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현(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

최근 대학 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이슈는 아마도 ‘구조조정’ 문제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융합교육’ ‘창의인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대학을 압박하고 있다.

‘구조조정’ 문제는 말 그 자체의 뜻과는 달리, 대학 현장에서는 실제로 입학정원의 감축문제, 그로 인한 등록금 수입의 감소라는 재정문제로 부각된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불가피하게 된 대학 입학생수의 감소 현상은 대학으로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다. 각 대학은 최선을 다해 학생을 확보해야 하는 새로운 ‘교육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됐다. 그렇다면 구조조정 문제는 심층에서는 교육의 수월성 문제에 닿아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정보화와 더불어 찾아온 지식사회의 지형변화에 어울리는 새로운 교육, 즉 ‘융합교육’ ‘창의인재’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구조를 바꾸는 일이 된다.

산업화에서 어느 수준 성공을 거두고 이제 정보사회에 깊숙이 들어선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 보면, 기성의 선진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교육을 넘어서서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 되는 것이 이 시대의 긴절한 교육수요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을 기르는 교육은 어떤 교육구조 안에서 더 잘 이루어질까?

한국의 대학교육은 그 동안 ‘학과중심’으로 이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교수와 학생이 하나의 전공학과에 소속돼 그 전공지식을 가르치고 배운다. 그렇게 교육받은 학생은 졸업 후 그 전문지식이 활용되는 직업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이제까지 한국 대학교육의 보편적 모델이다. 산업화가 진척되면서 이 모델은 더욱 확실하게 정착돼 왔고, 그 결과 대학교육이 직업교육의 성격을 점차 더 강하게 띠어 왔다. 이 과정에서 응용학문분야가 흥성하고 직업적 활동과 직결되지 않는 기초학문교육이 점차 약화돼 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학령인구가 점차 더 감소되면 기초학문분야의 전공학과가 폐쇄되는 일은 더 잦아질 것이다.

과연 이러한 추세가 계속돼도 한국의 대학은 국제경쟁력을 가질까? 과연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창의인재’가 양성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응용학문은 기초학문을 기초로 할 때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해법도 찾아낼 수 있다. 어느 문화공동체든지 새로운 발전단계에 도달하면 기초학문에 눈을 돌려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응용학문이 소비학문이라면 기초학문은 생산학문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의적발상은 한 분야의 전문지식에서 나오기 보다는 여러 분야의 전문지식이 ‘융합’될 때 나오기가 더 쉽다. 오늘 ‘융합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복수의 기초학문분야에서 지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창의적 발상에서 더 우월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합당하다.

그렇다면 어떤 교육구조에서 이러한 교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까? 복수의 기초학문을 학습하게 하는 교육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학과에 전속되지 않고 몇몇 기초학문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공부할 수 있는 교육구조란 어떤 것인가? 미국의 유수한 리버럴아츠대학(Liberal Arts College)이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유럽의 전통적인 대학에서는 거의 모든 학생이 이렇게 교육받아왔고, 한국에서도 조선시대에는 ‘성균관’ 교육이 이러했다. 이제 오늘의 한국에서도 이런 유형의 교육구조가 대학사회에 등장할 때가 됐다. 한국적 현실을 고려하는 절충형태로라도 한 대학 안에 리버럴아츠대학의 역할을 하는 교육구조가 등장할 때가 됐다. 긴 안목에서 볼 때, 어느 대학교든지 이에 앞서가는 대학이 앞으로는 우수한 대학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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