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만 줄이는 대학 구조조정 ‘관치주의 규제’ 역행 우려

*** 지난 1995년 김영삼정부의 ‘5·31 교육개혁’이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다. 최근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전가의 보도 삼아 교육계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한때는 국가의 자랑이었던 대학진학률 80%마저 최근에는 ‘비정상’으로 바뀌어 대학구조조정의 명분이 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학구조개혁법안을 마련하고 간접적인 대학 통제방식 대신 직접 ‘칼자루’를 쥐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본지는 3회에 걸쳐 거센 구조조정의 광풍 속에서 정부의 규제강화로 위협받고 있는 5·31 교육개혁을 재조명하고 진단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고등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20년을 이끌어갈 교육적 가치와 방향, 지금 그 설계를 시작할 때다. <편집자 주>

교육 사회 문화 부총리에 새로운 교육혁신 기대감도

▲ <사회자> 이원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한국대학신문 이연희·손현경 기자] 5.31 교육개혁의 성과, 진단에 이어 본지는 교육전문가와 원로들이 직접 만나 5.31의 의미와 정책을 평가하고 향후 20년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지난 10일 서울 가산동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의실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원근 대교협 사무총장의 사회로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당시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 김신복 가천학원 이사장(전 교육부 차관), 이종재 전 한국교육개발원장, 최충옥 경기대 교육대학원장(당시 교개위 상임전문위원)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원근(이하 ‘사회’) : 5·31 교육개혁 이후 고등교육 이슈 중 핵심적인 것은 무엇이었고 어떤 성과를 거뒀다고 보나.

▲ 이종재 전 한국교육개발원장, 사진=한명섭 기자
이종재(이하 ‘종’) : 5·31 교육개혁 이전에 교육부 정책이 ‘조령모개(朝令暮改)’라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정책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2~3년마다 또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5년 5·31 교육개혁은 19년째 역대 정권의 교육정책의 바탕으로 유지돼 왔다. 그만큼 우리사회에 준 영향력이나 의미가 매우 컸다는 뜻이다. 물론 개별 정책들만 두고 보면 현실에 맞지 않는 것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는 5·31 교육개혁을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격이라 할 수 있다.  5·31 교육개혁의 핵심은 바로 자율성과 책무성, 다양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5·31 교육개혁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50년을 맞을 때 만들어졌다. ‘관치행정’ 위주의 교육에서 자율성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이른바 ‘터닝 포인트’였다. 자율성에는 책무가 따른다. 관치 교육 아래에서는 책임을 묻지 않지만, 자율성을 가진 이상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시스템이다. 그렇다 보니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변모했다. 마지막은 다양성이다. 교육 분야는 다른 행정 분야와는 달리 개성 있는 인재들을 길러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만큼 교육 시스템 자체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명현(이하 ‘명’) : 당시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5·31 교육개혁을 주도했다. 그리고 김영삼정부 마지막 장관직을 맡으며 실질적으로 교육개혁의 마지막 설거지까지 마쳤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GNP 대비 교육예산 비율을 5%로 늘리는 것이었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예산 부처 등이 교육예산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개혁은 예산이 마련되지 않으면 단순 서류뭉치에 불과하다. 모든 정책이 그대로 휴지통으로 들어가게 된다. 당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자체 해산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하며 배수진을 쳤다. 비밀리에 김영삼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득한 끝에 가까스로 교육개혁을 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 최충옥 경기대 교육대학원장, 사진=한명섭 기자
최충옥(이하 ‘최’) : 당시 교육예산이 처음으로 국방부 예산을 상회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5.31 교육개혁’이라는 명칭은 언론에서 붙인 이름이다. 본래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인데,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잘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초중등교육은 공동체주의를 강조하고, 고등교육은 자율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전혀 낯설지 않은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앞으로 20년을 내다 볼 수 있는 교육개혁안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특히 당시 고등교육 분야는 상승기였다. 이젠 하강기에 접어든만큼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 개혁안이 나와야 할 때다.

사회 :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부실대학을 양산했다는 등 5·31 교육개혁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종 : 현재와 미래 교육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세 개의 축이 있다. 정부의 의한 평가, 시장에 의한 평가, 전문가들에 의한 평가가 그것이다. 이 때 어느 한 쪽으로만 몰리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맞출 때 제대로 된 평가와 책임이 가능하다. 5·31 교육개혁은 공급자 중심으로만 편하게 흘러갔던 교육을 수요자 중심으로 돌려놓았고, 대학정보공시제도 등이 만들어지면서 책무성을 강조하는 토대를 다졌다. 문제는 정부가 교육 자율성과 시장에 의한 통제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모든 기준을 만들어놓고 평가하고 모든 재정지원까지 정부 평가와 연계한다는 점이다. 즉 모양만 자율적 평가 체계라는 얘기다. 최근 고등교육 정책 내용을 살펴보면 1960-70년대 관료적 통제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어설픈 관치로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에 누가 무엇을 했는지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상태가 오지 않도록, 소위 관치에 의한 평가를 자제시켜야 하지 않나 싶다.

