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행복(본지 논설위원/한양대 교수)

세월호의 비극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일구는 배움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정교한 제도적 장치나 추상같은 처벌보다는 바른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근본적 대책일 수 있다. 참극을 교훈 삼을 줄 안다면, 국민적인 인문 교육의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대학은 인문학을 고사시키고 있다. 학령인구의 대폭 감소로 자의반 타의반의 정원 감축이 진행되고 있는데, 인문학 분야가 ‘구조조정’의 우선적 대상이 되고 있어서, 교수들이 대거 내쫒기는 사태조차 멀지 않아 보인다. 초임 교수의 평균 연령이 46세인데, 다시 거리로 내몰릴 판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인문학이 붕괴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다.  

한 나라의 백년을 준비하려면, 분야마다 적정한 규모의 연구 역량을 상시적으로 유지시키고, 유사시에는 그것을 교육 역량으로 전환하는 탄력적인 체제가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고등교육은 사적 영역에 전가되어 있으며, 연구와 교육 역량은 무차별적으로 ‘시장의 선택’에 노출되어 있다. 고등교육의 80%를 사립대학에 의존하면서 그 비용의 25%만을 정부가 부담하는데(OECD 평균 67%), 설상가상으로 사립대학들은 재정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거의 없다. 사립대 법인들 중 80%가 법정기준을 충족하는 수익용기본재산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대학 운영에 기여할 재원의 확보를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에 올라 생선을 구하는 격이다. 그래서 사립대학들은 등록금을 내주는 학생들이 모이지 않으면 학과는 고사하고 대학 자체가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고, 이른바 '비인기' 학과들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왜곡된 교육정책과 고등교육의 기형적 구조가 문제의 근원인 것인데, 교육이 ‘공공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사립대학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 지원을 키워야 한다.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무용’한 학문으로 치부되기 쉽고, 지금도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지만, 인문학이야말로 선진국 진입에 필수적인 학문이다. 자유와 평등의 원리로써 인류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시키고, 부도덕과 부패라는 장애물을 걷어내는 것이 인문학이다. 냉전기의 군비경쟁 속에서 미국은 과학기술에 집중 투자를 하였는데,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인문학 분야에도 충분한 투자가 이뤄져야만 국가적 우위가 확보될 것이라는 자각이 일었다. 그리하여 1965년에 미국의 국립인문학재단(NEH)이 설립되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 소련은 해체되고 없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성장하였다. 유럽의 선진국들 역시 정부가 나서서 인문학의 연구 역량을 육성하고 있다.

인문학 스스로도 현대가 요구하는 지적 성과의 창출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그 사활이 시장의 선택에 맡겨져서도 안 된다. 예산의 확대, 사립대학들의 공공성 제고와 정상적인 운영 등등 고등교육이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은데, 여건의 전반적 개선이 달성될 때까지 대학 인문학의 회생 조치를 함께 미룬다면, 사후 약방문이 되고 말 것이다. 인문진흥을 위한 제도의 수립과 대학 인문학을 되살릴 당장의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바퀴 자국 속의 붕어가 말했다. “한 되의 물만 주시면 제가 살 수 있습니다.” 장주가 대답했다. “왕들을 설득해 큰 강물을 끌어오겠습니다.” 붕어가 화를 냈다. “그러실 바에야 일찌감치 생선 가게에서 나를 찾는 게 나을 것입니다.”(『莊子』)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