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대담]홍덕률 대구대 총장 “해직교수에서 재선총장까지…대구대는 삶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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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특별한 애정·고마움… “대구대를 위해 무엇이든 할 각오”

지난시간 힘들었지만 구성원들 “있어만 달라” 호소에 생각바꿔
“사회복지·재활과학·특수교육만큼은 세계 수준으로 육성할 것”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홍덕률 대구대 총장은 대구대를 위해 무엇이든 바칠 준비가 돼 있다. 홍 총장만큼 학교와 구성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기도 힘들지 않을까. 그는 20여년 전 종전재단 비리에 맞서다 해직교수가 됐고, 동료교수들의 십시일반으로 눈물겨운 세월을 견뎌내고 복직됐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헌신하다보니 예상도 못한 총장에까지 당선됐다. 4년을 노력해 성과를 일궜고 1차투표 과반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여기서 다시 9개월의 시련. 그러나 위기 속에서 똘똘뭉친 구성원들의 흔들림 없는 지지로 마침내 지난달 22일 재선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9개월여 총장 공백기 동안 곳곳이 녹이 슬고 금이 간 대구대를 재건하고 제2의 르네상스를 이끌겠다는 홍 총장의 목소리는 힘차고 당당했다.

- 방학 중인데도 교직원들이 다 나와 있고, 학교 분위기가 활기차다. 당선 9개월여 만에 임명됐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다. 너무 오랜기간 총장이 공백이어서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어깨가 매우 무겁다.”

- 이사회의 총장 인준 연기가 장기화되면서 어떤 마음이었나.
“다 그만두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심신이 너무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다만 우리 구성원들을 생각하면 혼자서 그렇게 떠날 수는 없었다. 구성원들이 힘들더라고 그 자리에만 있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 분들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새로 받은 임기 4년은 이전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위기 속에서 구성원들이 하나로 뭉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교수회와 교직원 노조, 총학생회, 학부모회 등이 눈에 밟혔다. 사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런 학내 기관들은 총장이 이끄는 대학본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이들이 하나로 뭉쳐 총장인 나를 지지해 준 것이다. 심지어 동문들까지도 적극적으로 총장을 인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의견을 개진해 주는 상황이었다. 구성원들은 상경시위도 벌이고 세종시청사 앞으로도 달려가 교육부마저 압박했다.”

- 일부 교수가 일간지에 비난광고를 싣기도 했는데.
“그분들이 수적으로는 너무나 적은데도 일간지에 광고도 하고 해서 학교 밖에서 봤을 때는 교내 구성원들 간에 마치 내분이 있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구성원들은 다 안다. 과반이 지지해서 선택한 총장의 자리가 일부 교수들의 흔들기로 인해 위태로워져서는 안 된다는 구성원들의 염원이 매우 강했다. 그런 구성원들의 염원과 바람을 곁에서 늘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힘들지만 그들을 도저히 저버릴 수는 없었다. 만약 내가 모든 걸 놔버린다면 구성원들이 받을 상실감과 상처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 그들까지도 포함해 모두를 하나로 융합하고 화합을 이뤄낼 방법은.
“힘들어도 답은 하나다다. 대화와 토론, 설득이 최선이다. 같이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것밖에 길이 없다. 당장 답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진솔하게 먼저 다가설 것이다. 주변에서 어떻게 볼지 모르나, 개인적인 욕심은 없다. 나 혼자 영화를 누리자고 이 험한 일을 감내한 것이 아니다. 설립자만큼이나 대구대를 아낀다. 내가 먼저 진솔하게 나서서 ‘힘을 합쳐 대구대를 살리자’고 설득한다면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 힘든시기에 법인 산하 6개 특수학교 학부모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데.
“처음 총장에 임명될 당시엔 이들 학교와 대구대의 교류가 거의 끊어져 있었다. 재활복지를 특성화한 대구대로서는 사실 이들 학교가 엄청난 자산이다. 특수학교와 다시 긴밀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학기 신임교수를 초빙하면 1박2일 연수를 하는데, 대명동에 있는 특수학교를 직접 한 바퀴 돌게 했다. 못 듣고 말 못하는 학생들이 감동적으로 교육받는 현장을 둘러보도록 하면서 대구대의 건학정신을 보여주고 사명감을 갖도록 한 조치였다. 당시 특수학교 교장선생님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그런 모습을 상당히 좋게 봐주셨다. 마침 대구대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총장을 임명하라고 같이 목소리를 내줬다. 참 사람 사는 인연이란 것이 그런 것인가 보다.”