김신복(이하 ‘김’) : 이명박정부에서는 대학 규제가 특히 심화됐다. 주로 재정지원 사업을 미끼로 엮어 규제하고, 책임은 무조건 대학에 전가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등록금 상한제를 들 수 있다. 교육개혁으로 등록금 자율화가 보장됐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 대비 1.5%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고, 등록금을 많이 인하할수록 구조개혁과 재정지원에서 가산점을 주지 않았나. 국립대는 기성회비와 관련해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떠안은 격이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국립대 스스로 전부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을 물어 재정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과연 지금의 대학 구조개혁이 슬로건으로 내건 자율성에 기초를 둔 정책이 맞는가.

▲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사진=한명섭 기자
명: 최근 폐지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부실대학을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대학설립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높아 교육부가 설립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적 로비와 부패, 뇌물이 성행했다. 더구나 국회의원들까지 지역구에 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싸웠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이 같은 부정부패를 불식시키기 위해 만든 객관적인 장치다. 문제는 역대 교육 정부가 이를 무르게 적용했다는 점이다. 당시 ‘망하지 않는 기업’이 대학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었기 때문에 대학 설립 신청이 쇄도했고, 정부는 준칙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대학들이 시장성을 보고 고등교육사업에 뛰어들었으니 구조조정도 시장 원칙을 적용해 자연적으로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

김 : 준칙주의 이전에는 1989년부터 2년간 대학설립심사를 맡았는데, 당시 100개 학교가 설립 신청을 접수하면 4개교가 통과하는 수준이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가 있었고 신청 대학들에도 경고했지만 설립을 강행했다. 준칙주의 이후 사후관리가 부족했다. 처음 인가할 때에는 준칙주의를 적용해 일반적으로 입학정원 400명의 소규모 학교로 개교하지만 교육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채 입학정원이 급증했다. 지금 학생 수가 부족해 정원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자율적으로 설립할 수 있다면 미국처럼 강력한 평가인증 시스템이 뒷받침되는 것이 맞다. 지금의 구조조정을 위한 교육부 평가방식을 봐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자연적으로 줄어들 입학정원인데 가산점을 주고 재정을 지원해 연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사회 : 5·31 교육개혁 때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20년의 교육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면.

최: 5·31 교육개혁은 총론보다 각론에서 문제가 파생됐다고 본다. 획일화된 교육에서 다양화로 한 발 나아갔더니 다시 정부가 단일잣대로 대학을 평가해 획일화를 조장하는 것은 시대역행적이다. 대학 사회가 양적으로 팽창한 만큼 질적 수준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대학의 기능별 구분을 명확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국립대는 아무래도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기에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국공립대는 기초 과학과 인문학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원칙 아닌가.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역할이 분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 또 하나 정보화를 들 수 있다. 미래의 대학과 학교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산업 기술이 끊임없이 변화함에 따라, 대학에서 한번 전공과정을 밟았다고 평생을 그것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게 미래사회다. 직업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 틀도 근본적으로 바꿔가야 한다. 최근에는 모바일 장비에 모든 기능이 집약된 만큼 모바일 환경을 활용한 혁신적인 교육 콘텐츠와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종 : 5·31 교육개혁이 한국 교육의 발전과정에서 자율적인 운영원리와 열린 교육체제의 문을 연다는 의미를 지녔다면, 이제는 교육의 재구조화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다. 최근 대학 특성화사업(CK) 접수 결과 대학들이 총 4만 명이 넘는 입학정원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원을 줄이는 것만 갖고는 제대로 구조조정이 되겠는가. 중요한 것은 교육을 총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거버넌스의 혁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장애요인이 두 가지 있다. 한 가지는 표심에 기댄 정치논리가 교육을 뒤흔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율성을 앞에 내걸고 실제로는 관치주의로 나아가는 현 교육부 정책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단적으로 대학 구조조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성공한 구조조정의 결과는 정원 감축이 아니다. 대학별 명품 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내외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수요자인 학생과 사회에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인프라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 김신복 가천대 이사장, 사진=한명섭 기자
김 : 교육개혁을 이끄는 주체가 교육부에 국한돼서는 어렵다. 정부가 나서서 의지를 갖고 끌고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다시 부상한 교육사회문화 부총리가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 김대중정부 당시 교육부총리는 경제부총리 다음 서열로, 예산권한이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어느 정도 부처간 조정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부터 사라진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부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참석 패널 프로필 >

◇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 서울대 철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미국 브라운대 분석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철학과 교수이자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으로 5.31 교육개혁을 주도했으며, 1997년 제37대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심경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 김신복 가천대 이사장 : 서울대 교육학과, 동대학 행정대학원, 미국 피츠버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정책연구실장과 교육개혁심의회 실무위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서울대 부총장을 지냈다.

◇ 이종재 전 한국교육개발원장 : 서울대 교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교육학 박사과정을 거쳤다.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통일부 통일교육심의위원, OECD 교육위원회 부의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있다. 

◇ 최충옥 경기대 교육대학원장 :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땄다. 경기대 교수로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전문위원과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운영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공동대표와 경기도 다문화교육정책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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