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중첩…정원감축·재정난에 대학의 효용 의심하는 시선까지

돈 없어 신문까지 끊었다는 대학들…정부지원 지원 절실하지만 현실은
스스로의 노력 없인 재정지원도 ‘도루묵’…개혁과 혁신 선행돼야

『만약 2030년에 현재 400여개에 달하는 대학이 200여개로 줄어든다면? 소위 일컫는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류대학이 사라진다면?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대학교직원이 몇 달치 월급을 못 받는 일이 발생한다면? 아무리 현재 처한 대학의 상황이 최악의 위기라 해도 이렇게까지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불과 15년 이내에 밀려 올 외부 환경변화의 거대한 물결은 거스를 수 없다. 기업이나 국가와 마찬가지로 대학도 미래의 '메가트렌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왜냐면 이러한 메가트렌드가 대학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대학의 기능과 역할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는 미래의 모습. 메가트렌드는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이 동의하는 '거대하고 분명한 흐름'으로서, 개인이나 국가가 저항한다고 그 물결이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 국내 대학들은 학령인구의 감소와 그로 인한 대학구조개혁에 매몰돼, 세계 대학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거시 미래에 대한 대비에 소홀하다는 점이다. 이에 본지는 '대학이 사라진다 - 미래 위기 진단과 대응방안'이라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현재의 위기에 매몰된 대학 관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세계의 여러 대학들과 보조를 맞춰 먼 미래에 대비하는 시각과 전략을 7회에 걸쳐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1> 미래 메가트렌드 톱10
<2> 고등교육의 현재와 미래
<3> 미래전략①-교육소비자 중심의 교육체제로 개편해야
<4> 미래전략②-핵심역량에 집중하라
<5> 미래전략③-네트워크로 대응하라
<6> 미래전략④-'내부의 적' 해소가 먼저다
<7> [특별 지상간담회] 대학의 미래전략에 대한 전문가 좌담

[한국대학신문 이우희·송보배 기자] 국내대학은 한꺼번에 불어닥친 전례 없는 위기로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학령인구 감소는 위기의 출발점이다. 사립대학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반값등록금’ 정책의 여파는 대학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립대학 등록금 의존률은 많이 낮아져서 67%(2012년)에 불과하다. 어려운 대외환경에도 상당수 대학들이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종갓집 경영’을 하고 있어, 안으로부터의 위기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학재정지원 평가나 대학 이미지 제고에 유리한 보여주기식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대학 전공과 취업 분야의 연계가 이뤄지지 않아 대학 4년을 낭비로 보는 시선도 늘고 있다.

■ 대학정원 16만명 감축…극한 다이어트에 바람잘 날 없는 대학가 = 교육부는 2023년까지 대학정원을 16만명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 속에 미래 위기를 최소화 해 연착륙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과 10년도 채 안 되는 시기에 ‘대학이 남아도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최소 16만명 규모에 해당하는 대학들이 10년 이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대학들은 눈물겨운 ‘학생 정원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교육부가 각종 정부재정지원사업에서 ‘정원감축율’을 결정적인 지표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6월 발표된 대학특성화사업(CK Ⅰ·Ⅱ)에서 ‘정원감축’을 하지 않은 서울 명문대들은 대거 고배를 마셔야 했다. 반면 평균 9.6%의 높은 정원감축 계획을 내놓은 충청권 대학들이 약진했다. 10%의 정원감축 계획을 내놓은 전북대는 전국 최고액을 따냈다.

대학가에선 정원감축을 ‘언젠가 맞을 매’라고 받아들인다. 서울권 한 대학 관계자는 “우리 대학은 서울권 대학 평균보다 많은 7%의 정원감축을 단행했다. 학령인구 감소는 언젠가 닥칠 일이고 정원감축도 지금이 아니라면 가까운 미래에는 시행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지금 정원감축을 해서 재정지원사업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게 이익”이라고 토로했다.

급속한 다이어트에는 당연히 후유증도 따르게 마련이다. 취업률이나 학생모집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초학문의 고사(枯死)는 점점 가속화하고 있다. 철학과와 국문과 등 기초인문학 관련 학과를 통폐합한 대학은 경남대(철학과), 대전대(철학과), 배재대(국문과), 목원대(독문과, 불문과), 동아대(국문과·문창과), 중앙대(사회복지·아동복지·청소년·가족복지), 청주대(사회학과) 등 수십 곳을 헤아린다. 이들 비인기 학과의 통폐합에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시위로 대학가는 바람잘 날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문사철의 폐과는 불가피한 미래라는 지적도 있다. 유엔미래포럼은 미래대학에선 공학과 의학, 지구과학 등 응용학문이 뜨고 법학과 인문학 등 순수·기초학문은 퇴조한다고 전망한다.

■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들…“신문도 끊었다” = 대학들의 정원감축은 곧 대학들의 재정난과 직결된다. 우리나라 대학은 등록금 의존율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일단 사립대학의 비중부터 높다.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에 따르면 2010~2011학년도 우리나라 국공립대(정부의존형사립대 포함) 학생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독일 96%, 호주 96%, 프랑스 86%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게다가 이들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2012년 66.6% △2011년 71.2% △2010년 71.5%에 달한다. 반면 미국 사립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이 33.3%다. 하버드대의 경우도 등록금 수입은 전체 재정의 30%에 해당한다. 호주권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도 25% 내외다.

