년 5월까지 총 4600여 명이 약정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대외협력팀  임희진 씨는 “직속학과에 바로 기부금이 돌아가고 금액도 부담이 없어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며 “마땅한 소액기부 프로그램이 없던 대학가에 ‘선배라면’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아 타 대학이 벤치마킹도 많이 한다”고 밝혔다.

기부자에 손 편지, 건강 챙기기 등…“감동 전해라” = 기부자 예우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대학들은 단순히 기부자 ‘이름 새기기’만 치중하던 것에서 벗어나 ‘감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양대는 기부자에 “최대한 감동을 주자”는 마음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노력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장학기금의 경우 기부자를 직접 초청해 전달식 세레모니를 진행하고, 학교와 학생 측도 감사편지를 ‘손편지’로 직접 써서 전달한다. 기부자에게 보내는 감사 선물도 일괄된 품목을 보내지 않는다. 음악애호가에겐 음악회 초청장을 보내는 등 기부자가 무엇을 좋아할지를 고민한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 경북대가 지난달 27일 제작한 '명예의 책'

연세대는 국내 정상급 대학병원을 보유한 특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연세대 대외협력처 엄태진 부장은 “10월 쯤 기부자들에게 독감 백신에 대해 안내한다. 기부자들이 고령층이 많은 만큼 건강을 챙기는 것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고 밝혔다.

기부자 이름을 새기는 전략은 대학 기부자 예우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이름을 새기는 방법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명예의 전당’을 설치한 경북대는 벽면을 이용한 동판이 아니라 ‘명예의 책’에 기부자를 기록한다. 경북대 발전기부금사무국 박영식 씨는 “벽면 동판은 기부자 늘어나면 업데이트가 어려워 책 모양으로 제작했다”며 “기부자 사진과 이름, 금액 등 기부자를 더 노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또 “기부자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최대의 예우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라 귀띔했다.

이화여대는 1억 이상 기부자에게 '이름 새기기'에 더해 '특별 인터뷰'를 제공한다.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고 함께 간단한 인터뷰를 '명예의 전당' 화면에 게시한다. 기부자에게는 사진을 담아 액자로 선물을 한다. 기부하러 명예의 전당을 찾았다가 1억 이상 기부자의 인터뷰를 보고 기부금 액수를 상향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대외협력팀 왕혜정 팀장의 귀띔이다. 

다만 대학 발전기금의 특징 중 하나는 기부금액에 따라 예우에 등급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인천대의 경우 금액별로 다른 네이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10억원 이상 출연자에게는 건물에 기부자 이름을 붙이고, 5억원 이상은 흉상을 제작해주며, 2억원 이상 기부자에게는 강의실에 이름을 붙여준다. 심지어 100만원 이상은 학내 작은 사이즈의 벤치, 200만원 이상은 큰 사이즈의 벤치에 이름을 새기는 등 사이즈까지 세분화돼 있다.

■ 투명한 집행도 신뢰 확보에 중요 = 발전기금의 투명한 집행도 성공적 모금의 관건이다. 그간 국내 대학에 꾸준히 지적돼 온 사항도 바로 운용의 투명성이다. 미국 대학 중 기부금 보유 1위로 알려진 하버드대는 기부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며, 기부금 운용 성과와 투자처 등도 홈페이지 등을 통해 투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유엔 책임투자원칙에 가입(Harvard to sign on to United Nations-Supported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한 사실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하기도 했다. 미국 대학이 유엔 책임투자원칙(PRI)에 가입한 것은 하버드대가 최초다. 화석연료 기업에 투자 중지를 요구한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한 결과다. 하버드대의 PRI 가입은 이 대학이 자금 운용에 있어 투명성, 개방성, 윤리성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국내 대학 관계자들도 점차 기금 운용의 투명한 공개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연세대 엄 부장은 “기부금 입금-집행이 시스템화 돼 있다”며 “언제 누구에게 지급됐는지 일목요연한 자료가 구비돼 있고, 기부자에게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대외협력팀 임희진 씨 역시 ‘선배라면’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투명성’을 꼽았다. 그는 “기부금은 바로 바로 기부자의 직속 학과 후배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되며 그 내역이 홈페이지에 자세히 공개된다. 기부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어 기부자들이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기부금 파이가 줄어든다…부익부 빈익빈도 문제 = 대학이 이렇게 발전기금에 목매는 것은 대학의재정이 등록금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사립대의 경우 지난 2012년 결산을 기준으로 수입의 평균 57.4%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사립대 재정에서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율도 2.1%에 불과해 미국 사립대 11.8%에 크게 미친다. 

