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예산 낭비 백태

대학은 재정악화, 총장은 선심성 공약 남발 ‘돈 뿌리기’
회계 감시 피하려 연구비, 수당 이용해 교수 챙기기도

[한국대학신문 송보배·이재 기자] 국·공·사립대를 막론하고 대학들이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다. 등록금 동결, 열악한 발전기금, 최근의 기성회비 반환 소송까지 대학의 재정을 옥죄고 있다. 서울의 한 전문대 기획실장은 “교수들의 국내 출장비도 지원이 끊기고, 얼마 전에는 교수 연구실의 신문도 끊었다”며 백척간두의 상황을 호소했다. 하지만 대학들이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중에도 일부에선 대학 예산의 누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다.

최근 서울대가 모든 교수에게 1인당 500만원씩 지급하기로 해 논란이 됐다. 서울대가 올해 대학운영 방침으로 정한 ‘긴축 예산 편성’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결정은 오연천 전 총장의 퇴임일인 7월 20일을 일주일 앞두고 내려졌다. 이 대학은 이미 지난해 12월에도 같은 명목으로 모든 교수에게 500만원씩 지급한 바 있어 두 차례에 걸쳐 지급된 금액만 약 200억원에 달한다. 이번 지급은 오 전 총장이 지난 2010년 총장선거에 나서며 내세웠던 ‘교수 실질연봉 3000만원 인상’ 공약의 임기 중 이행이 힘들어지자 이를 보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서울대가 교수들에게 이 같은 금액을 지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10년 이장무 전 총장도 퇴임 전 조교수 이상 교원들에게 총 40억 6400만원을 지급한 바 있다. 일반 직원들에게도 8억 원을 지급했다.

모 대학 총장도 공약집을 통해 △교수 임금 평균 2000만원 인상 △그중 1000만원은 2015년까지 인상 실현 △대학 자녀 학자금 2배 인상 △교원 연구년 마일리지 제도 즉시 실시 등을 약속했다. 대학 위기론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선심성 공약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학 총장들이 이런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교수회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총장들의 이런 공약이 ‘교비’로 충당된다는 점이다. 총장들이 ‘돈 뿌리기’로 교수의 지지를 얻을수록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은 줄어든다. 특히 사립대의 경우 총장이 교수 연봉 등을 단독 재량으로 조치할 수 없음에도 이런 선심성 공약은 끊이지 않는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교수 연봉, 퇴직금 등을 올려줄 수 없으니 연구비로 돌리거나 없던 수당을 만드는 등 편법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교육부는 교내연구비를 집행하면서 학위논문이나 외부논문집에 게재된 논문을 교내연구과제로 선정해 연구비 4800만원을 지급한 것을 적발하기도 했다. 지적된 31건 중 15건은 이미 외부기관에서 연구비를 집행했던 것이 밝혀져 대학의 연구성과관리에 허점이 드러났다.

대학가 한 노조관계자는 “일부 대학은 ‘교수 수당 챙기기’가 극심하다. 한 연구소를 몇 개 부서로 나눠 없던 보직을 양산하기도 한다”며 “대학 규모가 몇 배 큰 대학과 보직교수 수가 똑같은 대학도 있다. 회의비 등 명목으로 수당 쪼개기도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런 ‘나눠먹기’에 더해 교비를 자기 ‘주머니’처럼 여기는 것도 큰 문제다. 충남의 A사립대는 교원연수 일정에 포함됐던 골프장 이용경비 952만원을 교육훈련비 명목으로 집행했다가 교육부 감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골프를 쳤던 한 교수는 골프장 이용대금으로 다른 교수들에게 1000만원을 현금으로 받아 챙긴 뒤 이를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서울권 모 대학의 전 총장의 경우 무려 40억 원에 이르는 교비를 소송비로 지급해 지난 7월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당시 소송을 진행했던 대학노조 관계자는 “총장들이 교비를 자기 쌈짓돈으로 생각하는 행태가 지금껏 관행처럼 통용됐는데 이에 경종을 울리자는 것”이라며 소송의 취지를 설명했다.