등록금 의존율이 높다보니 정원과 대학 재정이 정비례한다. 정원감축으로 재정지원사업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대학들도 사업 이후를 걱정하는 이유다. 한 지방 국립대 기획처장은 “정원감축 10%를 단행해서 정부재정지원사업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사업이 끝난 이후는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지원이 적은 데 있다. 대교연에 따르면 2006~2010년 OCED국가의 고등교육 공교육비 가운데 정부재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68.4~72.6% 수준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20.7%~27.3%에 불과했다. 호주의 대학들은 2005년 기준으로 대학재정 45%에 해당하는 금액을 장학금 형태로, 16%는 대여장학금 형태로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한 전문대학 관계자는 “대학 재정난이 정말 심각하다”며 “우리대학은 교수 출장비도 삭감하고, 신문을 끊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 돈·시간 드는 근본적 발전보다 보여주기 지표 경쟁만 = 교육의 질을 높이고 연구능력을 끌어올리는 등 대학의 본질적인 경쟁력 향상보다는 평가지표 향상을 노린 ‘보여주기식 경쟁’이 만연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서울시내 S대학은 모 일간지가 매년 실시하는 대학평가에서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을 제치고 종합대학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평가를 실시한 일간지와 S대학이 같은 기업의 소유라는 점을 아는 대학가에선 이 같은 결과를 놓고 못마땅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종 대학평가 지표 순위로 대학을 홍보하는 것은 비단 이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와의 격차를 무시하고 국내 순위만을 강조하는 부끄러운 장면도 일상이 됐다. 지난 5월 모 여대는 피인용 상위 10% 논문의 대학별 비율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라이덴 랭킹에서 국내 종합대학 1위라고 홍보했다. 세계 순위 306위를 두고 부끄러워하는 대신 자랑을 한 셈이다.

최근 국내의 경우 주요 일간지는 물론 경제지와 인터넷 언론까지 대학평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가운데 일부 대학은 이들 평가에 초연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끈다. 포스텍은 올해 초 THE 세계대학평가에서 ‘50년미만 대학’ 세계1위를 차지했지만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를 꺼렸다.

이에 대해 당시 포스텍 관계자는 총장이 평소에 세계 대학평가 랭킹에서 선전하는 포스텍에 대해 “이는 크게 자랑할 일이 아니다.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한다면서 모 언론사의 대학평가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해도 학내에 현수막 하나 걸지 못하게 했다고 전했다.

■ 전공-취업 연계 시스템의 붕괴…대학 향한 의혹의 시선 = 대학교육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단적으로 전공을 들 수 있다.

지난 15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7명은 대학 전공 선택에 대한 후회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인이 대학생 48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전공 선택을 후회한 이유 1위는 생각한 것과 다르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복수응답으로 42.3%가 이런 이유를 꼽았다. 전공이 학생들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공부도 전공이 아닌 영어와 공무원 시험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3‧4학년 대학생은 주당 3.94시간을 영어에, 2.4시간을 공무원 시험에 쏟고 있다. 전공 시험은 1.98시간이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12년 청년유니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 등록금을 제외하고도 1인 평균 1467만원이 ‘스펙’ 비용으로 소비된다.

이렇게 많은 비용이 드는 원인은 전공과 취업이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상반기 입사지원을 경험한 취업준비생 66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9.1%가 전공과 관계없는 분야에 입사지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대학들도 취업에 대한 방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학 별 취업지원센터 등 시설을 마련하고, 다양한 취업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상담이나 정보 제공, 특강에 그쳐 전공과 연계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양승실 등이 공동 집필한 ‘주요 선진국의 대학 발전 동향’에서는 프랑스 대학들이 시행하고 있는 전공교육 중 현장실습과 직업세계 관련 교과목 모듈 등을 국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위기 속 희망…개혁 고심하는 대학들 = 최근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이고 의미 있는 혁신에 나서는 대학들이 있어 조명을 받고 있다.

미래 메가트렌드로 꼽히는 기술발전과 공명하는 학과가 속속 신설되고 있다. 한양대 미래자동차학과는 전기와 전자, 정보통신이 접목된 차세대 그린카(친환경자동차) 및 스마트카(지능형자동차) 개발을 선도할 미래자동차 분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개설된 학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융합과 통섭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은 기계공학은 물론 전기·전자공학, IT·소프트웨어, 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무인자동차 기술은 『유엔미래보고서2040』가 꼽은 과학기술 메가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IT정보기술이 발달과 호응하는 사이버 보안학과 신설 붐도 눈에 띈다.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 출신이 대거 몰리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를 필두로 보안관련 학과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 중앙대는 산업보안학과를 신설하고 4년 전액 학비를 면제해주는 등 막강한 혜택을 내세우고 있다.

그 밖에 정부재정지원 사업도 수동적이나마 미래에 대한 대학의 대비를 유도하고 있다. 대학특성화 사업에 선정된 대학들은 2~3개 잘하는 분야에 역량을 모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학부교육선진화(ACE) 육성사업은 지방대 디스카운트에 좌절하고 있는 지방사립대학들의 대안으로 환영받고 있다. 울산대는 이공계열은 물론 비 이공계열 전공자들에게도 산학협력교육을 실시하는 등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육성사업도 대학의 체질개선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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