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설 영남대 부임 3년만에 전국대회서 우승 “자신만의 철학유지가 중요”

[한국대학신문 이재익 기자]  1992년 1월 27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종 예선 한일전. 패배하면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경기였다. 종료 직전까지 0대0의 팽팽함이 이어지던 순간, 극적인 발리슛으로 결승골을 넣고 포효하던 선수가 있었다. 한국축구사에 전무후무한 축구천재로 회자되는 김병수다. 계속된 부상으로 일찍 선수 생활을 마치면서 비운의 천재가 됐던 그가 영남대 축구부 감독으로 대학 무대의 정상에 섰다. 고려대 재학 시절, 코치였던 김병수 감독에게 지도받은 김태륭 KBS 축구해설위원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의 능력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때 영남대 축구부는 만년 꼴찌였다. 해체설도 끊이지 않았다. 선수 선발에도 실패해 13명의 선수로 이름만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김병수 감독이 부임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부임 3년차인 2010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33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2 추계연맹전 우승에 이어 지난해 U리그에서도 우승하며 대학축구의 정점에 도달했다. 올해 U리그에서는 9전 전승을 달리고 있고 아마추어팀과 프로팀이 모두 함께 출전하는 FA컵 역사상 세 번째로 8강에 진출한 대학팀이 됐다. 대학축구를 넘어 국내 축구의 정점에 도전하는 김병수 감독을 만났다. 

- 대학 최강팀을 만든 비결이 있다면.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팀의 철학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공격적인 것을 원하고 경기를 주도하기를 원하는 것이 팀의 철학이고 스타일이다. 우리의 게임을 하기를 원할 뿐이다.”

- 영남대의 장점은. 반대로 보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 팀은 개인의 팀이 아니다. 팀 전체가 함께 경기에 집중하는 것이 강점이다. 방금 말한 스타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한 명이 집중하지 못하면 열 명이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 부상자가 많다보니까 그것이 아쉽다. 하지만 어느 팀이든 부상자는 있으니 불평할 부분은 아니다.”

-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선수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된 철학을 가질 수 있느냐다. 내가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할 수 있는지 알고 실행하는 것이다. 선수관리는 심리를 비롯해 여러 부분에 신경을 쓴다. 좋은 결과가 나와야 심리적인 것도 강해진다. 처음 부임했을 때는 분위기가 달랐다. 경기를 뛰어도 결국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 번 이기고 두 번 이기고 자꾸 이기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더라.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서로 돕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 축구에 있어 감독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나.

“All or Nothing. 역설적일지 몰라도 아무리 좋은 선수가 있어도 엮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또 아무리 잘 가르쳐도 좋은 선수가 없다면 안 된다. 조직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리더고 감독은 팀의 리더다. 영화감독과 비슷하다. 배우도 필요하지만 배우만 가지고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

- 대학팀과 프로팀 운영의 차이가 있다면.

“대학팀은 아마추어다. 프로랑 아마추어의 차이는 분명하다. 아마추어는 잔 실수가 많고 프로는 거의 없다. 전술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프로다. 대학팀도 반복적 훈련으로 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어차피 축구란 것은 실수가 없을 수 없다.”

- 대학을 거치지 않고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있다.

“선수는 일단 경기에 나가야 한다. 프로에 가도 상관없지만 경기를 뛰지 못한다. 2군 리그도 없다. 동기부여의 문제다. 연습경기와 훈련만 소화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자기도 모르게 망가진다. U리그에서는 선수들이 경기를 뛸 수 있다. 프로 경기에 바로 투입될 실력이 아니면 경기력을 향상시킬 중간 지점이 필요하다. 그게 대학이다.”

- 영남대 축구가 자신이 생각하는 축구에 어느 정도 다가갔는지.

“부임한 이래로 많이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축구는 어차피 선수가 하는 것이다. 대학 특성상 선수가 항상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젠 신입생들이 내가 직접 나서기 전에 선배들에게 배운다. 팀이 어떻게 플레이한다는 것이 나오니 알아서 깨우치는 것이다. 이런 것이 팀의 전통이 되는 것이 아닐까.”

- 개인적인 질문인데 '비운의 축구천재', 너무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기분이 어떤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축구다. 선수로서의 축구는 마쳤다. 이젠 축구지도자로서의 길이 중요하다. 지나간 길은 아무 의미도 없다.”

- 선수 은퇴 후 지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조금 얼떨결에 일본에서 은퇴를 했다. 1998년 귀국해서 자연스럽게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모교인 고려대 코치를 거쳐 2003년부터 2008년 영남대에 감독으로 오기 전까지 포항에서 코치, 기술부장 등을 했다. 내가 축구를 좀 좋아했나보다.”

- 영남대에서 대성한 이명주 선수가 아랍에미리트 구단인 알 아인으로 이적했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좋다고 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국내에 남아있었다면 분위기를 바꾸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좀 기다렸다가 유럽을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본인도 그곳을 경유해 유럽에 가려는 생각을 하고 이젠 성인이니 잘 판단했으리라 생각한다.”

- 이번 월드컵 어떻게 봤나.

“집에서 편하게 봤다.(웃음) 세계 축구가 빨라졌더라. 특히 공수전환이 빨라졌다. 스페인이 예선에서 탈락했다고 몰락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팀 전체가 패스로 빠르게 나가는 시대가 올 것이다. 패스 축구를 무시한다는 것은 축구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이번 스페인의 탈락은 더 큰 그림이 그려지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더 빨라질 수 있다.”

- 대학축구가 가야하는 방향을 말한다면.

“인프라 구축이 잘되어야 한다.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대학축구에서도 리그 승강제가 필요하다. 이기면 혜택이 있고 못하면 강등처럼 불이익이 있어야 리그가 활성화된다. 시도하려면 걸리는 것이 많지만 언젠가는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대학에서 프로에 가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대학축구가 죽으면 한국축구가 죽는다.”


*** FA컵이란

FA컵(Football Association Cup)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축구협회에 등록된 모든 팀들이 참가해 토너먼트 방식으로 국내 최강팀을 가리는 축구경기다. 한국에서는 1946년부터 실업, 대학 등 모든 성인 축구팀들이 참가하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19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면서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아마추어팀만 참가하게 돼 의미가 퇴색됐다. 이에 프로와 아마추어팀을 통틀어 한국 축구의 최강팀을 가리는 FA컵을 창설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1996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주최로 FA컵 축구대회가 시작됐다. FA컵 16강을 경험한 대학은 △경북대 △경희대 △고려대 △동의대 △아주대 △연세대 △중앙대 등이다. 8강은 올해 영남대가 진출하기 전까지 1998년 동국대와 2006년 호남대, 단 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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