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등록금·학령인구 감소 MB정권 하반기 ‘한계상황’ 속 등장

대·내외적 대학 위기에 구성원 경각심 일깨워
학과구조조정 부작용 심각 ‘실패한 정책’ 평가도

▲ 정부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정책이 논란 끝에 시행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왼쪽부터 전국 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 회원들이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교육부의 반교육적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백성기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연찬회에 모인 교수들이“정부가 재정지원사업으로 사실상 대학의 자율성을 앗아갔다”며“대학 퇴출에만 몰두하느라 정작 그 이후의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정부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정책이 논란 끝에 시행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지난 2011년 8월 첫 재정지원제한대학 명단이 발표된 뒤 매년 8월은 대학가에 ‘심판의 날’로 인식됐다. 수시 입시를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의 결정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교육부가 매년 8월 말경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명단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명운이 걸린 입시철에 정부가 나서서 ‘부실대학’을 지정한 것이다.

신현석 고려대 교수(교육학과)는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정책을 두고 “대내외적으로 한계상황에 이른 대학의 분발을 촉구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평가방식이 정량지표에 쏠려 대학이 납득할 수 있는 평가를 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대학자율화 정책 뒤엎은 강력한 ‘정부개입’= 대학 경영진도 학령인구 감소라는 당면한 외부환경과 ‘혁신’에 둔감했던 대학행정 등에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데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특히 고액 등록금으로 인한 자살이 속출하던 2011년의 사회 분위기는 정부로 하여금 대학개혁에 손을 대도록 촉구했다. 정부가 대학자율화라는 고등교육 정책기조를 깨고 유례없이 강력한 개입정책을 꺼내게 된 배경이다.

이 정책은 ‘평가를 통해 대학가에서 퇴출돼야 할 대학을 솎아내는 ‘배제’가 핵심이다. 통상 정부의 사업은 지원금을 받을 대상을 선정한다. 반면 이 정책은 수시 입시철에 발표돼 수험생의 지원에 영향을 줬을 뿐만 아니라 다음연도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지원하는 자격을 박탈하는 등 지정된 대학을 강력하게 배제했다.

이 정책을 통해 그간 140개 대학이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됐고 6개 대학이 폐교됐다. 교육부가 발표하는 대학정보공시를 들여다보면 학생 1인당 교육비는 2010년 1107만 1000원에서 지난해 1321만 1000원으로 늘었고, 전임교원 확보율은 2011년 76.5%에서 6.6%p 늘어 83.1%를 기록했다.

이 같은 통계수치에 따라 교육부는 이 정책으로 대학의 전반적인 지표가 상승하고 입학정원 감축에도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함께 시행된 고등교육 정책으로 사회적인 문제였던 고액등록금 인상을 억제하고 대학의 특성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취업률 제자리·학내 갈등 심화 ‘반(反)교육적’= 하지만 '현실은 그런 평가와는 다르다'는 불만이 대학을 비롯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중요지표라던 취업률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11년 58.6%로 나타난 대학 졸업자 취업률은 올해도 58.6%에 머물렀다. 추이를 살펴보면 2012년 59.5%, 2013년 59.3%를 기록한 뒤 다시 뒷걸음질쳤다.

그 사이 취업률을 내세워 강행됐던 학과통폐합으로 인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률 등 ‘주요지표’를 위해 희생당한 학생들은 대학과 교육부에 분노하고 있다. 지정을 피하기 위해 대학들은 인문·사회계열과 예술계열 등 일부 학과를 집중적으로 폐과시켰기 때문이다. ‘대학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 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는 최근 “교육부가 고등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미명 아래 대학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반(反)교육적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학과 통폐합 과정에서 발생한 구성원간 갈등도 문제다. 잦은 학내외 시위와 함께 대학본부 점거 등 과거 학내 분규형태도 다시 등장했다. 신현석 교수는 “일부 비인기 학과가 학교발전이라는 명분에 희생당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한 대화가 필요했지만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정책에 대비할 시간이 부족해 대학본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며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지방과 수도권의 갈등을 노출시켰다는 비난도 받는다. 평가지표가 각 대학이 위치한 환경을 무시한 채 ‘줄세우기’를 하면서 발생한 문제다. 사분위원장을 지낸바 있는 민경찬 연세대 교수(수학과)는 “정책이 당초 취지와 달리 또 다른 문제들을 파생시켰다”며 “대학과 지역의 발전이 연계돼야 한다. 양자가 모두 특성이 다르고 접근방식도 다른데 이를 한 잣대로 비교하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수치로 보이지 않는 문제도 있다. 신성욱 부산가톨릭대 기획정보부처장은 “내실보다 지표가 중요해져 대학행정력이 지표관리에 낭비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교육부가 정한 지표에 따라 지정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다보니 교육은 뒷전이 됐다는 이야기다. 졸업생의 졸업을 유예하도록 종용하거나 휴학생의 휴학시기를 충원률 집계 이후로 미루도록 설득하는 것은 이제 예사다. 취업률 공시철이면 대학직원들은 취업자를 찾아내기 위해 자정까지 전화통을 붙잡는 모습도 연출된다. 그 사이 교육이나 취업지원은 뒷전으로 밀렸다.

■주식 매매하는 ‘영리대학’ 초석일까=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을 4년간이나 끌고 온 이유는 뭘까.

표면적인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경쟁력 강화 등의 동인 외에도 대학가 일각에서는 대학 기업화의 초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돈이 안 되는 학과’를 폐지해 몸집을 줄이고 기업에 인수되거나 스스로 주식시장을 노크할 수 있는 ‘영리대학’으로의 변모를 꾀한다는 것이다.

영리대학은 대학이 주식시장에 상장돼 주식을 사고팔며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형태의 대학모델이다. 미국과 일본 등지에는 이미 다수의 영리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제주 국제학교의 결산 잉여금을 주주에게 배당할 수 있도록 하는 제주 국제자유도시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이미 교육기관의 영리화는 도마 위에 올랐다.

신현석 교수는 “최근 대학가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개입정책은 1995년 대학자율화 조치 이후 유례가 없었던 것”이라며 “큰 틀에서 대학자율화라는 교육정책의 패러다임이 국가주도로 전환되진 않겠지만 대학 기업화의 시금석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정책으로 대학들이 생존을 위한 독자적인 대학모델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평생교육의 수용 등 수익모델의 다양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영리대학과는 개념이 다르다. 대학이 몸집을 줄이고 새로운 자생모델을 찾는 것은 맞지만 영리대학과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성욱 기획정보부처장은 “몸집을 줄이고 돈이 안 되는 학과를 폐과하는 등 영리대학이 가능한 형태의 변화가 실제로 감지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정부가 영리대학 도입을 위해 의도적으로 정책을 펴진 않았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