투명하지 않은 예산 집행도 대학 재정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서울 소재 B대학은 용역계약 등 17건을 입찰에 부치지 않고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약 22억원 규모다. 또 26억원에 달하는 50건의 입찰계약을 홈페이지에 미공고한 채 진행했다. 입찰계약을 해야 함에도 일방적으로 수의계약을 체결한 경우다. 이런 행태 때문에 대학가에선 대학 재정의 투명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대학가 한 서점 관계자는 “구내서점에 입찰하려고 들어갔더니 벌써 관계자들끼리 권리금을 주고받은 다음이었다. 벌써 내정돼 있었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예산 누수의 배경으로 대학의 이른바 ‘종가집경영’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영학에서 ‘종가집경영’은 수직적인 의사결정구조와 전문성이 결여된 비대한 조직 등으로 해석한다.

백기복 국민대 교수(경영학과)는 종가집경영이 갖는 의사결정구조의 경직성을 지적했다. 백 교수는 “대학본부가 인사행정권과 예산편성권을 틀어쥐고 권한을 각 책임단위, 이를테면 단과대학에 분배하지 않는 폐쇄적인 경영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경영학 교수는 “대학은 경영조직으로서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중간관리자들이 관료화돼 책임의식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평했다. 대학 조직의 경직성과 구성원 간 책임의식의 결여를 지적한 것이다.

대학의 위기에 단순히 긴축재정 뿐 아니라 ‘대학 체질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최근 교육부의 대학 특성화사업(CK)이 대표적인 ‘체질 개선’ 사례다. 교육부는 백화점식 종합대학을 탈피해 지역과 연계된 특성화학과를 중심으로 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장려하고 있다. 이 사업에서 그간 대학평가의 주를 이뤘던 재학생 충원률 등 기본여건 점수를 최소화하고 특성화 사업단의 비전과 특성화 계획 등의 배점을 높였다. 특성화 사업 선정을 위해 대학단위 컨설팅을 했던 한국생산성본부 정순철 센터장은 “특성화 발전전략과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한 교육과정 개편, 교수·직원의 동기유발을 위한 성과관리 시스템 등을 중점적으로 컨설팅했다”고 밝혔다. 비용을 줄이는 경비절감을 넘어 조직의 내실을 바꾸는 구조조정에도 대학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경영효율성 제고 방안을 도입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웃소싱(외주화)이다. 기업에서 하던 업무를 경영 효과와 효율 극대화 등을 이유로 전문기관에 위탁하는 아웃소싱은 이미 대학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청소와 경비, 주차 등 업종은 대표적인 아웃소싱 분야다. 사서자격증처럼 전문적인 자격이 필요한 도서관 업무도 이미 인력파견업체가 다수 진출해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대학 출판부와 평생교육원도 아웃소싱이 가능한 영역으로 꼽힌다. 재원확대를 간절히 바라는 일부 대학은 펀드매니저를 초빙해 발전기금 모금에 나서기도 한다.

경영학적 차원에서 아웃소싱은 역량이 떨어지는 분야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웃소싱이 진행되면 필연적으로 본부조직의 인력이 감소해 조직이 ‘슬림’해지는 효과도 있다. 조직이 슬림하면 외부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경영학계의 통설이다.

김용민 국민대 교수(경영학)는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인상 억제에 따른 재원감소로 대학이 위기다. 대학이 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사실상 인건비가 전부다. 아웃소싱은 전문역량을 제고하고 조직을 유연하게 할 수 있어 손쉽게 택할 수 있는 경영기법이고, 대학에서도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웃소싱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대체로 거세다. 특히 아웃소싱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높다. 무엇보다 대학가의 대표적인 아웃소싱 사례가 청소·경비·주차노동자이다보니 이들이 과노동과 저임금, 인권침해 등에 시달리고 있어 아웃소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웠다. 사실 이들 아웃소싱은 전문역량 제고와는 별 관련이 없다. 

대학의 ‘효율성’을 논하기에는 대학 재정의 열악함이 심각하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과)는 “대학 재정의 효율성을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반 교수는 “그런 걸 논하기엔 대학 재정이 너무 없다. 대학에 돈이 있어야 효율성을 논하는 것이지 지금 대학들은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교육에 투자해야 하는데 투자할 돈이 없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아웃소싱을 주장하는 건 10년, 15년 전 사상에 경도된 얘기”라며 “지금은 아웃소싱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형성돼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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