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분야는 대학의 강력한 비교우위…고급두뇌 62%가 대학에 있어

우리나라 연구능력 급성장했지만 질적수준은 세계기준에 못 미쳐
지역대학은 거대담론에 대한 세부분야 특성화연구로 생존 모색해야

[한국대학신문 이우희·이재익 기자] 대학은 인적자원의 보고(寶庫)다. 경제성이 있는 천연자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최대의 자원은 인적자원이다. 대학은 그 중에서도 ‘고급인적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관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고급인적자원이라 할 수 있는 박사학위자 8만7642명 가운데 62.4%(5만4705명)이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대학이 연구분야 경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풍부한 고급인적자원을 활용한 연구분야는 교육과 함께 대학이 정부와 기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분야이면서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는 핵심역량이기도 하다.

■ 연구분야도 '선택과 집중' 전략 필요 = 미래학자와 대학전문가들은 대학들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교육과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핵심역량에 대한 집중은 재정문제로 인해 필연적인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 길용수 한국대학경영연구소장은 “장기적으로 대학은 연구와 교육 이외의 모든 분야를 분리 운영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데 동의한다”면서 “앞으로 대학은 연구 관련 분야와 학생 케어 및 멘토링 정도에 집중될 것이다. 진짜 필요한 것 외에는 손을 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학교가 문을 닫지 않으려면 돈을 비축해야 한다. 핵심역량을 제쳐두고 자꾸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열 개 중에 세 개도 성공하기 어렵다. 재정적인 부분은 더 현실적인 문제다. 여러 교수들한테 고작 7천만원, 1억원 씩 나눠주면 아무도 세계 최고가 못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 분야 내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분야에 힘을 실어주는 전략이 요구된다. 서울권 모 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연구소는 특히 대학에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실제 잘 운영되는 연구소는 매우 적다”고 질타했다. 그는 “연구소는 소장이 경영전문가가 아닌 교수라서 행정직원을 선발해도 소장 재량으로 선발하는 터라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다만 분명한 것은 수준 낮은 학술지의 양산을 방지하고 효율적인 연구 수주 등을 위해 전문성을 토대로 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노벨상 수상자 ‘0명’, 준노벨상급 수상자도 찾아보기 힘들어 = 무엇보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연구 경쟁력은 세계 기준에 비춰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세계와 경쟁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미래 생존도 보장할 수 없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안화용 한국연구재단 성과확신실장은 우리나라 대학이 노벨상급 연구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기초연구의 역사가 짧고 질적 수준이 취약하고, 창의적 인재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을 들었다.

안 실장은 “아직 우리나라는 연구능력 및 연구업적 면에서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자가 부족하다”며 “노벨과학상 전 단계의 상으로 불리는 울프상, 라스커상, 톰슨로이터사가 예측하는 노벨상 수상자 예측, 노벨심포지엄 초청발표자조차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냉정한 진단을 내렸다.

그는 우선 우리나라는 기초연구를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안 실장은 “응용과학은 1966년 KIST 설립 이후 경제개발을 위한 집중지원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했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1980년 이후부터 이뤄졌다”면서 “결국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의 역사는 23년에 불관 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노벨과학상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의 역사가 100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기초과학을 지속적으로 지원확대해 지금까지 총 16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KIST 설립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98년, 서구에 비해 279년(뉴튼의 만유인력 법칙 1687년)이나 늦게 과학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창의적인 인재양성이 어려운 교육제도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초·중·고교생들은 대입을 목표로 공부할 수밖에 없고, 좀 더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암기식 교육과 선행학습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 교육현실이라는 것이다. 대학이라고 낫지 않다. 안 실장은 “대학생들은 다시 취업을 목표로, 전공공부보다는 취업에 유리한 영어와 자격증 시험에 치중하는 교육현실에서는 창의적인 사고를 갖춘 연구자를 배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양보다는 질이다’ 대학들 공감 확산 = 여전히 전반적으로는 양적이 측면이 강조되는 가운데, 몇몇 대학들이 점차 연구의 양보다는 질에 주목하기 시작한 점은 고무적이다. 정부도 초장기지원 프로그램을 논의하는 등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는 단기 지원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은홍 국민대 기획부총장은 “이제는 미국 국제저널 같은 곳에서도 피인용 수를 평가 기준으로 도입했다.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단순히 SCI급 논문 제출이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에서 얼마나 많이 인용되고 있느냐로 평가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들은 더 이상 양적평가만으로 교수를 채용하지 않는다. 서울소재 모 대학 교수는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톱5 대학의 경우 교수 채용 시 단순히 논문 수를 갖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양적평가보다 수준 있는 연구를 꾸준히 내고 있는가 여부를 중요하게 본다”고 전했다.

다만 연구의 질적 제고를 위해선 대학 자체 노력으로는 한계가 따른다는 인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울권 모 대학 보직교수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교수의 능력을 평가할 때 SCI급 학술지에 논문을 몇 편 실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양적인 평가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각각의 논문의 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없다보니 숫자로 평가해서 점수를 주는 것이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한국연구재단은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2013년에 수립한 기초연구진흥계획에 질적 연구성과 중심으로 목표를 설정해, 양보다는 질 중심의 연구를 중시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안 실장은 “노벨과학상 배출을 위한 장기·안정적 연구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소액연구비(small grant) 지원의 확대,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는 지원프로그램 신설, 비주류·미개척분야 지원 강화, 초학제간 (Trans-disciplinary research) 연구 강화, SCI 피인용 상위 1% 중심의 성과목표 설정, 신진연구자 지원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 가지 연구과제에 대해 10년 이상 장기 지원하는 ‘한우물파기 사업’에 대한 논의도 물밑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연구재단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최장 10년으로 규정한 현행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이하 국가연구사업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 지역대학은 세분화·특성화 연구로 대응해야 = 연구분야는 최대형 연구중심대학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역대학에도 지역대학에 맞는 연구 역할이 있다. 지역사회의 솔루션이 되어주고, 세부 특성화 분야에서 정상이 되는 것이다.

길 소장은 “지역대학들도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선도대학이 되는 전략이면 승산이 충분하다”며 “모든 대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선도대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양성이 추구되는 것이다. 학교마다 자신에게 맞는 작은 시장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그 시장에서는 그 대학이 ‘탑’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가령 서울대가 바이오연구를 한다면 이는 거대 담론이다. 바이오 영역에 포함되는 세부영역은 다른 대학들이 하나씩 맡는 것이다. 그 아래 동물, 식물 분야로 세분하는 식이다. 미국에서도 하버드가 인문학적 담론을 주장하면 그에 대한 세부적인 논리 정립은 다른 대학이 맡는다. 지식공동체 역할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학들은 누구 밑에 들어간다는 것을 자존심 문제로 생각한다. 아니다. 하나의 생태계가 조성하는 것이며, 위에도 밑에도 각각의 역할자가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대학 특성화다”고 설명했다.

안 실장도 지역대학의 대학특성화를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모든 대학들은 서로가 비슷한 학과들을 백화점식으로 설치하고 있다”며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특성화를 통해 모든 학문 분야들이 조화스럽게 유지·발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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