- 총장 공석중이었던 올해 정부재정지원사업 특히 특성화사업 등에서 참담한 결과를 얻었다.
“지난해 총장 임기를 마칠 때만 해도 2012년 280억원과 2013년 상반기에만 170억원 규모의 국고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 구성원들은 자부심과 사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불과 9개월여 사이에 이 모든 것이 참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시해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임기 때 구성원들은 일종의 ‘성공체험’을 공유했다. 사실 4년 전 취임 당시에도 어려웠다. 열악한 상황에서 당시 구성원들과 땀 흘려 성과를 일군 성공 체험은 값을 따질 수 없는 자산이다. 다시 힘을 합쳐 뛴다면 곧 수습될 것으로 생각한다.”

- 대구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처음부터 사회의 약자를 보듬는 대구대 건학정신이 좋아서 왔다. 와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1993년도에는 해직을 당했다. 구재단 시절이었는데 교수협의회 총무간사를 맡고 있었다. 당시 이태영 전 총장이 쓰러지고 그 부인이 학교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를 강력히 제기했다. 때마침 8월 31일자로 재임용시기가 도래했고 재단측으로부터 재임용을 거부당했다. 본보기였다. 별수 없이 1년을 해직 교수로 보냈는데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200여명의 동료 교수들이 떠나지 말라며 매달 1만원씩 걷어줬고 그걸로 생활비를 삼았다. 결국 그 분들과 다시 대학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1년뒤 복직됐고, 학교로 돌아오면서 한 다짐이 ‘평생 절대로 대구대를 떠나지 않고 대구대를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었다.”

- 그 경험이 9개월을 버틸 수 있는 바탕이 되었겠다.
“그렇다. 해직 사건 이후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대구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다 5년 전에 전혀 생각지도 않게 총장 출마 제안을 받았고 당선까지 이어졌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총장으로서도 4년간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자부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구성원들이 재선까지 당선시켜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32살에 대구대에 와서 26년 동안 몸담고 있는 대구대는 내 삶에서 뗄레야 뗄 수가 없다. 대구대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도 감내하겠다는 마음이다.”

- 최근 인사가 있었다. 어떤 기준이었나.
“직원인사가 있었고 앞으로 보직인사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기준은 ‘함께 뛰자’다. 대구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시대변화를 감안한 인사다. 이젠 늘 해오던 대로 해서는 대학의 발전이 없다.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의 문화 방식을 실험·개척해 나가는 인사도 항상 생각한다. 이 둘을 적절하고 균형적으로 섞으려고 한다.”

- 대구대 특성화와 경쟁력 제고방안은.
“다른 대학이 흉내 내기 힘든 훌륭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사회복지, 이 분야에서 만큼은 이론적으로도 세계적 수준으로 가야한다고 교수님들께 거듭 강조하고 있다. 누가뭐라해도 사회복지·재활과학·특수교육은 전통적인 대구대의 특성화분야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이 더 이상 대구대만의 특성화가 아닌 것처럼 된 것이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구대가 개척했고 정부의 정책이 뒷받침되면서 저변이 확대된 것이다. 보람을 느낀다. 분명한 사실은 대구대는 여전히 다른 대학이 따라하지 못하는 강력한 인적·물적 인프라가 있다. 우선 대학 법인이 산하에 6개 특수학교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고등교육 프로그램 K-pace센터도 운영한다. 대구 대명동에는 장애학생들이 운영하는 학교기업도 있다. 대구대의 사회복지·재활과학·특수교육 분야는 경쟁의 필드를 세계로 넓혀나갈 것이다.”

 

■홍덕률 총장은…
1980년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수협의회 부의장, 홍보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대외적으로는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지역혁신교육원 부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전국 전문대학 평가위원, 한국지역사회학회 회장, 대구시 반부패청렴대책협의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대구경북장애인고용대책위원회 위원장과 경상북도 평생교육진흥원 원장, 녹색경북21 회장, (재)경북행복재단 이사장, 경상북도 지역치안협의회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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