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실적’ 제외하면 외부스펙도 가능?…대학마다 달라

일부 대학 “0점 처리? 보조서류라 점수배점 원래 없어”
대학-고교 상호신뢰 구축생략한 '졸속·극약처방' 지적

[한국대학신문 정윤희 기자] 대입에서 자기소개서에 외부스펙을 기재하면 ‘0’점 처리한다는 교육부의 방침을 두고 학생을 선발해야하는 대학 조차 해석이 엇갈리면서 입시판이 혼돈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교육부는 '2015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전형'에 활용될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 작성시 외부 스펙을 기재하면 ‘0’점 처리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일부 대학은 올해도 사실상의 ‘외부스펙’이 갖은 꼼수를 활용해 자소서와 교사추천서에 담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0’점 처리 기준과 실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꼼수 기재’는 여전할 것 = 대학입학처 관계자들은 교육부가 사교육 감소와 고교 정상화를 위해 도입한 ‘외부스펙’ 기재금지 방침이 올해 역시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소재 A사립대 입학처장은 “‘작성시 ’0‘점 처리되는 항목’에서 명시돼 있는 ‘수상실적’을 제외하면 외부스펙과 관련한 내용은 얼마든지 자소서에 담을 수 있다”며 제도상의 허점을 지적했다.

대학전형을 간소화하고 사교육을 줄여보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오히려 외부스펙이 없는 학생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입학처장은 “자소서와 교사추천서 내용에 외부 스펙을 기록하지 않으면 붙을 수가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지역에 위치한 B고교 진학담당 교사도 “기재금지 대회명칭을 명시한 것은 거꾸로 해석하면 명시된 것 빼고 다 된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올해 입시지도의 대혼란을 우려했다. 이 교사는 “(억지같지만)대회명에 특정 교과명이 들어가 있지 않은 대회에서의 수상실적은 다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며 구체적 수상실적 기재만 안한다면 대회에 참가했다거나 그 준비과정 등은 자소서에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 교육부와 대교협은 △영어ㆍ프랑스어ㆍ중국어ㆍ일본어ㆍ스페인어ㆍ한자 등과 관련된 공인어학성적과 △수학ㆍ과학ㆍ외국어 교과명이 명시된 학교 외 각종 대회(경시대회, 올리피아드 등) 수상실적을 자소서와 교사추천서 기재시 ‘0점’ 또는 불합격 처리한다고 명시했다.

‘0’점 처리의 기준과 대상 '불분명' =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0점’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C사립대 입학처장은 “교육부가 자소서에 외부스펙을 쓰면 ‘0’점 처리하라고 했지만 평가 보조서류인 ‘자소서’에 대한 점수가 따로 책정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을 0점 처리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불합격 시키라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어떤 서류를 어떻게 점수를 매겨야 할지는 교육부도 학교 자체 내에서도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교육부에 정확한 기준을 요구하지 않는 대학도 문제란 지적이다. 학생들의 당락 결정을 해야 하는 대학이 앞장서서 혼란 해결에 나서야 함에도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의 D고교 진학담당 교사는 “지금의 대학은 결코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관련 자유롭지 않다”면서 “정부와의 마찰은 당연히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정이 그런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학생을 받고 받지 않는 것은 대학의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책 시행에 앞서 대학-고교간 신뢰구축과정이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배영찬 한양대 입학처장은 스펙기재 ‘0’점 처리보다 우선적으로 대학과 고교간 신뢰가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 처장은 “교사는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학생부 기재시 솔직하게 작성토록 하고, 각 고교 특성에 맞는 교내 활동 프로그램을 연구ㆍ개발함으로써 학생들이 1학년 때부터 교내 활동에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외부스펙 기재금지 정책이 사교육 감소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실적에 대한 꼼수기재가 통용되는 한 사교육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사교육을 잡기위한 정부의 극약처방식 정책은 결국 부작용만 낳는다는 비판도 높다. 김동춘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사무총장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정부의 사교육 잡기 정책 남발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입시전형 간소화를 강조한다지만 예전에 낱개로 있던 것을 지금은 크게 몇 묶음으로 나눠놨을 뿐”이라며 “입시정책에 대해 정치적 논의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등교육의 본질을 놓고 고등교육 입시정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교과활동 경쟁, 일반고도 할 수 있다 = 일반고가 특목고나 자사고에 비해 비교과활동에서 불리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목고나 자사고에서는 입시를 위한 비교과활동 자료에 기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안해 운영한다. 일반고는 그런 특목고나 자사고의 프로그램을 질이나 양의 측면에서 거의 따라갈 수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일반고가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비교과활동이 교내 활동으로 제한돼도 일반고가 특별히 불리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입학관리본부장은 “교내 활동 프로그램의 연구ㆍ개발을 자사고나 특목고가 잘한다는 전제부터가 잘못”이라며 “일반고도 다양한 교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생들이 1학년 때부터 적극 참여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의 변화로 인해 어느 한쪽이 유ㆍ불리 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을 확정ㆍ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116단위(1단위는 주당 1시간)인 일반고의 교육과정 필수 이수단위를 86단위로 축소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실제로 일선 고교 현장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정착되고 있다. 김동춘 진학지도협 사무총장은 "교과과정 필수 이수단위를 채우느라 급급했던 일반고도 이제는 자율형 고교와 비슷한 수준으로 필수 이수단위 외 나머지 시간을 봉사ㆍ동아리 활동 등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 학교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비교과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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