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리클레스의 시대

페리클레스(495~429 BC)는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로 꼽힌다. '플루타크 영웅전'에서는 그를 “전장에서는 용맹을 떨친 장군이었고, 회의실에서는 온화한 토론자였다. 정적과 동지들의 비난에도 잘 참았고 조국을 위해 온힘을 다했던 뛰어난 대지도자였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페리클레스에 대한 이런 평가는 그가 “가치지향의 정치”, “개혁의 정치” “통합의 정치”의 지도자였음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을 전제로 여기서는 두 차례에 걸쳐서 그를 다루기로 한다.

페리클레스는 BC 495년에 아테네 북쪽 콜라르고스 데모스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부터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룩할 최고의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다. 그는 32년 동안 아테네를 이끌었는데 이 시기를 ”페리클레스의 시대, Age of Pericles“라고 불렀다. 그는 아테네를 외국의 침략에서 굳건히 지킨 불패의 장군이었고, 민중의 편에서 민주주의를 확립했던 지도자였다. 그가 아테네의 교육과 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기 때문에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는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 등 석조건축물을 축조하는 등 아테네의 영광을 기렸으며 아름다운 도시미관도 조성했다.

2. 정치가로서의 준비 기간

페리클레스는 (1)어릴 때부터 고전 학습으로 높은 지적 능력을 함양했으며 (2)정치활동에 필요한 “경제적인 조건”을 구비했고 (3)시대를 올바로 읽고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에도 특출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소년시절에 독파했던 수많은 고전에서 자신의 논리를 마련할 토대를 구축했다. 소크라테스(Socrates)와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엘레아 학파인 제논의 주장, 즉 “세상에는 단 한 분의 위대한 신이 존재하는데 그분의 생각에 따라 만물이 움직인다. 그 위대한 신의 가르침이 곧 이성(理性)이다”라는 주장에 감동하여 “이성의 정치”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게 되었다.

두 번째 요건인 경제적인 여건도 페리클레스에게는 부족함이 없었다. 페리클레스의 아버지 크산티포스(Xanthippus)는 뮈칼레 (Mycale)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이었다. 그의 어머니 아가리스테스는 시퀴온 참주인 클레이스테네스의 증손녀이자, 또 다른 클레이스테네스의 조카딸이었다. 친가와 외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그의 정치활동의 기반으로 활용되었다.

3. 검소함과 절제의 일상 

그러나 페리클레스의 일상생활은 매우 검소했다. 호화로운 마차를 사용하지 않았고 주로 걸어 다녔다. 다른 사람의 저녁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술도 삼가 했고, 친구들과의 격의 없는 어울림마저도 지도자의 위엄을 잃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가정만이 몸과 마음의 본향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민중과 친밀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민중은 곧잘 실증내기 때문에 가끔은 민중 앞에 서서 연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페리클레스의 생존기는 아테네가 그리스에서 패권을 확립하고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른 초기였으며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가던 시기였고 아테네의 제국주의적인 팽창기였다. 이런 시기일수록 과감한 변혁으로 민중을 결속시킬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절실했다. 단합된 민중의 힘으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침탈을 막아야 했고 아테네 주도의 “그리스 평화체제”, 다시 말하면 아테네 제국주의를 확립해야 할 시기였다.

4. 아테네 제일의 시민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정치는 민중 주도의 민주주의라야 한다고 확신했다. 비록 민중독재의 위험이 있기는 해도 포퓰리즘도 적절히 활용하면 아테네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는 투키디데스(Thucydides)도 그를 "아테네 제1의 시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합쳐야 페르시아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 도시국가의 동맹체인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을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에 맞서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까지는 페리클레스의 아테네가 그리스를 주도했다.

이처럼 페리클레스는 정치 지도자의 자질과 조건을 구비했고 아테네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기에 “위대한 지도자”라는 호칭도 얻을 수 있었다. 지도자로서의 그의 처신은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고 사려 깊었기 때문에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는 “그는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다수의 편에 서서 활동했다. 그는 부자들과 대립함으로써 귀족 출신인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고 전제적 통치권을 노린다는 반대파의 의심도 물리칠 수 있었으며, 귀족의 지지를 받았던 키몬과도 맞설 수 있는 강한 세력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적어 놓았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할 경우에는 수단과 방안을 적절하게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만큼 그는 목적과 상황의 효과적인 연계야말로 정치인의 기본적인 선택임을 잘 알고 있었다.

*** 진덕규 교수는 ...
이화여대 명예교수. 역사정치학자. 현재는 (재)한국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정치의 역사적 기원>, <한국현대정치사서설>, <한국정치와 환상의 늪>, <권력과 지식인>, <민주주의의 황혼> 등이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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