상황이 이런데 ‘반값등록금’ 등으로 등록금 인하 또는 동결 압박을 받고 있고, 학령인구는 계속 감소 추세에 있다. 최근에는 야당을 중심으로 ‘대학 입학금 폐지’도 거론되고 있어 대학 재정은 더욱 위축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기부금 파이도 줄었다. 국내 대학 기부금은 지난 2003년 1조 1945억을 기록한 이후 해마다 줄어 2012년에는 3902억으로 9년만에 3분의 1 토막났다. 미국 대학 기부금이 2013년 338억 달러(36조원) 규모에 이른 것과 대비된다. 

대학의 한 관계자는 “1990년대만 해도 기업이 대학 건물을 지어주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다른 대학 눈치도 부담되고, 타 사회단체에 직접 기부하는 게 기업 이미지 제고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서 점점 다른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2000년대 이후 사회단체 기부금은 증가한 반면 대학 기부금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부금이 상위 10여 개 대학에 몰리는 것도 문제다. 올 초 대학교육연구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사립대학 기부금 수익 3902억원 중 51.3%가 상위 10개 대학에 집중됐다. 상위 30개 대학까지 확대하면 76.1%에 달한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3개 대학에 몰리는 경향도 뚜렷하다. 2012년 고려대가 받은 기부금은 441억, 연세대는 372억으로 152개 사립대학 기부금의 20.8%에 해당한다. 국립대인 서울대의 기부금 수익도 46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의 경우 서울대 628억, 고려대 530억으로 각각 전년대비 37%, 20% 늘었다. 전체 기부금이 줄어든 반면 이들 대학에 쏠림현상이 더 심화된 것이다. 

▲ 2012년 사립대 기부금 순위, 출처=대학교육연구소

수도권 국립대 대외협력팀의 한 관계자는  “대학 발전기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며 “국내 대학이 서울대, 연고대 중심으로 돌아가는 데 발전기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또 “우리 대학의 경우 ‘명예의 전당’ 자리가 남아돈다. 서울대만 그렇지 다른 국립대는 특성상 발전기금 모금에 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충청 소재 한 지방 사립대 관계자 역시 “서울 주요대가 아닌 이상 발전기금 모금에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주요 대학 중 한 곳의 관계자도 “대학병원이나 종교재단이 아닌 일반 사립대가 순수한 동문에게 발전기금을 모금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대학병원을 가진 대학이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2년 기부금 상위 30개 사립대 중 대학병원을 가진 곳이 20곳에 이른다. 

담당부서가 받는 압박도 상당하다. 한 대학 관계자는 "발전모금팀은 사람들이 잘 오려고 하지도 않고 와도 빨리 나가는 곳"이라며 "대학 부서 중 3D로 통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총장님도 예나 지금이나 죽을 지경"이라며 총장과 전담 부서의 큰 부담감을 토로했다.    

대학발전기금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인 시각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양대 김승 팀장은  “발전기금 대부분은 그 해 안에 다 쓰이고, 이자수익만 쓰라 지정한 특정 기부자 등의 원금만 남는 정도”라며 대학이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두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오해라고 항변했다. 이 관계자는 “대학은 10년 20년 뒤 미래를 결정하는 인재 양성의 요람”이라며 "대학투자가 곧 미래 투자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고침 >

*** 상기 기사에서 " 무엇보다 대학발전기금은 ‘법정기부금’으로 분류돼, 100만원당 약 17만원 세금공제 혜택이 적용된다"를 " 무엇보다 대학발전기금은 ‘법정기부금’으로 분류돼, 100만원당 약 15만원 세액공제 혜택이 적용된다"로 고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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